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고르자브르종'이다 / 연재소설
나는 새벽에 닭 울음소리에 기지개를 켜면서 하늘을 봤다. 아직은 어두웠지만, 곧 동이 트겠지. 왜 하늘을 보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할머니가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여행을 갔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무슨 소리만 들리면 하늘을 봤지만. 새가 지나가기도 했고 자그마하게 비행기도 보였다. 그녀와 함께 동네 산책을 할 때도 비행기 소리가 들리면 하늘을 쳐다보았다. 할머니가 없는 텅 빈 집안에는 공허함만이 감돌고 있었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더니,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난번처럼 눈과 장난을 치고 있다. 눈을 잡으면 곧 그녀의 품에서 녹아 버리고, 다시 눈을 잡으러 다니는 모습이 귀여웠다. 부모와 떨어져 낯선 이곳에서 정을 붙이고 사는 그녀가 대견스러웠다. 이제는 많이 커서 새끼라기보다 어엿한 숙녀처럼 다가왔다. 산책할 때도 딴전을 피우다 내가 모르는 채 가버리면, 부리나케 쫓아오는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아침에 동네 아줌마가 그동안 사용하던 밥그릇을 새것으로 바꿔서 가져왔다. 사용하던 밥그릇이 오래되기도 했지만, 냄비여서인지 깊어서 먹기가 불편했다.
“할매가 야들 밥 먹기 좋구로 편한 밥그릇 하나 사주지 냄비가 뭐고. 니 할매 내일 온다해서 마트에서 하나 사왔데이. 마싯째. 마이 무그라.”
밥 먹을 때 그릇에 얼굴이 파묻혀서 음식물이 묻어 지저분했는데, 이제는 편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동네 아줌마는 할머니에게 우리 잘 보살펴 줬다고 자랑하겠지. 매일 닭장에서 달걀을 가져가면서 ‘와이리 알이 작노’하면서 투덜거렸던 그녀였다. 할머니가 닭장 근처도 못 가게 해서 얼씬거리지도 않았는데, 닭들도 할머니가 없어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동네 아줌마가 커다란 궁둥이를 흔들며, 대문을 열고 나가는 뒷모습이 오리가 뒤뚱뒤뚱 걸어가는 듯 우스꽝스러웠다. 우리는 그녀가 사라지자, 새로운 밥그릇에 담아 온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옆에 있는 그녀는 음식이 잘 맞지 않는지 그릇을 깨끗이 비우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보았다. 항상 본인 밥그릇을 비우고 내 것을 넘보던 그녀였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걱정이 되었다. 나는 먹던 밥을 놔두고 그녀의 옆으로 갔다. 끙끙거리고 있는 그녀를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음식을 못 먹고 침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앞다리로 얼굴을 감싸며 고통스러워했다. 나도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당황했다. 한참 집안을 왔다 갔다 하다가 대문 옆 구멍을 빠져나와, 동네 아줌마 집으로 정신없이 달려갔다.
그 집으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개가 짖으며 내게 달려들려 했다. 다행히 끈에 묶여있어서 내게 다가오지 못했지만, 큰 개라 무서웠다. 동네 아줌마가 개 짖는 소리를 듣고 방문을 빼꼼히 열었다.
“니 여기 와 왔노? 우짠 일이고?”
그녀가 나를 보더니 놀래서 마당으로 내려왔다. 나는 길바닥은 눈으로 미끄러웠지만, 집에 혼자 남겨 놓은 그녀가 걱정되어 온 힘을 다해 아줌마의 치마를 물고 집 방향으로 질질 끌고 갔다. 아줌마는 집에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되었는지 나보다 앞서서 집으로 달려갔다.
동네 아줌마는 축 늘어진 그녀를 보더니 놀라면서 ‘야 와 이라노?’하면서 그녀를 안아서 이리저리 살펴봤다. 입에서 침을 흘리고 있는 그녀의 입속을 살펴보고 난 후, 아침에 가져다준 그녀가 먹다 만 밥그릇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아줌마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그녀의 입을 열어 자세히 살피더니 손가락을 넣어서 무엇인가를 빼냈다.
“내가 미안테이. 엊저녁에 먹은 갈치 가시를 음식 속에 깜박 잊고 넣은기라. 그 가시가 야 목구멍에 걸려 정신을 못차린기네.”
동네 아줌마는 그녀가 진정할 때까지 안아서 다독여줬다. 그녀는 괜찮아졌는지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내 저녁에는 만난거 마이 해갖고 올 테니 푹 쉬거레이. 정말 미안테니.”
아줌마는 그녀를 안심시키려고 정성스럽게 꼭 안아주고 돌아갔다. 그녀는 놀라고 힘들었던지 눈을 감은 채 꼼작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 옆으로 가서 내 체온을 전달해 줬다.
눈이 내려 쌓인 마당에는 조금 전 다녀간 아줌마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가끔 바람이 불면서 그 발자국이 희미해지고 있었고, 그 위로 새로운 눈이 쌓이고 있었다. 아침에 급작스럽게 벌어진 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희미해지는 발자국처럼 그녀의 뇌리에서도 곧 잊히겠지. 그녀가 어떤 경로로 이곳에 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녀가 이곳에 와서 그 과거를 지우려고 노력했듯이 또 다른 고통스러운 과거를 지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