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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할머니 안녕!(1)

나는 '시고르자브르종'이다 / 연재소설

by 김창수

나는 며칠 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 동네가 어수선했고, 동네 사람들의 표정도 밝지 않았다. 할머니는 아직도 오지 않았다. 동네 아줌마가 밥그릇에 음식을 담아 가져오면서 ‘자들 이자 우짜노.’하면서 한숨 섞인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할머니가 며칠 외출하면 우리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하던 옆집 아줌마도 해외여행 가서 여태껏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이 와중에 이제는 며칠 전 목에 가시가 걸려 고생한 트라우마가 사라졌는지,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는 옆에 있는 그녀가 부러웠다. 나는 이 동네에 알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났고, 우리에게도 변화가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루가 지나고 다시 새 아침이 되었다. 나는 굉음이 들리면 하늘을 쳐다보았다. 할머니가 늦게라도 비행기를 타고 올 것만 같았다. 동네에서 차 소리만 들려도 그곳으로 달려갔다. 혹시 할머니가 옆집 아줌마랑 같이 그 차에서 내릴 것만 같았다. 나는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망상에 빠져들어 허탈해졌다. 분명히 할머니가 어떻게 된 게 아닐까 하는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끄럽던 동네 분위기는 서서히 적막 속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동네 아줌마는 잊지 않고 밥그릇을 가져다주었다.

“이럴 때일수록 잘 먹어야되는기라.”

그녀는 우리가 밥 먹는 모습을 보면서 안쓰러웠는지 혀를 찼다. 그녀는 집 밖으로 나가다 깜빡했다는 듯 닭장으로 갔다.

“알이 와이리 작노. 야들이 알을 잘 낳지 못하네.”

그녀는 투덜거리며 달걀을 윗주머니에 넣고 부랴부랴 집으로 갔다. 할머니가 매일 정성스럽게 사료를 주던 닭들도 옆집 아줌마가 들랑거려서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다. 할머니가 와서 작은 알을 보면 내가 닭장을 들어갔다고 야단칠 것이다. 나는 더는 닭장 건으로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았다.


나는 며칠 동안 맡지 못한 할머니의 냄새가 그리워졌다. 나를 키운 것은 바람났던 엄마가 아니라 할머니였다. 나는 엄마의 갑작스러운 실종을 죽음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저 눈 덮인 산속에서 맡은 엄마의 냄새로 추측할 뿐이었다. 엄마와의 단절로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할머니가 옆에 있었기도 했지만, 할머니의 냄새가 어릴 적부터 엄마의 냄새로 각인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런 할머니의 냄새를 맡지 못하는 불안감이 증폭될수록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쌓여갔다.

나는 할머니의 방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문이 잠겨 있어, 툇마루에 앉아 문밖으로 새어 나오는 그녀의 은은한 냄새를 맡으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겨울의 추운 날씨에도 따사한 햇살이 내리쬐면 꿈속에서 할머니를 만나기도 했다. ‘내가 없으니 니한테 잘 해주지도 못하고 미안테이.’ 나는 할머니 목소리에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났다.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으나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할머니를 볼 수 있을 것 같아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이제 할배 옆으로 왔데이. 니도 좋은 색시 데리고 행복하게 살거레이.’ 나는 꿈에서 깨어나기 싫어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해가 산 너머로 기울어지자, 추운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씩 나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온기가 내게 전달되면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할머니가 없으니까 내가 그녀를 보호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더욱 강해지는 것 같았다. 동네에서 밥 하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는데, 동네 아줌마는 이제 우리를 잊어버렸는지 저녁 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걸 꿰뚫고 있는지 멀리서 동네 아줌마가 쿵쿵거리며 오는 소리가 들렸다.

“배고프제. 너무 늦게 밥 가져와서 미안테이. 동네가 마이 씨그럽데이. 느그들도 조만간 변화가 생길끼라. 마음 단디 묵고 있으레이.”

동네 아줌마가 들은 이야기가 있는지 우리를 안쓰럽게 쳐다보면서 말했다. 우리는 배고픔에 지쳤는지,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밥이 넘어가지 않는지 모르겠지만, 저녁을 남겼다. 달이 벌써 중천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 밤은 몸도 마음도 너무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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