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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할머니의 외출(1)

나는 '시고르자브종'이다. / 연작 콩트

by 김창수 Mar 21. 2025

  닭 울음소리에 아침이 열렸다. 방안에 인기척이 나더니, 할머니가 방문을 빼꼼히 열고 하늘을 보았다. 할머니가 일어나서 제일 먼저 날씨를 확인하는 일상이었다. 할머니의 모습을 쳐다보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방에서 나와 닭장으로 향했다. 내가 혹시 밤에 닭장에 몰래 들어가 장난을 치지 않았는지 확인하러 가는 것 같았다. 닭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알을 낳지 못한다는 사실을 할머니는 알고 있었다. 

  할머니가 닭 모이를 주고 닭장을 나오면서, 손에는 몇 개의 알이 들려 있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달려가 두 손으로 그녀에게 매달렸다. 할머니와 아침 인사였다. 엄마는 어제 늦은 밤에 들어왔는지 아직도 자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런 엄마의 모습에 집 나간 애가 사고나 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엄마가 가끔 할머니에게 애교를 부리면, ‘니 새끼 하나 간수도 못 하면서 매일 무슨 짓거리하며 돌아다니노!’ 하면서 역정을 냈다. 

  할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 아침을 챙겨 나와서 밥그릇 하나는 엄마에게 던져 주고, 또 하나는 내게 주면서 ‘마이 무그라’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할머니가 엄마를 싫어하면서도 챙겨주는 것은 엄마를 새끼 때 데려와 키운 정 때문일 거라는 추측을 할 뿐이다. 아니면, 할머니의 모질지 못한 성격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늘따라 할머니의 행동이 평소와 달랐다. 새벽에 일찍 밭에 다녀와,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챙기며 정리했다. 방으로 들어가서는 계속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렸지, 할머니는 한 번도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내가 방 근처를 두리번거리며 짖어 보기도 했지만, 할머니는 ‘시끄럽데이’하면서 방문을 열어보지도 않았다.   

  

  따사한 햇살을 맞으며 졸고 있는데, 방문이 덜컹 열렸다.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할머니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얼룩덜룩한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방에서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커다란 가방이 들려 있었다. 얼굴은 화장을 진하게 해서인지,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달라 보였다. 눈가에 검은색을 칠해서 얼굴이 차가워 보였고, 파마한 머리에 숯을 덮어씌운 듯 염색을 해서 평소보다 젊어 보였다. 

  할머니는 굽이 조금 높아 보이는 신을 신다가 순간, 균형을 잃어버리고 넘어질 뻔했다. 신발이 어색했는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시 그 신발을 조심스럽게 신었다. 나는 할머니가 걱정되어 슬며시 옆으로 다가갔다. 할머니는 ‘개안타’ 하면서 내게 작별 인사라도 하듯 애정 어린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내 며칠 다녀 오꾸마. 집 잘 지키고 있으레이. 니 밥은 옆집 아줌마에게 챙겨주라고 했데이.”

  내가 태어나서 할머니와 헤어진 적이 없었다. 엄마는 며칠씩 나가 돌아다녀도 관심이 없었지만, 할머니를 오랫동안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금방 온데이. 걱정 말기라” 

  내 귀가 축 늘어졌는지, 할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안심시켜 주었다. 내가 할머니 뒤를 따라서 졸졸 쫓아가니까, 그녀는 걱정되어서인지 뒤를 계속 쳐다보면서 들어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나는 할머니가 혹시 다시 오지 않을까 하면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길에 앉아 있었다. 봄 햇살에 노란 꽃들이 늘어서 있던 길이 석양으로 빨갛게 변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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