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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Sep 20. 2024

14화. 아파트

하고 싶은 이야기 / 에세이

  한국 최초의 아파트는 많은 정설이 있으나, 1961년 대한주택공사가 서울 마포아파트를 근대식으로 건설하면서 아파트 시대가 막을 열었다. 이후, 정릉, 홍제동, 문화촌 등의 소규모 아파트에서부터 한남동의 힐탑아파트, 화곡동 아파트 등 대형 고층아파트가 세워졌다. 중산층용으로 한강맨션아파트가 건설되면서 본격적인 붐이 일어났다.

  1967년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인, 종로 세운상가가 완공되었다. 종로의 세운상가에서 시작해서 청계천 대림상가, 을지로 진양상가. 퇴계로 풍전상가까지 종묘에서 남산을 연결하는 서울시의 핵심 주거지이자 상가로 변신했다. 이후 1968년 낙원상가가 준공되면서 본격적인 주상복합아파트 시대가 열렸다. 

  1971년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지어진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국내 첫 민간인 고층아파트이자 대단지이며, 최초로 여의도에 지어진 건축물이기도 하다. 이후, 여의도의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면서 수많은 증권가 건물들이 들어섰고, 국회의사당, 국내 방송국 3사와 63 빌딩이 지어졌다.

  강남개발이 진행되면서 인구가 집중되고, 주거시설이 늘기 시작했다. 1973년 반포주공아파트가 대한주택공사가 최초의 주공아파트를 건설하면서, 개포주공아파트 등의 대단위 아파트의 시대가 열렸다. 1976년 민간회사가 건설한 압구정 현대 아파트를 필두로 ‘강남’이라고 불리는 영동지구를 중심으로 한강 변을 따라 퍼져나갔다. 


  1970~1980년대에는 과천의 신도시가 정부 계획도시의 선도적인 역할로 개발되면서, 서울 외곽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신도시들은 자연 친화적인 조경과 녹지가 돋보였다. 이후 평촌, 산본, 분당, 일산 등 대단위의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한국은 아파트의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들었다.     

  어릴 적 마포아파트에 살면서 주변 환경에 비해서 잘 조성된 조경, 분수대 그리고 어린이놀이터에서 즐겁게 놀았다. 그 당시는 연탄보일러였지만, 따뜻한 물을 쓸 수 있었고, 겨울에도 난방이 잘 되었다. 영화 찍으러 오는 배우들을 보려고 이리저리 몰려다녔던 기억도 새롭다. 학교 문제로 종로에 준공이 된 주상복합아파트인 세운상가로 이사를 했다.

  시내 중심에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아파트 아래에는 상가와 백화점 그리고 고급 음식점들이 있었다. 한국에서 가장 컸던 전자상가에 게임기가 등장하면서 그곳을 친구들과 배회하며 또 다른 천국을 만났다. 몇 년간 부족함이 없는 그곳에서 사춘기를 보내며 살다가, 아버지의 건강 문제로 처음 개인주택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아차산 밑에 있던 개인주택의 생활은 그동안 살았던 패턴과 완전히 달랐다.


  석유 파동으로 연탄보일러를 돌리고, 정원 손질, 집 청소, 누나들의 멀리 있는 학교의 통학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기르던 개들이 사라지고, 난생처음 도둑이 들어왔다. 다행히, 아버지의 건강이 회복되면서 여의도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 정리가 잘 된 거리의 신도시 같은 분위기에 한강에 둘러싸여 있어 운치가 있었다. 방송국들이 있어서 많은 연예인을 접할 수 있는 ‘한국의 맨해튼’으로 손색이 없었다.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경기도로 이사를 한 곳이 과천이었다. 처음 이사할 때는 서글픔을 느꼈지만, 서울대공원, 주변의 관악산과 청계산으로 둘러싸인 신도시는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그곳에서 결혼해서 집을 사고, 아이를 낳아 학교를 보내면서 인생 중반의 행복을 누렸다. 해외 주재원으로 몇 번 나간 후, 들어오면서 분당으로 이사를 했다.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어, 해외로 유학을 보내면서 분당을 떠났다. 

  어느덧 연로해지신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수리산 밑에 있는 산본의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외 주재원을 마치고, 부모님을 모신 산이 있는 용인의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그곳에 완전히 정착했다. 지금 사는 대단지 아파트의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단지 밖에는 저수지, 하천 그리고 넓은 논이 있다. 처음 살았던 아파트들과 다를 바 없지만, 자연 속에 있는 이 아파트를 좋아한다.      


  여러 곳을 이사 다니면서, 60년을 넘게 한국의 아파트 역사와 함께했다. 이제는 도심의 아파트보다 자연 속에 있는 아파트를 좋아한다. 누구는 아파트가 시멘트 냄새가 나고, 정이 없다고 하지만, 지금 사는 아파트는 시멘트 냄새보다 농촌의 구수한 냄새가 나고, 주변에 많은 텃밭에서 나오는 싱싱한 채소와 과일들을 나눠 먹는 이웃들이 있어 좋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환경의 변화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의 좋은 환경에서 더 이상의 변화는 없을 것 같다.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을 이곳에서 보낼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아파트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긴 세월을 살아온 아파트들의 생활을 이제는 정리할 수 있는 뜻깊은 장소라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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