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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엄마의 실종(1)

나는 '시고르자브르종'이다 / 연재소설

by 김창수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오자. 집 분위기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봄이 깊어지면서 날이 점점 빨리 밝아졌다. 닭 울음소리도 더욱 우렁차게 들려왔고, 할머니도 바쁘게 움직였다. 밭일을 가기 전에 부엌에 들어가서 부리나케 내 밥그릇을 챙겨 주면서 ‘니 애미는 안들어왔노?’하면서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닭장에 먹이통을 갈아 주러 가는 할머니 뒤를 졸졸 따라갔다. 닭장 근처에서는 잠시 머뭇거렸다. 닭들이 나를 보고 후다닥 거리면, 할머니에게 괜히 혼날 것 같아서였다.

통 넓은 바지에 큰 모자를 쓰고, 얼굴을 수건으로 감싸 눈만 보이는 할머니가 귀신같았다. 커다란 쟁기를 담은 가방을 둘러매고 ‘다녀 오꾸마’하면서 밭일을 가는 할머니 뒤를 쫓아갔다. ‘나오지 마레이.’ 하면서 손사래를 치자, 나는 걸음을 멈추고 꼬리만 흔들었다. 며칠 밭일이 밀린 할머니가 뒤뚱거리며 서둘러서 가는 뒷모습이 흥겹게 보이기도 하지만, 안쓰럽게 느껴졌다. 멀리 산 위로 빨간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밥그릇을 비우고, 할머니가 나간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 집안을 둘러보며 동분서주했다. 닭장 옆을 지나갈 때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살금살금 기어가다시피 했다. 엄마가 얼마나 못살게 굴었으면 비슷하게 생긴 나만 봐도 질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엄마는 이제 집에도 며칠째 들어오지 않고 있다.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꽃가루가 흩날리더니, 이제는 온 세상이 꽃으로 덮였다. 겨울 동안 조용하던 동네 사람들도 농사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밭일 다녀온 할머니는 힘든지 방에 들어가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나는 마루 옆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어젯밤 엄마 꿈을 생각하면서 눈이 감겼다.


갑자기 주변이 시끄러워져서 눈을 뜨니, 동네 아줌마들이 점심 먹으러 할머니 집으로 왔다. 가끔 모였는데, 오늘이 그날인 것 같다.

“쟈는 이제 마이 커서 저 옆 동네 지 애비 똑 닮았네.”

“요즈음 쟈 애미는 집에서 안 보이데요?”

“바람이 나서 동네방네 돌아다니느라 안 바쁘겠능교.”

“그란데, 요즈음 동네 개들이 하나둘씩 없어진다 카던데, 개도둑이 또 설치는 갑제.”

“작년에도 개들 때문에 난리치사 떠니 오래 또 그라네.”

“몇 집 아저씨들은 개 없어졌다고 찾아다니던데, 진짜로 개도둑이 잡아갔나베?”

“동네 돌아다니다, 밥때만 되면 오던 개들도 안 보인다 카더니만 우짜면 좋노.”

“쟈도 돌아다니지 못하게 할머니에게 무꺼노으라 캐야겠네.”

나는 동네 아줌마들이 떠들어 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엄마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집에 오랫동안 안 들어온 게 개 도둑에게 잡혀간 것인지, 아니면 다른 동네 개 따라 어디로 간 건지 별생각이 다 들었다. 할머니가 아주머니들 이야기를 듣더니,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집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녀석은 나중 문제였고, 당장에 하나밖에 없는 내가 걱정되는 것 같았다.


나는 어젯밤 꿈에 나타난 엄마가 갑자기 생각났다. 엄마가 나를 부르며 누군가에 쫓기듯 어디론가 달려가는 모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엄마의 표정은 어두워 보였고, 뭔가 불안한 모습이었다. 내가 엄마를 쫓아가려는데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에 잠이 깨면서 꿈은 끝났다. 다시 자면 꿈이 이어질 것 같아서 잠을 청했지만,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나는 몽롱한 상태에서 아침을 맞이했고, 지금도 그 꿈속에서 헤매고 있다.

“니 뭐하노?‘

할머니가 동네 아줌마들 점심 챙기느라 부엌을 왔다 갔다 하는데도 반응하지 않은 나를 보면서 걱정스럽게 말했다. 나는 할머니의 말에 깜짝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면서 꼬리를 흔들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이었다. 할머니는 다시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는지 나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안은 아줌마들의 말과 웃음소리로 가득하였지만, 나는 아무런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나는 꿈 생각과 아줌마들이 했던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동시에 어지럽게 돌고 있었다. 작년에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 그때에는 태어나지 않아 나는 잘 몰랐다. 올해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고, 엄마가 이런 일이 없었는데 며칠째 들어오지 않고 있다면,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온몸에서 솟아오르는 뭔가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걱정과 불안감일 것이다. 나는 계속 할머니 방을 쳐다보면서 갈등하고 있었다. 대문 밖으로 당장 뛰쳐나가야 할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몸이 움직이는 대로 아니,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찾으러 가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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