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고르자브르종'이다 / 연재소설
닭 울음소리에 눈을 떴다. 주변은 아직도 어두웠고, 옆에 그녀가 꼼지락거리며 기지개를 켰다. 하늘에 있던 달은 저 멀리 서서히 사라지고, 산 너머 하늘은 붉은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의 인기척으로 개 짖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지나다녔다. 집마다 불이 켜지고, 아침 준비하는 냄새가 동네로 퍼져나갔다. 나는 그 냄새에 침을 흘리고 있었다. 동네 아줌마가 주는 밥이 할머니의 정성을 따라가지 못하는지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는데, 동네 아줌마가 멀리서 새 밥그릇을 들고 궁둥이를 씰룩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오늘이 내가 주는 마지막 밥이데이. 마이 무그라. 할매 오면 맛있는 거 해줄끼다.”
나는 배가 고팠는지 밥그릇을 단숨에 비웠다. 동네 아줌마는 내가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면서 얼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리 맛있나? 자는 그란데 와 안 먹노?”
내가 정신없이 먹는다고 옆에 그녀를 보지 못했다. 그녀는 눈만 멀뚱히 뜬 채로 가만히 나만 쳐다보았다. 배고파 보인 나를 위해서 그녀의 밥을 양보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그녀의 밥그릇을 살짝 밀어서 그녀에게 주니까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그녀가 절반 정도 먹더니, 밥그릇을 내게 밀어주었다. 나는 그녀의 밥을 비웠다.
“자가 니를 마이 생각하네. 니는 좋겠다. 할매 오면 맛있는 거 사올끼다. 니가 그거 다 먹지 말고, 자 마이 주구레이.”
동네 아줌마는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올 때처럼 궁둥이를 씰룩거리며 대문 밖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동네 아줌마는 어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벌써 잊어버렸는가 보다. 물론 아줌마 덕분에 빨리 위급 상황을 처리할 수 있었지만, 너무 무심한 것 같다. 그녀는 어제 가시가 목에 걸려 고생한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듯했다. 밤새도록 잠 한숨 못 자면서 킁킁거렸던 그녀였다. 그런 트라우마는 오래가겠지. 나는 그녀가 내게 밀어준 그녀의 밥그릇을 비우면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녀가 어떤지 확인하고 싶었다. 다행히 그녀는 내가 먹는 모습을 보면서 엷은 미소를 띠었다. 그녀는 밥을 먹기 싫어서가 아니라, 당분간은 조심해서 많이 먹지 못할 것 같았다.
그녀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아무런 티를 내지 않고 밝은 표정으로 다가와서 귀엽게 행동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갓 태어나 엄마 젖을 막 떼고 걸음걸이를 시작할 무렵이었으니까 엄마에 대한 정을 붙이기도 전이었을 것이다. 내가 엄마인 양 쫓아다니면서 재롱을 떨면서 내게 다가왔을 때 나도 태어나서 사라진 엄마에게 저랬을까 기억을 해봐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가 엄마도 없이 할머니와 같이 살면서 저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는 기억밖에 없다.
만약 할머니가 할아버지 보고 싶어서 빨리 죽어야겠다고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그런 경우 옆에 힘없이 있는 그녀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여태껏 그런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지만, 그녀가 처음으로 밥도 먹지 못하고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내가 마음이 약해지는 이유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자금은 그냥 할머니가 빨리 와서 우리 옆에 같이 있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
나는 하늘을 보았다. 파란 하늘에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가 타고 올 비행기가 보일지 궁금했다. 새들이 떼를 지어 어디론가 날아갔다. 나는 그 새 떼들이 멀리 사라질 때까지 놓치지 않고 눈으로 따라갔다. 자유롭게 날아가는 그들을 보면서 나도 날 수만 있다면 할머니가 타고 오는 비행기 마중을 나갈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동네에서 아침 일찍부터 버스 소리가 들리면서 해외여행 간 사람들을 공항으로 데리러 가는 건지 분주했다. 지난번 태우고 간 그 버스에 동네 사람이 몇 명 타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그 버스로 달려갔다. 할머니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그 버스에 올라탈 수 있을까 서성이고 있었는데, 버스 기사 아저씨가 큰소리로 ‘비키라!’ 하면서 손짓했다. 버스는 마을 어귀를 돌아가면서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 자리에 앉아서 그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나는 하늘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면 쳐다보았다. 강렬한 햇빛이 내리쳐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시커먼 물체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할머니가 그 비행기에 타고 있을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그 비행기를 따라가며 짖어댔다. 지나가던 동네 아저씨가 ‘미칬나? 와이리 지저대노. 시끄럽데이.!’ 하면서 나에게 막대기를 휘둘러댔다. 나는 그 아저씨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비행기를 쫓아갔다.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나를 따라왔다. 한참을 달려가다 언덕 위에 주저앉았다. 힘들기도 했지만, 비행기가 구름으로 들어가더니 더는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