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고르자브르종'이다 / 연재소설
옆집 아주머니가 아침에 밥그릇을 들고 왔다.
“할매가 없어 기가 죽었네. 엄마는 니 애비한테 갔나?”
밥을 가져왔는데도 먹을 생각을 하지 않고 혼자 있는 내가 측은해 보여서 하는 말이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없으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할머니가 챙겨주는 밥보다 맛은 없었지만, 배고픔은 그녀에게 꼬리를 치게 했다.
그녀는 가끔 집에 와서 할머니와 수다를 떨다가 점심을 먹고 가곤 했다.
“옆 동네 철수 아버지가 며칠 집에 들오지 않았다네 예.”
할머니의 귀가 그녀의 입으로 움직였다.
“읍에 자주 댕기더니, 얼매 전부터 그곳에 여자가 생겼다는 소문이 돌지 안았능교.”
할머니는 무슨 말을 하고 싶지만, 그녀의 말이 끊길까 봐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면서 침을 꼴깍 삼켰다.
“철수 엄마는 며칠 동안 남편 찾으러 다닌다고 정신이 없어예.”
“그 양반 와그라노. 둘이서 아무 일 없이 재밌게 잘 살았다 아이가.”
할머니가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장단을 맞췄다.
“아이라예. 오래전에 젊은 색씨랑 아를 낳아 난리를 치지 안았능교. 기억 안나예?”
“맞다!! 기억난데이.”
할머니는 뭔가를 찾은 듯 손뼉을 치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 양반 정말 못 쓰겠네. 그때 철수 엄마가 죽다 살았다 아이가.”
동네 모든 소문이 아줌마 입에서 전달되었고, 할머니는 그래서 그녀를 좋아했다.
나는 조용해진 집에서 졸고 있는데, 부스럭 소리를 듣고 귀를 쫑긋 세워 그곳을 쳐다보았다. 낯익은 고양이가 마루 밑에 숨어있었다. 얼마 전에도 봤던 그 새끼 고양이였다. 나는 살금살금 고양이 쪽으로 기어갔다. 그는 내가 움직이자, 어느새 닭장 쪽으로 도망쳤다. 고양이 소리에 닭들이 후다닥 거리며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나는 더는 고양이를 쫓아가지 않았다. 혹시 할머니가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젯밤에는 할머니가 꿈에 나타났다. 잘 지내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잘 들리지 않아 할머니에게로 가는데 잠에서 깼다. 오늘 밤은 별들이 유난히 밝았다. 멀리 별이 떨어지는데, 내게로 올 것 같아서 마루 밑으로 숨었다. 이럴 때 엄마가 옆에 있으면 덜 무서울 텐데, 오늘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밤이 깊어가면서, 산속에서 들리는 짐승 울음소리가 멀리 퍼져나갔다. 친구들이 여기저기서 짖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아침에 옆집 아주머니가 밝은 웃음을 띠며, 밥그릇을 챙겨 왔다.
“할머니 오늘 오시는 날인데, 마이 무구라.”
나는 귀를 쫑긋했다. 할머니가 언제 온다는 말도 없이 ‘며칠’이라고만 했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며칠째 맛없는 밥이었는데, 오늘은 꿀맛이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올지 어떻게 알았는지 밤늦게 와서 밥도 먹지 않고 잠만 자고 있다.
아침부터 길가에 앉아서 할머니가 갔던 곳을 보고 있었다. 봄은 내 눈을 고양이의 눈으로 만들었다. 노란 꽃들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니 여기서 뭐하노.”
깜짝 놀라 눈을 뜨니, 내 바로 앞에 할머니가 반가운 얼굴로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할머니는 보따리를 힘겹게 들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힐긋 엄마를 쳐다보았다.
“니 애미 와저리 힘이 없어 보이노. 며칠 보지도 못한 내가 왔으면 반가워해야지. 쟈는 또 집에도 안 들어왔을끼라. 내가 없으면 지 새끼 보살펴줘야지 와 저러는지 모르겠네.”
할머니는 화가 난 듯 분을 삼키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방문을 꽝 닫았다. 졸던 엄마가 갑자기 놀라서 마룻바닥으로 기어들어 갔다. 엄마가 닭장에서 사고 치면, 할머니가 빗자루를 들고 쫓아다니면 했던 반사행동이었다. 엄마는 그럴 때면 항상 자기만의 성으로 피신했다. 처음에는 그런 광경이 무서웠으나, 나도 몇 번 경험하니 이제 아무런 감정도 없다. 다만, 저러는 엄마가 측은해 보일 뿐이다,
할머니 방에서 먼 길 오느라 피곤했는지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며칠 동안 혼자 집 지키느라 긴장했는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할머니가 ‘집 지키느라 고생 만았데이.’ 하면서 나를 안아 주었다. 할머니의 부드러운 손이 내 머리를 어루만져주고 있는데, 갑자기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내 없는 동안 옆집 아주메가 해준 밥 마시게 무긋제. 그라도 내가 해준 밥이 더 마시슬게다. 마이 무구라.”
어느새, 해가 산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할머니는 며칠간 힘들었을 나를 위해서 오늘 가져온 생선을 구워서 밥과 따로 한 접시를 만들어 주었다. 엄마도 오랜만에 냄새나는 생선구이를 게걸스럽게 한 접시 뚝딱 비우고, 내 접시를 탐냈다.
“애미라는게 와 이라노. 저리 안가나!!”
할머니는 내가 먹을 때까지 옆에서 지키고 있었다. 나는 오늘따라 더욱 환하게 밝은 보름달을 보면서 며칠간 가슴에 박힌 적막감을 날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