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고르자브종'이다 / 연재소설
내일이면 할머니가 오는 날이다. 눈이 그치면서, 어두웠던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새 떼들이 줄지어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부러웠다. 매일 땅바닥에서 자는 우리보다 우아해 보였고, 창공을 날아갈 때는 내 마음도 그들과 함께 따라갔다. 가끔 새들이 모이를 먹으러 밭으로 내려앉으면, 나는 그들과 놀고 싶어 쫓아갔다. 그들은 내 마음도 모르고 황급하게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몇 번 그들과 조우에 실패하고 나서부터는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할머니는 처음 타 보는 비행기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공중에 떠 있는 자신을 무서워했을까, TV에서만 봤던 멀리 보이는 풍경을 보면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처럼 느꼈을까. 할머니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내가 부러워하는 새들과 같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새들의 자유로움도 그 무리 속에서는 서로 다툼이 있겠지. 우리가 좁은 시골에서 아웅다웅하면서 살듯이 다른 세상 사람들도 결국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산책했다. 눈이 와서 길은 미끄러웠지만, 그녀가 가보지 못한 곳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마을 어귀를 돌아 지난번 할머니와 갔었던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산으로 향했다. 눈 덮인 산은 조용했다. 그녀가 쫓아오는지 뒤를 돌아보면, 그녀는 새로운 장소에 자기 영역을 표시하고 있었다. 그 행위는 모방이 아니라 본능이었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녀는 눈이 쌓인 산소 위로 올라가 장난을 쳤다. 나는 놀라서 그녀를 입으로 물어서 끌어내렸다. 할아버지가 놀라 무덤에서 나와 화를 낼 것 같았다. 무덤 옆에 조용히 앉아있는데, 지난번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절을 하면서 ‘내는 이자 당신 옆으로 가고 싶네에.’ 하던 말이 떠올랐다.
산에서 내려와 동네 입구로 가고 있었는데, 커다란 개가 멀리서 쫓아왔다.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그녀에게 행패를 부릴 것 같아서 그 개가 오기 전에 먼저 달려가 그를 막아섰다. 그 개는 암컷으로 꼬리를 흔들며 나랑 같이 놀자고 했다. 내가 벌써 암컷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일 정도로 컸는지 몰랐다. 나는 근처에서 보고 있는 그녀를 의식하고, 그 개의 적극적인 애정 표시에 조금 거리를 뒀다. 어느새 그녀가 달려와 그 개에게 짖으며 물려고 덤벼들었다. 내가 그 개와 싸우는 걸로 착각했는지, 그녀의 질투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와 처음 겪는 이런 상황을 어찌할지 몰라서 그 개가 쫓아오는지 뒤돌아보며, 그녀를 데리고 달아났다.
집에 들어서자. 닭들이 싸우는지 후다닥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할머니 얼굴이 떠오르면서 닭장에 가는 걸 망설였지만, 계속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살금살금 닭장으로 기어가서 무슨 일인지 보다가 깜짝 놀랐다. 나랑 몇 번 눈이 마주쳐서 도망 다녔던 그 고양이가 닭장 안에서 닭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 고양이가 철망 밑으로 땅을 파서 들어갔다. 할머니가 내일 집에 와서 닭장이 어질러져 있는 것을 보면 나를 의심할 것이다. 다급해진 나는 그 고양이를 잡기 위해서 닭장 문의 고리를 입으로 열고 들어갔다. 닭들이 놀라서 닭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순식간에 고양이는 도망을 가고, 닭들은 집 마당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새벽도 아닌데, 닭들이 소리를 내며 합창했다. 소동은 밥을 주는 동네 아줌마가 소리를 듣고 달려오면서 끝났다.
“뭔 일이고. 니가 우짤라고 닭장에 문 열고 들어갔노?”
나는 아무 소리도 못 내고 조용히 앉아서 동네 아줌마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동네 아줌마는 닭들을 잡아서 닭장으로 넣고 문을 잠갔다.
“내가 깜빡 잊고 안 가져간 달걀은 우쨌노?”
동네 아줌마는 닭장에 깨진 달걀을 보더니, 나를 째려보고 ‘니가 뭐 했는지 다 알고 있데이’ 하면서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갔다.
나는 종일 돌아다녀서인지 온몸이 늘어졌다. 그녀는 옆에서 벌써 졸고 있었다. 오늘 많은 경험 하면서 더 성숙해졌을 그녀가 잠꼬대하는지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표정이 어른스러워 보였다. 할머니의 코 고는 소리가 방문 밖으로 들려올 때면, 할아버지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처럼 옆에 그녀는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이제 그곳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는 할머니의 숨소리가 더욱 가깝게 들려왔다. 그런 할머니의 숨결이 그리워졌다.
졸고 있는데 갑자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루 밑에서 검은 물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낮에 닭장에 들어가서 소동을 피웠던 고양이의 눈동자만 보였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그 고양이가 닭장 쪽으로 갈 것 같아 길목을 막으려고 살금살금 기어갔다. 동네 아줌마에게 눈총을 받은 생각을 하면 이번에는 이놈의 목을 물어 버리고 싶었다. 그가 도망치자,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혹시 다시 나타날까 봐 감기는 눈을 억지로 부릅뜨고 그곳을 응시했다.
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속에 둥근달이 떠서, 별들이 둘러싸고 있는 그달이 군사들을 거느리고 있는 장군처럼 보였다. 질서 정연한 하늘의 광경은 달의 크기가 날마다 조금씩 바뀌는 것 말고는 달라져 보이지 않았다. 빨리 내일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인지 몰라도 별들의 움직임이 없었다. 달도 구름에 흘러가야 하는데,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나는 별을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