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추억 여행을 하다. / 에세이
해외에서 오랫동안 근무를 하면서 많은 보름달을 보았다. 세계 어디서나 보름달은 같아 보였지만, 한국에서 보는 것과는 그 느낌이 달랐다. 보름달에 옥토끼가 보이지 않아서도 아니고, 색깔이 달라 보여서도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봤던 보름달은 유난히 둥글고, 환했던 기억이 고착화되어서인지 모른다. 아이들과 불놀이를 하면서 시커멓게 그은 얼굴로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에게 꾸중 들었던 기억도 이제는 정겹다.
가족과 함께 가을 여행을 하기로 한 것은 해외 생활의 스트레스와 단조로움을 탈피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들도 여행이라는 말에 덩달아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좋은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운 나라의 하늘에서 보는 보름달이 추운 나라로 가면 좀 더 멋있을 거라는 아이들의 상상은 현실이 될 것이고, 일상의 탈출 자체만으로도 멋있는 여행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섬나라로 여행을 결정한 것은 흥미로움과 일반적으로 겪어 보지 못한 문화적 차이를 경험하고 싶어서였다. 목적지는 하늘이 항상 우중충해서 어쩌다 햇볕만 나면 공원으로 달려가 몸을 말리는 나라, 싫지만 안개를 만끽하면서 살고, 보슬비가 우산을 우습게 여기는 나라, 그들 스스로 신사의 나라라고 우쭐거리는 영국이다. 그리고 최종 목적지는 바람의 도시 에든버러다.
영국(UK)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4개국으로 구성되어, 종교적, 역사적으로 상당히 복잡하게 얽힌 나라다. 아직도 일부 지역에서는 테러가 자행되고 있어 조금은 위험한 나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치안은 보기보다 상당히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다. 방망이를 들고 다니면서 돌리는 모습이 멋있어 보이는 경찰은 런던 여행객들을 위한 서비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급격히 변하는 날씨 때문인지 몰라도 정신병원들이 해안 절벽을 따라 멋있는 곳에 있는 나라이다. 영국 스릴러 영화들을 보면 섬뜩하고, 엽기적인 내용이 많은 것도 이런 연유일 것이다. 문학, 발레 등 실내 예술이 발달해서 우아함과 삶의 풍요로움을 만끽하면서 살아가는 여유도 날씨와의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다. 과거 대영제국의 역사는 조금씩 사라져 가지만, 전통은 아직도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에든버러로 간다. 섬나라의 자동차는 오른쪽 핸들이고, 주행 방향도 다르다. 운전하다 보면 어정쩡하게 가운데로 가고 있어, 자칫 잘못하면 차 사고를 낼 수 있다. 리버풀 해안의 조용한 민박집을 구해서 하룻밤을 묵었다. 영국 어촌의 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저녁에 함성이 들려서 주인에게 물어봤더니, 리버풀과 첼시의 축구 경기 때문에 술집에서 나는 소리라고 했다.
에든버러가 얼마 남지 않았는지 바람의 영향으로 자동차 핸들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손목에 힘을 주고 핸들을 꽉 잡았다. 바람의 강도가 세지면서, 손에는 땀이 흠뻑 졌었다. 에든버러는 영어권이면서도 사투리가 심해서 처음에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빠르돈’(Pardon)을 수 없이 외쳤는데, 에든버러에서도 ‘파든’은 대화의 중심이 되었다.
오전에 오던 비가 그치면서, 바람이 조금씩 강해졌다. 우중충한 날씨에 오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걱정을 했다. 에든버러 날씨는 하루에 사계절을 보여준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곳 날씨는 단조로운 일상을 다채롭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늦은 점심으로 이곳의 전통 음식인 ‘해리스’를 먹었다. 양이나 송아지의 내장, 허파, 간 등을 잘게 썰어서 양의 위에 넣고 삶는 음식으로 순대 같은데, 맛은 전혀 달랐다.
에든버러의 전망대라 부르는 칼튼 힐로 향했다.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는데, 잔디가 깔린 언덕에서는 프린세스 스트리트와 에든버러 궁전이 북쪽으로는 리스 항구와 바다가 보였다. 북해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으로 한기를 느꼈지만,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곳을 한 바퀴 돌면서 넬슨 제독을 기리는 넬슨 기념탑과 나폴레옹 전쟁에서 전사한 병사들을 추모하는 기념물을 볼 수 있었다.
노을이 지면서, 에든버러를 빨간 머플러로 감싸기 시작했다. 석양이 저 먼바다 밑으로 가라앉으면서 또 다른 광채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보름달에 옥토끼가 보이지 않아도 괜찮고, 색깔이 달라 보여도 상관없다. 한국에서 보던 보름달처럼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하늘이 점점 밝아지면서, 주변의 많은 사람과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고향의 보름달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티 하나 보이지 않는 밝은 보름달이었다.
깡통에 나뭇가지를 넣어 불을 지펴서 돌리던, 불놀이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맀다. 오늘 아이들과 함께 보름달을 볼 수 있는 날도 어린 시절의 추억처럼 떠오르겠지. 그들이 성장해 그들의 아이들과 함께 에든버러의 보름달을 다시 보러 와서 오늘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때는 옥토기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설렘이 다가오는 이 밤에 스카치위스키를 한잔하면서 에든버러의 보름달을 만끽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