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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새 가족(2)

나는 '시고르자브르종'이다 / 연재소설

by 김창수

할머니는 매일 그녀의 밥그릇에 고기를 넣어서 정성스럽게 챙겨주었다.

”마이 무그레이. 얼른 커서 니 오빠랑 재미있게 살아야제.“

할머니가 내게 준 관심이 그녀에게로 갔으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할머니가 지극 정성으로 그녀를 보살펴 주는 게 좋았다. 그녀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하나씩 배워나갔다. 할머니가 아직 어려서 밤에는 그녀의 목에 줄을 채워났지만, 아침에 밥그릇을 가져다주면서 제일 먼저 줄을 풀어주었다.

나른한 오후에도 그녀는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나와 장난을 치던 고양이가 마루 밑에서 얼쩡거리면, 자세를 낮춰서 슬금슬금 기어갔다. 그 고양이는 눈치를 채고 우리의 약점을 알고 있는 듯, 항상 닭장 쪽으로 도망을 갔다. 나는 그녀가 혹시 그쪽으로 쫓아갈까 봐 유심히 보고 있다가, 낌새가 보이면 미리 달려가 그녀를 잡아 왔다. 할머니는 항상 낮잠을 잤지만, 귀가 밝아 무슨 조그마한 소리가 나도 ‘누그 왔나?’ 하면서 방문을 열었다. 그런 할머니가 닭장에서 그녀가 소란을 피우면 내가 어릴 적 그랬듯이 빗자루로 혼날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녀가 사고를 치거나 몰래 밖으로 나가 길을 잃고 돌아오지 않을까 봐 항상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감나무에서 떨어지는 감을 잡고 이리저리 놀다가, 감을 먹고 빨개진 얼굴로 돌아다니는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니 얼굴이 뭐꼬?“

할머니는 더러워진 그녀의 얼굴을 물수건을 가져와 깨끗하게 닦아주었다.

”오빠가 옆에서 신경도 안쓰고 뭐하노? 야도 조금 있으면 아가씨된데이.“

할머니가 나를 혼내는 게 아니라, 잘 보살피라는 말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옆에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하지만, 부모가 없이 자라는 우리는 어차피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야 했다.


할머니와 새벽에 밭으로 가면, 그녀는 끙끙거리며 쫓아오려고 했다. 아직은 먼 길을 걷기에는 힘들어서 데리고 다니지 않았다. 내가 뒤를 돌아보면 그녀가 앉아서 멀뚱히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밭에서 일 마치고 돌아오면, 저 멀리서부터 꼬리를 흔들며 형언할 수 없는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그 표정은 부모와 떨어져서 아무것도 모르고 낯선 이곳으로 왔을 때와 교차하는 슬픔 같아 보였다. 그녀가 할머니에게 다가가 두 발로 예쁜 짓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집으로 누가 오면 온 힘을 다해서 짖어댔다. 우체국 아저씨가 귀엽다고 다가와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사납던 그녀는 곧 꼬리를 흔들며 그 아저씨에게 재롱을 떨었다. 나는 어릴 적에 누가 오면 엄마 옆에 숨어서 조용히 눈치만 보며 있었다. 엄마가 내 옆에 항상 있지는 않았지만, 믿을 만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엄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녀는 숨을 데가 없기에 사람이 더욱 그리웠을 것이다.

밤이 되면 그녀는 졸다가도 부스럭 소리가 나면 짖어댔다. 아직도 누군가에 의해서 보호받아야 할 강아지의 자기 보호를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할머니는 밤늦게까지 짖어대는 그녀에게 자다가 방문을 열고 신경질적으로 ‘시끄럽데이.’하면서 소리를 쳤다. 그녀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만, 할머니의 고함에 ‘끄응’ 소리를 내며 조용해졌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내가 그녀에게 따뜻한 보호자가 되어주고 싶었다.

가을바람이 심하게 불어오면서 그녀는 내 옆으로 바짝 붙어 잠을 청했다. 나는 그녀의 몸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어릴 적에 엄마에게 잠을 청했듯이 그녀도 나를 엄마처럼 느끼며, 꿈을 꾸고 있겠지. 엄마가 보고 싶어지는 밤이다.


우리는 아침에 닭 울음소리에 깼다. 엊저녁 늦게까지 집 주변에서 짐승 울음소리 때문에 그녀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겁먹은 그녀가 짖어대면 할머니가 문을 열고 큰소리를 쳤지만, 처음 듣는 괴상한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그녀를 품어주면 그녀는 할머니 때문에 짖지는 못하고 내게 파고들었다. 그런 그녀를 나는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누가 먼저 잠을 잤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그녀의 코 고는 소리가 할머니의 소리와 앙상블을 이루어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다행히 그녀는 처음 겪는 짐승 울음소리를 잘 이겨냈다.

”자는 어젯밤에 와 시끄럽게 짖어댔노?“

할머니가 방문을 열고 나오면서 그녀를 보며 시큰둥하게 한 말이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평소대로 할머니 품에 안기려 했다. 그녀도 뭔가 낌새를 차리고 할머니에게 가서 앉아달라고 꼬리를 흔들며 두 발을 들었다. 할머니는 부엌으로 가다가 그녀를 덥석 안아줬다.

“니는 예쁜 짓 해서 조타, 자 애미는 오래 키웠지만도 재미 없었데이. 파인기라.”

할머니는 부엌에서 그릇을 들고 나와 닭장으로 갔다. 할머니의 하루가 시작이었다. 닭장에서는 후다닥 소리가 요란스럽게 났다. 할머니가 알을 꺼내오면서 ‘자들은 사료를 꼬박 주는데 알이 와이리 작노.’하면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배가 고팠는지 계속 부엌만 쳐다보고 있었다. 활동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신경 쓸 일이 많아서 에너지 소비가 컸을 것이다. 할머니가 밥그릇에 음식을 듬뿍 담아서 그녀에게 주며 ‘니는 잘 먹어서 좋데이. 마이 무그라.’ 하면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는 게 눈 감추듯이 쉬지도 않고 꼬리를 흔들며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나는 조금 먹고 남긴 그릇을 그녀에게 슬며시 밀어줬다. 할머니가 큰 밀짚모자를 쓰고 밭으로 가자, 우리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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