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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탄생의 비밀(2)

나는 '시고르자브르종'이다 / 연재소설

by 김창수

해가 올라오면서 닭의 울음소리에 아침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할머니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밭일 때문이지 큰 보자기 같은 가방을 메고 나갔다. 나는 할머니 뒤를 쫓아가면서 매달렸다.

“내 얼른 다녀와서 밥 챙겨줄 테니, 집에 있거레이.”

할머니는 나를 한 번 앉아주더니 내려놓고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할머니가 나를 보면서 들어가라고 손을 내저었다.

나는 할머니가 기르는 닭들이 있는 닭장으로 갔다. 내가 근처만 가도 그들은 펄떡거리며, 여기저기 도망 다녔다. 얼마 전 닭장이 열렸을 때, 그곳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나는 그들과 같이 놀고 싶었지만, 그들은 나에게 적대감을 느꼈는지 혼비백산하며 도망 다녔다. 할머니가 닭장의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달려와 나를 내쫓으면서 상황은 끝났다. 할머니는 나를 보면서 큰소리쳤다.

“우째! 니 애미랑 똑같노!”

그 소리에 내가 놀라서 마루 밑바닥으로 잽싸게 들어갔다. 할머니가 빗자루를 들고 나를 혼내주려고 했지만, 내가 떠는 모습을 보더니 소리치며 말했다.

“한 번만 더 그라면 진짜 혼내줄끼다.!!”

나는 닭장 앞에서 그들에게 같이 놀자고 애교를 떨었지만, 엄마가 그들을 어떻게 했길래 저렇게 무서워하는지 궁금했다. 닭장 앞에 앉아서 그들과 눈 맞춤하면서 놀고 있는데, 저 멀리서 할머니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내가 혼비백산하면서 나도 모르게 마루 밑바닥으로 들어갔다. 할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밥그릇을 챙겨 나왔다. 나는 마루 밑에서 슬슬 눈치를 보며 기어 나와 할머니의 밥그릇을 기다렸다.

“마씨게 무그레이.”


가끔 동네 사람들이 집으로 와서 떠들어대는 소리에 낮잠을 잘 수 없었다. 점심때가 되자 할머니 친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늘이 그날인 것 같다. 아침부터 부엌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고 있던 할머니가 마당에서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지난번에도 봤던 아줌마들이 하나씩 보일 때마다 반가움보다는 서운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들이 나를 보면서 하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했다.

“저노무 자석이 저 건너편 마을에 사는 놈팽이 갸 새끼제?”

“그걸 어째 아능교?”

“저 애미가 거기에 자주 안 왔나.”

“저 새끼는 지 애비 똑 닮았네.”

“시골 잡종 개들이 다 그러고 안 다니능교.”

나는 어느 아줌마가 마지막 하던 말이 ‘시고르자브르종’이라는 말로 들렸다. 그들은 시골 잡종개라고 나를 놀리는 소리 같았다. 그때는 내가 태어난 것이 마치 내가 잘못해서 그런 줄 알았다. 내가 아버지도 모르는 바람난 엄마가 싫은 이유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아줌마들이 올 때마다 싫었다. 할머니가 나를 대해주는 모습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집집이 나 같은 개를 기르는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서 떠들면서 노는 것은 좋은데, 나를 보면서 한 마디씩 하는 것은 정말 싫었다. 엄마는 이런 날은 아침부터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도 않았다. 지금쯤 또 다른 동네 놈팡이와 놀고 있겠지. 엄마가 임신하면 또 어느 시고르자브르종이 태어날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 새끼가 내 동생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엄마를 다시는 보지 않을 거다.


파란 하늘이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서 온 산이 빨갛게 변해가고 있었다. 집에 놀러 왔던 아줌마들이 하나둘씩 방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쟈는 이제 새끼 티가 안 나네, 할매가 잘 먹여서인지 살이 토실토실하네. “

”근데, 쟈 애미는 통 보이지 않네. 또 무슨 짓 하러 다니는지 가끔 우리 집에도 오더라카이. 새끼 놔놓고 정신없데이. “

방에서 나오는 아줌마들이 한 마디씩 하는 게 엄마를 욕하는 것 같았다. 나는 모르는 체하고 조용히 있었지만, 그런 아줌마들이 싫었다.

”빨리 가서 우리 할배 밥 해줘야지. 할배는 친구들이랑 잘 놀다가, 와 저녁은 집에서 먹는지 귀찮은기라. 또 늦었다고 난리 안나겠나. 내 못 산다. “

투덜거리던 아줌마는 빠른 걸음걸이로 대문을 빠져나갔다. 집은 다시 조용해졌다. 할머니는 분주하게 부엌으로 가더니 부스럭 소리를 내며 뭔가를 바쁘게 하는 듯했다.

해가 빠르게 산 너머로 내려가면서 어두운 밤하늘에 멀리 별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부스럭 소리가 나서 그쪽을 쳐다보니, 엄마가 할머니한테 혼날까 봐 슬금슬금 오고 있었다. 다행히 할머니는 부엌에서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할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지나서 할머니가 밥그릇 두 개를 들고 나왔다.

”애미는 안보이더니 언제왔노. 이제 작작 돌아다니라. 쟈가 걱정도 안 되나.!! “

할머니는 엄마에게 뭐라 하면서 그릇 두 개를 우리 앞에 가지런히 놓았다.

”마시게 마이 묵고 잘 크거레이.“

할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대견한 듯 쳐다보면서 말했다. 어느새 별이 내 머리 위에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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