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이야기 / 에세이
태어나서 군 복무, 해외 근무를 제외하고, 여태껏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하는 행사가 제사(祭祀)다. 기억에는 없지만, 갓난아기 때에도 어머니 등에 업혀 제사에 참석했을 것이다. 많을 때는 한 해에 스무 번 이상 지낸 적도 있었다. 제사가 힘들고, 가끔 짜증도 났지만,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부모님 살아계실 때는 제사에 불참하는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용납이 되지 않았다.
제사가 있는 날은 아침부터 바빠진다. 준비했던 음식 재료를 다듬고, 필요한 제수 음식(祭需飮食)을 준비했다. 저녁 무렵에는 아버지가 지방(紙榜)을 쓰기 위해서 벼루에 물을 붓고, 먹을 벼루에 갈아서 먹물을 만들었다. 제사 시간이 다가오면서 가족들의 역할 분담에 따라 더욱 바빠졌다. 주전자를 들고 동네 손님으로 시끄러운 술집에 가서 막걸리를 받으러 갔다. 자정을 넘기자 제사가 시작되었다.
늦은 밤에 예복을 갖추고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보면 또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이 들었다. 하루종일 바빴는지 절을 하면서도 연신 눈이 감겼고, 졸음이 쏟아졌다. 아버지와 같은 동작을 반복하려면 옆 눈치를 보면서 정신을 차려야 했다. 술을 갈고, 젓가락을 다른 음식으로 옮기고, 숟가락을 바꾸기를 여러 번 하면 제사가 끝났다. 뒷정리하면 이른 새벽이 되어 잠시 눈을 붙이고, 아침에 학교에 갔다.
어느 날, 추석 제사를 준비하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어지럽다며 잠시 누워있겠다고 했다. 명절 제사는 아침 일찍 지내기 때문에 전날 준비를 다 해놔서 아버지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제사 지낼 준비가 끝나고, 아버지에게 시작하면 된다고 말하자, ‘오늘은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니, 네가 제사를 지내라’라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주(祭主)로 정신없이 제사를 마쳤다. 아버지는 얼마 후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안 계신 제사에 혹시 실수라도 할까 봐 더 열심히 준비했다. 몇 해가 지나면서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아내는 어머니에게 제사 음식을 배웠다. 처음에는 일반 음식과 달라 어려움을 겪었지만, 어머니가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제사 준비를 아내 혼자서 했다. 이제는 힘들이지 않고 잘한다. 부부가 정성껏 모시는 제사가 왜 중요한지, 왜 필요한지 알 것 같다. 가족애(家族愛)가 두터워지는 걸 느낀다.
평생 제사에 대해서 엄격하게 했던 아버지 대신 제주(祭主)로 지낸 지도 20여 년이 다 되어간다. 얼마 전 어머니도 돌아가셔서, 이제는 아내와 함께 부모님이 했던 평생업(平生業)을 이어받았다. 그동안 모셨던 제사도 합제사로 해서 간편화했지만. 부모님이 지냈던 제사를 생각해 보면 미안함이 생긴다. 그마저도 아들이 없어 제사는 이 시대에 막을 내릴 것 같다. 시대는 흐르고 있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제사에 해당하는 조상 추모 의식은 존재하지만, 한국의 제사는 유교적 제례 행위를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교식으로는 기본적으로 사대봉사(四代奉祀)라고 하여 제주(祭主)의 4대조(부, 조부, 증조부, 고조부)까지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 기본이다. 이후 매안(埋安)이라고 하여 신위(神位)를 사당에서 옮겨 땅에 묻고, 더는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제사라고 하면 기제사(忌祭祀)를 가리키는데, 죽은 사람의 기일에 그 사람만을 위해 지내는 제사를 의미한다. 음력 초하룻날과 보름날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라고 한다. 특별한 명절(설날, 추석 등)에 한해서 제사가 아니라 차례라고 불러 제사에 포함되는 개념이다. 기제사가 직계 가족 위주라면, 차례는 방계 가족이 함께 모이는 가족 행사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전체의 36%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응답률을 보였다. 국민 3명 중 1명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다. 지역별로는 보수적인 지역에서는 80%가, 기타 지역은 54%로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남성 16%는 사후에 자손들이 나를 기리는 제사를 지냈으면 좋겠다고 응답했고, 84%는 자신의 사후 제사를 지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바뀐 지도 오래되었고, 가정의 자녀 수도 많이 줄어 인구 감소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다문화 가정이 증가하면서 제사나 명절 문화는 앞으로 몇 세대를 거쳐 내려가면 모습을 감추고 결국 완전히 사라져 버리게 될 것이다. 어릴 적 종묘제례(宗廟祭禮)를 보면서 조상의 제사에 대한 계승과 보전이라는 중요성을 느꼈다. 제사문화는 이제 역사의 한 조각으로 미래세대 머릿속에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