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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할머니 안녕!(2)

나는 '시고르자브르종'이다 / 연재소설

by 김창수

아침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너무 추워서 꼼작도 하기 싫었다. 눈만 뜨고 눈동자만 움직이고 있었다. 동네 아줌마가 갖다 놓은 밥은 그대로 있었다. 나는 온몸이 아픈지 움직이지 못한 채 킁킁거리고 있었고, 그녀는 내 옆에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아파본 적이 없었는데, 어제 할머니 꿈을 꾸고 나서 계속 그랬다. 나는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흘러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저 구름을 타고 할머니에게 가고 싶었다.

문밖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집을 지키기 위해서 반사적으로 힘든 몸을 이끌고 대문 쪽으로 달려갔다. 여러 사람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동네 아저씨가 나를 보더니 같이 온 사람들에게 말했다.

“자 입니더. 할매가 혼자 살고 있었는데, 이번 사고로 돌아가심더.”

“이장님이 신청한 서류에는 수놈 한 마리라 했는데, 암놈이 한 마리 더 있네요.”

“동네에서 기르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신청할 때 빼심더.”

“아직 어려서 어린 암놈이 더 입양하기에 좋을 것 같은데요.”

“자도 아직 1년이 안돼서 괘안을 겁니더.”

내 뒤에 그녀가 따라와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꼬리를 흔들었다.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들이 내게 다가오자 짖기 시작하면서, 필사적으로 그녀와 함께 집 안으로 도망쳤다. 그들은 나를 잡으려 했지만, 나는 툇마루 밑으로 들어가, 그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그녀는 영문도 모르고 나를 쫓아왔다. 그 안에 있던 낯익은 고양이가 깜짝 놀라며, 정신없이 작은 구멍을 통해서 도망갔다. 한동안 그들의 목소리만 들렸고, 얼마 후 밥 주던 동네 아줌마가 내가 짖는 소리가 들려서인지 집으로 달려왔다.

“이장님! 여기서 뭐합니꺼?”

“자 할매가 없어서 입양 보낼라고 안하나.”

“지도 그런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들이 불쌍해서 우짤고 하면서 고심했심더.”

“자가 저 밑에 들어가서 안나오는데, 니가 달래서 데려온나.”

동네 아줌마가 ‘나온나.’ 하면서 머리를 툇마루 밑으로 들이밀었다. 나는 동네 아줌마가 내 편이라 생각했다. 살금살금 기어나가서 밖에 있는 사람들을 봤다. 그들은 내가 겁먹은 줄 알고 밝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괜찮아. 이리 오렴.“하며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그녀도 나를 따라 나왔다.


나는 낯선 아저씨들에 의해서 딱딱한 물체로 만들어진 함으로 밀어 넣어졌다. 순간, 발버둥을 쳤지만, 문고리가 잠기면서 꼼짝할 수 없었다. 동네 아저씨와 아줌마도 내가 짖어대는 소리에 측은하게 ’우짜노, 우짜노‘하면서 보고만 있었다. 그녀도 나를 데려가는 낯선 아저씨들을 향해 짖어대기 시작하면서 그들을 이빨을 드러내며 물으려고 덤벼들었다. 그녀의 필사적인 행동은 동네 아줌마가 그녀를 안으면서 끝이 났다. 내가 갇힌 함은 자동차 뒷좌석에 놓였고, 곧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차가 움직이자 옆집 아줌마 품에서 기어나 오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동네 아줌마의 강인한 팔 힘이 없었다면, 그녀는 끝까지 차를 쫓아왔을 것이다. 내가 엄마보다 할머니를 더 그리워했듯이 그녀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태어나자 이별한 그녀의 엄마보다 나를 더 그리워할 것이다. ‘너도 좋은 색시 데리고 행복하게 살거레이.‘하며 작별 인사한 할머니에게 나중에 하늘에서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할머니 집이 점점 멀어지고, 자동차가 동네 어귀를 돌아나가면서 나는 멀리 보이는 눈 쌓인 산을 바라보았다. 지금 나는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자동차에 실려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가끔 낯선 아저씨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지만, 자동차 소음에 귀에서 윙윙거리기만 했다. 긴장이 풀리면서 자동차 흔들림에 맞춰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니 지금 어디 가노? 내는 할배와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마레이.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지난번 산에서 할머니가 했던 말대로 그녀는 할아버지에게 간 것인가. 내게는 아무 말도 없이 떠난 할머니가 싫었다.

“제가 입양할 애인가요? 똑똑해 보이는 게 진돗개 같아요. “

”진돗개는 아니고, 그 동네에서는 저런 개를 시고르자브르종이라고 부릅니다. “

”처음 들어보는 품종인데 프랑스산 인가요? “

”시골 잡종개를 그렇게 부릅니다. 이 애는 주인에게 순종하는 영리한 개입니다. “

나는 새로운 집에서 주인에게 할머니가 내게 베풀어주었던 사랑을 받고 있다. 새로운 주인은 내가 겪은 충격을 들어서 알고 있는지, 따뜻한 보살핌으로 전에 살던 시골집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끔 하늘을 보면 할머니 생각이 나지만, 할아버지와 더 좋은 세상에서 살고 계시겠지. 나는 할머니와의 행복했던 지난 시간을 추억 속에 묻어 놓았다. 그녀도 어엿한 암컷이 되어 내가 다 해주지 못한 사랑을 짝에게 받고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내가 할머니를 다시 만나면 정답게 말하고 싶다. ’ 할머니 안녕!‘


-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희생된 179명의 명복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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