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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탄생의 비밀(2)

나는 '시고르자브종'이다 / 연작 콩트

by 김창수 Mar 19. 2025

  해가 뜨면서, 닭의 울음소리에 아침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할머니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밭일 때문이지 큰 가방을 메고 나갔다. 나는 할머니 뒤를 쫓아가면서 매달렸다.

  “내 얼른 다녀와서 밥 챙겨줄 테니, 집에 있거레이.”

  할머니는 나를 한 번 앉아주더니 내려놓고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할머니가 나를 보면서 들어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나는 할머니가 키우는 닭들이 있는 닭장으로 갔다. 내가 근처만 가도 그들은 펄떡거리며, 여기저기 도망 다녔다. 얼마 전 닭장이 열렸을 때, 그곳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나는 그들과 같이 놀고 싶었지만, 그들은 나에게 적대감을 느꼈는지 혼비백산하며 도망 다녔다. 할머니가 닭장의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달려와 나를 내쫓으면서 상황은 끝났지만, 할머니는 나를 보면서 큰소리쳤다.

  “우째! 니 애미랑 똑같노!”

  그 소리에 내가 놀라서 마루 밑바닥으로 잽싸게 들어갔다. 할머니가 빗자루를 들고 나를 혼내주려고 했지만, 내가 떠는 모습을 보더니 소리치며 말했다.

  “한 번만 더 그라면 진짜 혼내줄끼다.!!”

  나는 닭장 앞에서 그들에게 같이 놀자고 애교를 떨었지만, 엄마가 그들을 지난번에 어떻게 했길래 저렇게 무서워하는지 궁금했다. 닭장 앞에 앉아서 그들과 눈 맞춤하면서 놀고 있는데, 저 멀리서 할머니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내가 혼비백산하면서 나도 모르게 마루 밑바닥으로 들어갔다. 할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밥그릇을 챙겨 나왔다. 나는 마루 밑에서 슬슬 눈치를 보며 기어 나와 할머니의 밥그릇을 기다렸다.

  “마씨게 무그레이.”


  가끔 동네 사람들이 집으로 와서 떠들어대는 소리에 낮잠을 잘 수 없었다. 점심때가 되자, 할머니 친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늘이 그날인 것 같다. 아침부터 부엌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고 있던 할머니가 마당에서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지난번에도 봤던 할머니들이 하나씩 보일 때마다 반가움보다는 서운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할머니들이 나를 보면서 흉보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했다.

  “저노무 자석이 저 건너편 마을에 사는 놈팽이 갸 새끼제?”

  “그걸 어째 아능교?”

  “저기 앉아 있는 애미가 거기에 자주 안 왔나.”

  “쟈는 지 애비 똑 닮았네.”

  “시골 잡종 개들이 다 그러고 안 다니능교.”

  나는 어느 할머니가 마지막 하던 말이 ‘시고르자브종’이라는 말로 들렸다. 그들은 시골 잡종개라고 나를 놀리는 소리 같았다. 그때는 내가 태어난 것이 마치 내가 잘못해서 그런 줄 알았다. 내가 아버지도 모르는 바람난 엄마가 싫은 이유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할머니들이 올 때마다 싫었다. 할머니가 나를 대해주는 모습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집집이 나 같은 개를 기르는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서 떠들면서 노는 것은 좋은데, 나를 보면서 한 마디씩 하는 것은 정말 싫었다. 엄마는 이런 날은 아침부터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도 않았다. 지금쯤 또 다른 동네 놈팡이와 놀고 있겠지. 엄마가 임신하면 또 어느 시고르자브종이 태어날지 궁금하지도 않다. 그 새끼가 내 동생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엄마를 다시는 보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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