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고르자브르종'이다 / 연재소설
할머니는 며칠간 짐 싸면서 마음고생을 해서인지 얼굴이 핼쑥해졌다. 여행 떠나기 전에 이것저것 집안일을 챙기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옆집 아줌마랑 같이 여행을 가기 때문에 다른 집에 우리 밥과 닭장 사료를 부탁해 놓았는지 가끔 얼굴만 보는 아줌마가 집으로 왔다.
“야는 많이 컸네예. 쟈는 처음 보는데, 어디서 데려 왔습니꺼?”
“야 엄마 없어져서 옆집 아줌마가 야 짝 해줄라고 암놈 데려 안왔나.”
“쟈도 크면 내년에는 새끼 낫겠네예. 흐흐!”
동네 아줌마는 할머니와 한참 수다를 떨다가 ’집은 걱정하지 말고, 여행 조심해서 잘 다녀 오이소.’하면서 커다란 엉덩이를 흔들며, 추운지 빠른 걸음으로 집을 나갔다.
오늘이 할머니와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할머니가 지난번 친척 집에 며칠 다녀왔을 때도 이렇지 않았는데, 그때에는 엄마가 있어서였을까?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면서 엄마 생각하다 잠을 설쳤다. 그녀가 옆에서 코를 골며 잘 자는 모습을 보니 얄밉게 느껴졌다. 그녀도 할머니가 멀리 떠나는 걸 알고 있겠지. 내가 깜빡 졸았는지 닭이 울었다.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침 일찍부터 평상시처럼 우리 밥을 챙겨주고, 닭장으로 가서 모이를 주면서 달걀을 몇 개 들고 나왔다. 할머니도 여행 갈 생각에 잠을 못 잤는지 조금 피곤해 보였다. 할머니가 오늘은 생선을 넣고 맛있게 해 준 밥을 먹고 잠시 졸고 있는데, 밖에서 차 소리가 들렸다. 옆집 아줌마가 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할매요. 차왔심더. 얼릉 나오이소.”
할머니가 방에서 나오자, 우리는 동시에 할머니에 가지 말라고 하듯 매달렸다.
“괘안타. 네 곧 올끼다. 집 잘 지키고 있어라. 닭장 근처에는 가지 말고 알았제.”
할머니는 우리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타이르듯이 조용하게 말했다. 우리는 차를 타고 가는 할머니 뒤를 쫓아갔다. 할머니가 창밖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동네 아줌마가 하루에 한 번씩 와서 큰 밥그릇을 놓아두고 가면 몇 번 나눠 먹었다. 할머니가 주던 밥과는 맛이 달랐지만, 입맛이 없어졌다는 생각으로 위안 삼았다. 우체국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집 앞 우체통에 우편물을 넣고 가면 쫓아나가서 꼬리를 치면서 인사했다. 그 아저씨는 우리가 익숙한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앉아있었다. 혹시 할머니가 밝은 표정을 지으며, 그 길에서 걸어올 것 같았다. 이제는 우리가 이 집의 주인이었다.
동네 개들이 집주인 없는 걸 아는지 집 주변에서 어슬렁거렸다. 나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나이 많은 개들은 내 제스처에 아랑곳하지 않고 집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녀를 개집으로 들어가라고 밀어 넣고, 그 앞에서 사납게 짖으며 버텼다. 나보다 덩치가 큰 개가 공격하는 순간, 앞발로 얼굴을 가격했다. 그 개는 잠시 멈칫거리더니 다시 덤벼들었다. 나는 그녀만 아니었으면 그를 이길 수 없었다. 몇 번의 공방을 벌인 끝에 꼬리를 내리면서 가는 그 개를 쫓아갔다. 멀리 도망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오자, 그녀가 나에게로 반갑게 달려왔다. 나는 어디에 물렸는지 아팠다.
몸이 좋지 않아 꼼짝을 못 하고 있었는데, 동네 아줌마가 밥그릇을 가져오며 내 모습을 보더니 ‘니 누구랑 싸웠나? 와 이리 상처가 많노.’하면서 집에서 약을 가져와 발라주었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 할머니가 빨리 돌아와서 산책도 다니고, 봄이 오면 바구니를 입에 물고 밭에서 함께 일하고 싶다. 빨간 하늘에 비행기가 소리 없이 새처럼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닭 우는 소리에 깼다. 어제 동네 개와 심한 싸움으로 온몸이 아팠다. 싸울 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몸에 많은 상처가 있었다. 그녀는 내가 측은해 보였는지 아니면 자기를 위해서 싸우다 다쳐서 미안했는지 모르지만, 내 옆에서 조용히 앉아서 눈을 가끔 마주쳤다. 나는 오히려 그녀가 안쓰러웠다. 다친 몸이야 시간이 지나면 낫지만, 그녀가 어제 경험한 무서움은 오래갈 것이다. 그녀는 수놈들의 미련한 싸움이 암컷 때문이라는 걸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좀 괘안나? 이게 뭐꼬. 할매가 와서 보면 날 모라카겠노.”
옆집 아줌마는 내 속도 모르고 할머니한테 한 소리 들을까 봐 걱정만 하고 있었다. 그녀는 가져온 밥그릇을 내려놓고 ‘마이 무꼬 빨리 나아라.’ 하면서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나가면서 대문을 '쿵' 하고 닫았다. 그녀는 배가 고팠는지 지 그릇에 담아있는 음식을 헐레벌떡 먹어 치우더니 내 그릇을 보고 있었다. 나는 몸이 아파 밥맛도 없어 조금 먹다가 그녀에게 밥그릇을 슬쩍 밀어줬다. 그녀는 처음 왔을 때보다 몸이 부쩍 컸다. 할머니가 그녀를 얼마나 챙겨 먹였는지 이제는 그녀가 나랑 걸어도 누가 동생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집에 우리만 있어서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언제 온다는 말도 없이 간 할머니가 갑자기 와서 집이 비어 있으면 우리를 혼내줄 거다. 할머니가 닭장 근처는 가지도 말라고 해서 다른 동물이나 사람들이 갈까 봐 오히려 그들을 감시했다. 옆집 아줌마는 할머니 허락을 받았는지 아침 일찍 와서 알을 가져갔다. 그때마다 닭장에서는 후다닥 소리가 들리더니, 이틀이 지나면서 익숙해졌는지 그들도 조용해졌다.
잠시 졸고 있는데, 그녀가 나를 깨우며, 저 멀리 하늘에 날아가는 비행기를 가리키는 듯 발짓을 했다. 나는 자주 봤던 비행기들을 이제는 유심히 보는 습관이 생겼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창가에서 할머니가 내게 손을 흔들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