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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동네잔치(1)

나는 '시고르자브르종'이다 / 연재소설

by 김창수

날씨가 더워지면서, 이른 아침부터 그늘로 피해 있었다. 가끔 소나기가 내리면,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장난을 치기도 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겪는 여름은 밤에 극성맞은 모기들만 없다면 견딜 만했다. 가끔 할머니가 줄에 묶여 있는 내 모습이 측은해 보였는지 동네 산책을 시켜주었다. 항상 줄에 묶여 있는 나를 보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개 학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 처지를 잘 아는 할머니의 따뜻한 배려였다.

엄마가 실종된 이후, 모든 것이 어느 순간부터 변해가고 있었다. 할머니는 내가 입은 상처를 치유해 주기 위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 할머니 덕분에 지금은 마음을 추스르고 밥도 잘 먹고 있다. 집으로 놀러 오는 아줌마들이 나를 보면 다가와 ‘애미 없이 잘 크네.’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가 전과 달라진 것은 할머니에게 매달리면서 재롱을 떨지 않았다. 할머니와 동네 산책할 때마다 내가 그녀의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들이 변해가고 있었다. 닭장에서 나만 보면 난리 치던 닭들에게도 관심이 없어졌다. 가끔 마루 밑으로 기어 다니면서 나를 자극했던 고양이 새끼도 더는 내 놀이 대상이 아니었다. 엄마가 나를 잘 보살펴주지는 않았지만, 가끔 품속에 안겼던 행복한 기억도 사라져 가고 있었다. 이 모든 변화가 시간이 지나면서 나 자신 스스로 성장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나는 마을 개들과 당당하게 우렁찬 목소리로 짖을 수 있게 되었다.


천둥 번개가 요란하게 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 사이로 햇빛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침부터 꽃단장하면서 뭔가 설레는 분위기였다. 며칠 동안 무슨 준비를 하는지 동네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할매요! 준비되었으면 가입시더.”

옆집 아주머니가 집으로 들어오더니 큰소리로 할머니를 불렀다.

“조매 기다리라. 바쁘데이.”

“뭐 그리 할게 마능교. 그마하고 퍼떡 나오소.”

할머니는 옆집 아줌마 성화에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녀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여러 색이 있는 저고리를 입고, 머리에는 깃털이 출렁거리는 이상한 모자를 뒤집어쓰고, 허리에는 두꺼운 띠를 둘렀다. 바지통은 넓어서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았다.

“매년 마을 행사때메 거추장스럽게 입을라카니 힘드네. 괘안나?”

할머니는 옷매무새가 마음에 들지 않은 지 이리저리 만지다가 아주머니에게 짜증을 냈다.

“우짜면 좋노, 이리와서 좀 도와도.”

“할매! 예쁘네예.”

할머니는 아주머니에게 끌려가다시피 집을 나섰다. 할머니가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뒷모습이 장단에 맞춰서 가는 듯했다. 멀리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끈에 묶여서 멀리 갈 수 없었다. 지나가는 동네 개들이 나를 힐끗 쳐다보면서, 그들의 자유로운 몸을 과시하며 마을 축제하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묶여 있는 긴 끈을 이빨로 매듭을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일부러 끈을 꽉 매지 않았는지,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본 건 처음이었다. 동네 개들도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가 어디 있는지 찾으면서 돌아다녔다. 아침에 봤던 낯익은 복장을 한 무리가 들고 있는 물건으로 소리를 내며 신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무리 속에 할머니가 보였다. 나는 꼬리 치며, 할머니를 향해 달려갔다.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더니, 그녀가 깜짝 놀라며 손짓으로 저리 가라고 손짓했다.

시끄러운 소리가 끝나고, 할머니가 멀리 도망쳐 있던 나에게로 다가왔다.

“니 우째 끈을 풀었노.”

할머니는 길 잃은 아이를 찾은 듯이 기뻐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잠시 바라보았다. 나는 할머니에 매달려 재롱을 떨지는 않았지만, 반가운 마음에 혀로 그녀의 얼굴을 핥았다. 할머니는 내가 대견스러웠는지, 나를 꼭 앉아줬다.

“배고프제? 이리 온나”

잔치상 같이 차려 놓은 많은 음식에서 맛있는 것을 골라 접시에 담아 내게 줬다.

“마이 무그라.”

항상 하는 할머니의 말이 오늘따라 정겹게 느껴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옆집 아줌마가 다가왔다.

“이제 니 다컸데이. 마이 무그라. 오늘은 동네잔치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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