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고르자브르종'이다 / 연재소설
무더위가 한풀 꺾이면서 아침에는 찬 바람이 불어왔다. 논에 벼 이삭이 노랗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방문을 열고 나오자, 나는 기지개를 켜며 그녀 옆으로 갔다. 할머니가 매어 놓은 내 목줄은 지난 마을 잔치 이후 풀어놓았다. 나는 할머니를 따라 아침 일찍 밭에 가서 심어 놓았던 채소들을 뽑을 때 옆에서 바구니를 입에 물고 다녔다. 나는 이 집의 일손으로 할머니를 도와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이제는 귀여운 새끼가 아니었다.
할머니가 어디를 가던 나는 그녀 옆에서 쫓아다녔다. 그녀가 들리는 곳에서는 주변에 앉아서 조용히 그녀를 기다렸다. 그런 나를 할머니가 좋아했다. 동네를 다니면서 사람들이 왜 목줄을 하지 않느냐고 할머니에게 뭐라고 하면, ‘야는 괘안타. 안 문다.’라고 하며 자신 있게 말했다. 동네 사람들이 나를 사람처럼 대해주는 할머니를 걱정하면서도 부러워하는 눈치를 보면서 나는 의기양양하게 할머니와 힘차게 걸어 다녔다.
가끔 줄에 묶여있는 동네 개들이 짖어대면 할머니는 그 개를 향해서 ‘시끄럽데이!’라고 큰소리로 난리를 쳤다. 그런 그녀가 나를 보면서는 ‘저런 애들 신경 쓸 것 업데이,’하면서 웃었다. 할머니와 동네 몇 군데를 방문하고 집에 오니, 옆집 아줌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번에 부탁한 강아지 구해놨는데, 언제 데려올까예.”
“아무 때나 괘안타. 후딱 데려온나.”
할머니는 그녀가 돌아간 후, 엄마가 있던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쓰던 밥그릇도 깨끗하게 닦아놓고, 포대기도 새것으로 가져다 놓았다.
이른 새벽에 할머니와 밭에 다녀와서 잠시 졸고 있는데, 옆집 아주머니가 집으로 들어오면서 소란스럽게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할매요! 있능교? 퍼뜩 나와보소.”
할머니가 방문을 열고 나오면서 ‘아침부터 와이리 시끄럽노.’ 하면서 옆집 아줌마가 데리고 온 강아지를 쳐다봤다.
“지난번 이야기한 가가?”
“마심더. 암컷이라 예쁘지예?”
할머니가 강아지를 앉아서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괘안네. 야가 저놈하고 잘 지내야 할 텐데.”
할머니는 데려 온 강아지를 내 옆에 마련해 둔 자리에 놓았다.
“니 동생이데이. 잘 보살펴주구레이’
그녀는 잠시 눈치를 보더니, 어색함을 없애려는지 꼬리를 치며 내게 장난을 걸어왔다. 모든 게 낯설어서 하는 행동이라 생각했지만, 부모와 생이별해서 당분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녀의 애교 섞인 장난을 받아주면서 마당에서 같이 놀았다. 그녀가 닭장 쪽으로 가려하는 것을 목덜미를 물어서 못 가게 했다. 아직 집 분위기를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할머니가 그녀를 혼내는 게 싫었다.
나는 그녀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잠자리, 음식 그리고 가장 중요한 주위 환경이 바뀌어 그녀가 문제라도 생길까 봐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모든 신경이 그녀에게 쏟아지면서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다행히 젖을 떼고 와서 그런지 아직도 젖살이 있어 포동포동했지만, 날이 갈수록 살이 빠지면서 조금씩 활동량도 많아졌다. 가끔 내게 장난을 걸어와서 같이 뒹굴면 근육이 생겼는지 힘이 있었다.
”자는 크는 게 보이는기라. 암놈이 저리 활달해서 니가 우째 감당하겠노. 그래도 니는 자 밖에 없다 생각하고 잘 지내레이.”
할머니가 마당에서 나와 장난치면서 즐거워하는 그녀의 모습이 빨리 적응해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엄마 걱정으로 여럿 날 식음을 전폐하자, 할머니는 혹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수시로 나를 보살펴 주었다. 할머니의 정성으로 길고 길었던 악몽에서 벗어나, 이제 또 다른 생활에 빠진 나에게 혹시나 둘 간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그녀를 돌보고 있다.
할머니가 갖다 준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내 밥그릇의 음식을 남겨 그녀에게 밀어주면 어느새 자기 밥을 다 먹고 그릇을 비운 채, 내 눈치를 보면서 밥그릇을 끌어다 맛있게 먹었다. 그녀가 밥 많이 먹고 빨리 커서 나랑 동네도 다니고, 산에도 같이 갔으면 좋겠다. 동네 개들이 덤벼들면 이제는 내가 보호해 줄 수 있다. 저녁을 먹고 그녀가 목에 묶인 끈을 끌고 마당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무슨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문 옆에 다리를 올리더니 오줌을 쌌다. 내가 새끼 때 하던 모습이었다. 이제 이곳이 그녀의 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