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화. 탄생의 비밀(1)

나는 '시고르자브르종'이다 / 연재소설

by 김창수

나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냥 엄마 젖을 빨면서 컸던 기억밖에 없다. 가끔 엄마가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맞이하는 그가 아버지인지 추측할 뿐이다. 솔직히 누가 아버지인지는 궁금하지도 않다. 가끔 그가 내게 다가와 혀로 핥아줄 때도 있었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들이 동네 나들이를 하는지, 보이지 않을 때도 별걱정이 되지 않았다. 엄마는 늦게라도 집으로 왔기 때문이다.

하루에 세 번씩 밥을 챙겨주는 주인은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할머니였다. 그녀가 머리에 물들이고, 시골 파마를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칠순이 훨씬 지나 보였을 것이다. 그녀는 밥그릇을 갖다 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항상 다정하게 말했다.

“마씨게 무그라.”

나는 엄마 젖을 떼면서 할머니가 주는 밥이 기다려졌다. 나는 언젠가부터 할머니가 밥그릇을 들고 오면,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떨었다. 가끔 엄마가 내 밥그릇을 기웃거리면, 밥그릇을 움켜쥐면서 엄마의 눈치를 보았다. 뺏어 먹지는 않았지만, 그런 엄마의 행동이 신경 쓰였다.

할머니는 혼자 살고 있었다. 가끔 아침에 밥을 주고 어디론가 나가면 오후 늦게 돌아왔다. 그런 나는 할머니가 묶어 놓은 줄을 풀고, 집 주변을 기웃거리며 영역을 조금씩 넓혀갔다. 멀리서 무슨 소리가 들리면 어두운 마루 밑으로 들어가 숨을 죽이고, 눈만 바쁘게 움직였다. 밖이 조용해지면 슬며시 기어 나와 사방을 돌아보면서, 다시 가보지 못한 곳을 배회했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한 다리를 올리고 오줌을 조금씩 싸놨다. 그런 행동은 나도 모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오늘도 엄마는 아침을 먹자마자, 어디론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나는 그녀의 눈동자에서 애처로움을 느꼈다. 어린 자식을 낳아두고 냉정하게 사랑을 찾아서 가야 하는지 갈등 같은 그런 눈빛이었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따라가고 싶었지만, 외출할 때마다 엄마가 제 새끼 봐주지 않는다고 멀리 나갈까봐 해놓은 목줄로 꼼짝할 수 없었다. 엄마 문제로 그런 할머니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았다.

“니 애미 또 나갔나? 어디서 만들어서 온 지 새끼 돌보지도 않고 저리 싸돌아다니며 도대체 뭐하고 다니노?”

아침 일찍 밭에 다녀온 할머니가 머리에 쓰고 있던 수건을 풀어헤치며 집으로 들어오더니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는 혀를 차면서 ‘야가 무슨 잘못이 있노’라며 혼자 말을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할머니가 다시 나오기를 기다리며, 방 앞에 엎드려 있었다. 엊저녁 쥐 몇 마리가 돌아다녀서 잠을 설쳤더니 나른한 봄바람에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야는 와 여기서 자노.”

방문 여는 소리에 눈을 뜨니 할머니가 내게 다가와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나를 껴안아 작은 이불이 깔린 큰 바구니 속으로 옮겨주었다.

“내 옆집에 다녀오꾸마. 집 잘 지키고 있으레이.”

내가 움직이면서 목에 걸려 있는 방울 소리가 나자, 할머니는 바구니에서 나오지 못하게 손사래를 치며 대문을 닫고 가버렸다. 봄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하면서 나는 꿈나라로 갔다.


날이 어두워지면 혼자서 놀던 조용한 집이 시끄러워졌다. 종일 보이지 않던 엄마는 내 새끼가 걱정되어서 찾으러 오는 게 아니라, 아버지가 다른 집에 살아서 할 수 없이 밥때가 되어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엄마는 종일 뭐 하고 돌아다녔는지 모르지만, 아버지랑 헤어진 게 아쉬워서 그런지 힘이 없어 보였다. 새끼에게 따뜻한 눈 맞춤도 없이 자기 자리로 가서 할머니가 가져올 밥만 기다리는 눈치였다.

할머니는 이웃집에서 친구들과 놀다 와서 밝은 얼굴로 뭐라고 중얼거리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두 개의 밥그릇을 들고 왔다.

“내가 니네들 밥 주느라 바쁘데이. 마씨게 무꼬 건강하게 크거레이.”

나는 할머니에게 앞발을 들어서 안기려 하자, 할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밥그릇을 내 앞으로 갖다주었다. 옆에서 있던 엄마는 배가 고팠는지 이미 그릇의 반을 비우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내 밥을 뺏어 먹을 것 같아서, 밥그릇에 머리를 처박고 정신없이 먹었다.

할머니가 방에서 딸그락 소리를 낼 때마다 밖으로 나올까 해서 귀를 쫑긋 세웠다. 가끔 방 근처로 가서 기웃거렸지만, 할머니는 방문을 열지 않았다. 얼마 후, 할머니의 방에 불이 꺼지면서 주변은 멀리서 보이는 불빛과 하늘에 떠 있는 달빛으로 어둠을 유지하고 있었다. 가끔 들리는 개 짖는 소리와 산 근처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거슬리기는 했지만, 조금씩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나는 옆에서 잠꼬대하는 엄마의 소리가 신경이 쓰여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