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고르자브르종'이다 / 연재소설
나는 할머니와 아줌마들이 점심을 먹을 때, 집 밖으로 도망치다시피 뛰쳐나왔다. 지금 어딘가에 있을 엄마가 궁금해졌다. 내가 할머니 모르게 집 밖으로 나온 걸 알면 나를 엄청나게 혼내주겠지. 생소한 동네 길을 따라 엄마의 냄새를 맡으며 다녔다. 가끔 다리를 들어 오줌을 싸서 영역 표시도 했다. 혹시 길을 잃으면 할머니를 다시 보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개들이 나를 보고 짖어 대면 멀리 달아났다. 남의 집 담장을 지나면서 몇 군데서 엄마의 냄새를 맡았다. 혹시 하는 마음에 주변을 돌아다녔지만, 엄마를 볼 수 없었다.
나는 동네 밖에 있는 산으로 갔다. 이곳저곳을 살피며 조금씩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계곡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갈증이 생겨 계곡으로 내려가 물을 마시고 잠시 앉아있는데, 근처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검은 물체가 튀어나오면서 나를 잡아채려고 덮치려 했다. 본능적으로 도망친 것 외에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내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산속에 집 한 채가 보였다.
그곳은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였다. 집 안으로 살금살금 들어갔더니, 할머니가 쓰는 것 같은 큰 가마솥이 하나 있었다. 그 옆에는 이것저것 너저분한 게 보였고, 그 옆에는 몇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먹다 남은 음식에서는 할머니의 냄새인지 분간할 수 없는 익숙한 냄새가 났다. 나는 큰 가마솥 근처로 가면서 냄새는 조금씩 분명해졌다. 잠시 머뭇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상한 모양의 물체를 발견했다. 가끔 할머니가 부엌에서 들고 나와 쓰레기통에 버렸던 그것과 비슷했다. 나는 그것이 엄마라고 직감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하던 말이 떠오르면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 밖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려서 그곳을 정신없이 뛰쳐나왔다.
나는 누군가가 뒤에서 쫓아오는 발소리에 숲 속을 향해 달렸다. 나뭇가지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통증이 느껴졌지만, 긴장을 해서인지 견딜 만했다. 나는 인기척이 사라지자, 걸음을 멈추고 숨을 죽이면서 주변을 살폈다. 갑자기 조용해진 숲 속은 정적만 흐르고 있었다. 가끔 들리는 새소리에 깜짝 놀라긴 했어도 엎드려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긴장이 풀리자, 졸음이 몰려왔다. 한 줄기 햇빛이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왔다.
’여기서 뭐 하고 있니?‘ 엄마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을 따라 달려가니 엄마가 저 멀리서 뒤를 쳐다보지도 않고 가고 있었다. 엄마를 잡으려 해도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쫓아가니 분명히 보이던 엄마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 애야! 이제는 나 없이도 잘 살아가거라. 내가 너에게 그동안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어 미안했다.‘ 나는 인기척에 놀라 꿈에서 깨어났다. 조금 전까지 보이던 엄마의 모습을 더는 찾을 수가 없었다.
숲 속에 빛이 사라지고,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길을 헤매며 할머니가 걱정할까 봐 냄새를 맡으며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가 그 폐가를 발견했다. 잠시 들어가려 했으나, 안에서 인기척이 들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엄마의 냄새만 맡고 산 밑으로 내려왔다. 처음 나왔던 길이라 내 흔적을 더듬으면서 집에 밤늦게 들어갔다.
불이 꺼져 있던 할머니 방이 환하게 바뀌더니, 방에서 신발도 신지 않고 뛰쳐나왔다.
“니 어디 가서 뭐 하다 왔노!”
할머니가 그렇게 화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두 다리를 들어서 할머니 품에 안겼다.
“집 나가서 우짤라고 그러노! 내가 얼마나 기다린지 아나?”
할머니는 부엌으로 뛰어가 준비해 뒀던 밥그릇을 가져왔다.
“배고플낀데 마이 무구라. 다시 멀리 가지 마라 알겠제.!‘
나는 배가 고파서 정신없이 밥그릇을 비우고, 몰려오는 잠에 빠졌다.
아침 일찍 할머니는 뜨거운 물에 더러워진 나를 정성스럽게 씻겨주었다.
”니 애미 찾아 돌아다닌 것 다 안다만, 어디 있는지 모르겠는데, 우야겠노.“
할머니도 새끼부터 끼워온 엄마가 없어지자, 말 못 하고 속앓이를 한 것 같다.
”니라도 잘 커서 내 옆에 같이 있어 주면 좋겠데이. 조그만 기둘리면 내 좋은 여자 친구 데려올끼다. 그때까지 어디 가지 말고 잘 있으레이. “
할머니는 타월로 물기를 닦아주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어제 종일 엄마 찾으러 다니며 고생했다고 할머니가 고기를 듬뿍 넣어 밥그릇을 가져왔다.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나서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어제 빈집에서 맡았던 냄새가 계속 코를 자극했다. 처음에는 할머니 냄새인 줄 알았는데, 내 옆에 같이 있었던 엄마 냄새였다. 할머니는 내가 맛있게 해 온 밥을 먹지 않자, 걱정되는지 숟가락으로 먹여주었다.
”괘안타. 시간이 지나면 잊어질끼라.“
할머니는 그동안 풀어주었던 내 목에 긴 줄을 연결했다. 나를 묶어 놓는 것이 아니라 보호해 주려는 할머니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불편하기는 했지만, 집안을 돌아다니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행인지 몰라도, 닭장을 당분간 갈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