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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샤름 엘 세이크의 속삭임

나는 추억 여행을 한다. / 에세이

by 김창수

홍해를 끼고 있는 이집트, 수단, 에리트리아 그리고 지부티를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지중해보다 더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바다, 끝없이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수심이 낮은 해변 그리고 바다에서 끊임없이 불어오는 훈풍(薰風)이었다.

홍해 저 멀리에 많은 하얀 배들이 모여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곳은 갑자기 수면이 깊어지는 지점으로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들이 있는 곳이다. 세계에서 유명한 스킨스쿠버 다이빙 포인트가 몰려 있는 곳이 바로 홍해이다.

홍해 연안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휴양지가 많이 있다. 추운 나라 러시아인들이 혹한(酷寒)을 피해서 오는 곳이다. 유럽인들도 지중해와 또 다른 낭만을 찾아서 이곳을 즐겨 찾는다. 내가 그중 한 곳인 샤름 엘 세이크(Sharm el-Sheikh)로 여행을 떠났다.


카이로에서 자동차로 갈 수도 있지만, 수에즈 운하를 돌아서 시나이 반도를 지나 6시간 이상을 운전해야 한다는 것과 안전문제를 감안해서 비행기로 가기로 했다. 카이로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 안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이 자국어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휴양지 분위기가 그들의 얼굴 표정과 옷에서 묻어났다.

비행기가 수에즈 운하의 상공을 지나자, 시나이반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끝없는 사막과 검붉은 산들이 번갈아 달리고 있었다. 1시간여 만에 도착한 샤름 엘 셰이크 국제공항에 'Welcome to Sharm El Sheikh'라는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꿈의 휴양지에 온 것이다.

공항 밖에는 미리 예약한 리조트의 밴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세계의 휴양지답게 모든 것이 시스템화되어 일사불란하게 이뤄져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머무르는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다. 리조트로 가는 차는 홍해를 따라 달렸다. 창밖으로 상쾌한 바람이 불어왔다.


첫째 날은 리조트 해변에서 책을 읽으며,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겼다. 어느덧 수평선에 서서히 붉게 물들어가는 홍해를 바라보면서 그 이름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으로 가던 중, 그들의 신 여호와가 홍해 바다를 가른 ‘홍해의 기적’이 보이는 듯했다.

둘째 날은 미리 예약했던 스노클링(snorkeling)을 위해서 작은 포구로 갔다. 2층의 하얀 배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승선해 있었다. 선장의 간단한 주의사항과 함께 1시간 여 바다로 향했다. 그곳은 수십 척의 배들이 이미 여기저기 정박을 해놓은 모습으로 장관을 이뤘다. 배에서 빌려 준 장비를 갖추고 1층 배 끝머리에 있는 계단으로 모였다. 배에서 스크루에 의해 흩어지는 포말이 사라지면서 철망의 문이 열리자, 한 명씩 바닷속으로 뛰어들어갔다. 바닷속은 대형 어장이었다.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군무를 추면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너무 멀리 그들을 쫓아갔는지 안내원이 돌아오라는 손짓을 했다. 배의 2층으로 올라가 피곤한 몸을 배의 난간에 기대어 홍해의 품속에서 무거워진 눈꺼풀을 붙잡고 있었다.

셋째 날은 더운 날씨 때문에 새벽 라운딩을 위해 리조트 내에 있는 골프장으로 향했다. 해가 뜨면서 홍해를 끼고 펼쳐진, 끝없이 이어진 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황무지에 멋있는 골프장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다. 라운딩 동반자들도 골프보다는 그 풍취에 빠져서 그들의 타수에는 관심이 없었다. 첫 홀, 홍해를 향해 티샷을 치면서 새벽의 피곤함을 날려버렸다. 이어지는 홀들이 하나씩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라운딩 했던 골프장들 중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넷째 날은 새벽에 일출을 보기 위해서 베란다에 카메라 삼각대를 설치하였다. 여명(黎明)을 기다리며 카메라의 셔터를 만지작거렸다. 30여 분이 지나자, 수평선 끝에서 조금씩 어둠이 사라졌다. 약간 졸린 눈으로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봤다. 앵글(angle)과 백그라운드(background)는 고정되었고, 콘트라스트(contrast)만 맞추면 된다. 일출 사진을 찍어 본 지 오래되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갑자기 빨간 태양이 나타나자 순간 당황했고, 자동 셔터를 눌러버렸다. 며칠간의 휴식은 셔터 속도처럼 순간적으로 지나갔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지난 몇 년간의 재스민 혁명으로 힘들었던 이집트 생활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가는 곳마다 보이던 탱크, 밤에 들리던 무수한 총소리, 이슬람 사원에서 새벽부터 들리던 기도소리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함성들이 들려왔다

바닷속의 수많은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유영하는 모습이 보인다. 뭐라고 말하는 듯 그들의 속삭임이 내 귓가에서 맴돈다. 아름다움과 여유로움이 있는 새로운 세상과 희망을 가져본다. 다시는 올 수 없을 샤름 엘 세이크를 뒤로 하고 비행기는 무심하게 하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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