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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Oct 04. 2024

18화. 병원(病院)

하고 싶은 이야기 / 에세이 

  어릴 적 병원을 가본 기억이 없다. 병원보다는 한의원이 좋다는 부모의 확고한 신념과 의지에 몸이 아프면 한의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밥맛이 좋아야 건강하다고 때가 되면 보약을 한 첩 지여서 달여 먹었다. 집안이 한약 냄새로 진동을 했지만,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기꺼이 쓴 냄새를 즐겼다. 그래서인지 부모가 돌아가시기 전 중환자실에 며칠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평생 가족 중에 입원했던 기억이 없다.

  이가 썩으면서 치과에서 치료받으러 간 것이 처음 병원을 간 기억이다. 이가 튼튼해야 잘 먹을 수 있고, 건강하다는 부모의 배려 덕분이었다. 주로 손을 사용해서 진맥 등을 해주던 부드러운 한의사와 달리 기계를 사용하여 시끄러운 마찰음과 함께 이를 시리게 하는 묘한 고통을 주는 치과 의사는 대조적이었다. 눈을 감고 있으면 드라큘라의 날카로운 이빨이 당장이라도 내 목을 찌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학교에서 장티푸스 예방주사를 맞는 날이면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면서 학교 안 간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가 가방에 초콜릿을 넣어주면서 손을 잡고 학교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창문 밖으로 하얀 차가 들어오는 것을 보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차례가 되어 긴 줄에 서 있으면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의사와 간호사가 ‘빨리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하는 요괴 인간으로 보였다.     

 

   처음으로 정밀 신체검사를 한 것은 입영 통지서를 받고, 훈련소에서였다. 특수부대에 선발되어서인지 다양한 검사를 받았다. 특히 몸 전체에 어떠한 흉터나 작은 문신이 있어도 중도 탈락 대상이 되었다. 군의관도 여러 명이 배치되어 몸에 있는 어떠한 흠집도 잡아내려고 눈을 부릅뜨고 까다롭게 검사했다. 여러 명이 신체검사에서 탈락하여 다른 부대로 배치받았다.

  회사에 취직하면서 신체검사는 더욱 정밀해지고, 빈번해졌다. X-ray 촬영은 기본이 되었고, 장비들이 몸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내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위내시경은 이제 일상이 되었고, 항문 내시경을 하려면 그 전날 밤에 물먹은 소가 되어 과연 내일 병원에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뇌 검사를 위한 CT, MRI, MRA 등이 등장하면서 내 몸에서 숨길 곳은 없어졌다.

  부모님이 연로해지면서 병원에 갈 기회가 많아졌다. 한의원을 고집하던 분들이 병원을 택한 이유는 오래된 한의원 의사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제는 진료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니던 한의원이 집에서 멀어 불편하기도 했다. 집 근처 시설 좋은 대학병원에 다니면서 한의원은 점점 생활에서 멀어져서, 한약을 달이는 냄새는 사라져 갔다.      

  

  나이가 들면서 정기적으로 종합 정밀검진을 받기 시작했다. 건강검진 예약을 하면서 걱정이 앞섰다. 혹시 생각지도 못한 병이 발견되지 않을까 하는 기우(杞憂)에 검진 전날 잠을 설쳤다. 검사 결과를 상담하기 위해 예약한 날 병원으로 갔다. 기우가 현실이 될까 검진받던 날보다 더욱 긴장되었다. 여의사의 표정이 밝아 보이지 않았다. 폐 CT 영상을 보여주면서 호흡기 내과 전문의와 예약을 잡아 주었다.     

  내과 전문의는 폐 CT 영상을 보면서 하얗게 퍼져 있는 부위를 가리키며 범위가 크다고 말했다. 의사의 소견은 상당히 진전된 폐암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정밀 검사를 위해서 당장 입원 준비를 하라고 했다. 입원 전에 우선 암의 영상 진단 방법 중 가장 초기에 정확하게 암을 찾아내는 최첨단 검사방법인 펫시티(PET-CT)를 찍으라고 했다.  

  확정적이지는 않지만, 폐암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냥 주저앉고 싶었다. 정신을 차리고 진료실을 나서면서 주머니에 있던 담뱃갑과 라이터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지난날들이 순식간에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얼마를 살 수 있을지 궁금했다. 잠시 의자에 앉아 조용히 생각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밖은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회사 출근하면서 입원에 필요한 물건들을 넣어 둔 가방을 항상 들고 다녔다. 이틀이 지났는데도 병원에서는 아직 병실이 없다는 연락만 왔다. 다음날, 의사와 면담부터 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진료실은 지옥문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의사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펫시티 영상을 보여주면서 지난번 건강검진 영상은 폐렴으로 인한 것이었고, 지금 영상에서는 아무런 증상 없이 깨끗하다고 했다.


  오진의 해프닝이 있고 난 뒤, 다니던 직장도 미련 없이 그만두었다. 살던 곳에서 지금 살고 있는 조용한 시골로 내려왔다. 지금은 살아온 날을 하나씩 기억하면서 잘못한 것이 있었나, 상대방에 상처를 준 적이 있었나 반성하면서 자기 성찰을 하고 있다. 앞으로 남은 생을 행복하고, 즐겁게 살고 싶다. 가끔 치료를 받으러 병원 가서 하루를 즐긴다. 병원이 언젠가는 익숙한 놀이터이자, 삶의 마지막 장소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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