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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Oct 14. 2024

20화. 광산(鑛山)

하고 싶은 이야기 / 에세이

  어느 날, 일상적으로 해외 출장을 위해서 비행기를 탔다. 게이트가 닫히고 이륙하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옆에 있던 승무원이 위스키 한잔을 가져다주면서 단숨에 마시라고 했다. 다행히 깊은 잠에 빠진 채로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일을 잊었다. 

  얼마 후, 정기 신체검사를 위해서 CT 촬영을 하는데, 누워있는 베드가 좁은 공간으로 움직이면서 얼마 전 비행기에서 느꼈던 상황이 벌어졌다. 간호사의 도움으로 여러 번 시도 끝에 검사를 마쳤다. 그날, 그런 현상이 폐소 공포증(claustrophobia)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이후, 좁은 공간이나 밀폐된 공간을 피했다.      


  루마니아에서 주재할 때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들었는지 소금 광산에 놀러 가자고 했다. 처음에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아무 생각 없이 흔쾌히 받아들였다. 약속한 날이 다가오자, 소금 광산에 대한 정보와 일정 등을 정리하다가 엘리베이터로 지하 120m를 내려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 생각에 손에서 땀이 나기 시작하면서 어떻게 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아이들과의 약속은 지켜야 하는데 걱정이 앞섰다.

  부쿠레슈티에서 북서쪽으로 약 6시간 정도를 가면 투르다(Turda)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이곳은 중세시대부터 소금을 채굴하던, 광산이 밀집해 있는 광부들의 마을이었다. 이곳에서 1932년까지 양질의 소금을 채굴하였으며, 2차 세계 대전 이후 치즈 저장소 또는 대피소로 사용되었다. 폐광되었던 이곳을 지금은 스포츠 경기장, 원형 극장, 지하 호수 등 관광객들의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테마파크로 개발하였다.

  이런 어두컴컴한 지하 공간을 관광지로 개발한 이유는 사람들이 소금 광산이었던 이곳에 들어서면 건강이 좋아질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중 섭씨 12~15도로 유지되는 온도와 80% 정도의 습도에서는 박테리아가 서식할 수 없어서 유럽 전역에서 호흡기 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이곳의 소금 순도는 80%에 달해서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몸이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살리나 투르다’로 들어가는 지상 입구는 지하철역 입구를 연상케 했다. 입구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수직 120m 아래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모험이 시작된다. 그런데 발걸음이 무거워지면서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지 마냥 즐거운 표정이었다. 혹시나 해서 약을 미리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불안감은 계속 밀려왔다.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눈을 감았다. 다행히 수직으로 내려간다는 속도감을 느낄 수 없이 평온해서 옆에 같이 탄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지하에는 소금을 캐던 장소가 지금은 장인이 조각한 듯 아름답게 빛나는 거대한 지하 궁전으로 바뀌어 있었다. 중세시대의 소금 광산이라는 환경에서 신비로운 재미는 일반의 테마파크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해지면서 이곳이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에 와있다는 착각을 느꼈다.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노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 불안했던 것이 어느새 사라졌다. 소금에서 품어내는 공기를 만끽했다.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면 답답함이 사라지면서 폐소 공포증이라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십 년 전 한국의 구봉 광산에서 광부 매몰 사고가 발생하여 우여곡절 끝에 매몰 16일 만에 그 광부는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이 사고는 국내외 뉴스로 전파를 타며 그의 구조 과정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이 밤을 지새웠다. 1950년 해병대원으로 6·25 전쟁에 참전해서 중상을 입고 제대한 후, 구봉 광산에서 작업하다 매몰되었던 바로 그 김창선 씨(향년 90세)의 안장식이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열렸다는 기사를 접했다.

  몇 년 전 봉화 광산에서 매몰 사고로 10여 일(정확히 221시간) 만에 2명의 광부가 생환했다. 그들은 갱도 안에서 시간 감각을 잃어서, 체감시간은 실제보다 훨씬 적게 느꼈다고 했다. 생존자 중 한 명은 가족들과 재회했을 때 ‘사흘밖에 안 됐는데 왜 이렇게 많이 왔냐’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구조 직전, 광부들의 헤드랜턴 배터리가 모두 소진되었고, ‘이젠 정말 죽는구나.’라는 생각에 심리적으로 무너져 가던 중이었다.     

  밀폐되거나 폐쇄된 공간에서의 사고는 일상 속에서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그중에 가장 생존율이 낮은 곳이 바로 광산 등 매몰 사고다. 가벼운 폐소 공포증으로도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폐쇄된 공간에서 외부와의 단절 속에서도 극한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생환한 봉화 광산 광부들이 트라우마를 잘 견뎌내어, 故 김창선 씨처럼 즐겁게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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