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8화. 울음소리(2)

나는 '시고르자브르종'이다 / 연재소설

by 김창수

나는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비워 둔 집으로 돌아왔다. 몸이 지쳐서 피곤했는지 졸음이 몰아쳤다. 그녀도 내 옆에서 오늘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나를 따라다니느라 힘들었는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축 늘어져 꼼작도 하지 않았다. ‘니 뭐하노?’하는 할머니 소리에 잠을 깼다. 할머니가 왔는지 알고 눈을 떠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꿈속에 나타난 할머니 목소리였다. 뜨거운 햇살이 온몸에 퍼지면서 다시 눈이 감겼다. ‘내는 할배 보러 간데이. 기둘지 말고 잘 지내거레이.’ 할머니가 손을 흔들며 저 멀리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를 쫓아가려고 애를 썼으나 어느새 연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옆에 자던 그녀가 괴로워하는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나를 깨웠다.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서 다시 눈을 감았다.


내가 눈을 뜬 것은 갑자기 동네에서 아우성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우짜면 좋노! 우짜지!”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리는 통곡에 가까웠다. 나는 동네가 갑자기 시끄러워지면서 불안해졌다. 밖에는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나는 그녀와 함께 꼼짝도 하지 않고 무슨 일인지 몰라 눈만 멀뚱 거리며,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동네 아줌마가 집에서 일하다 뛰쳐나와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입니꺼? 와 이리 시끄럽제예.”

“TV 안봤나? 공항에서 착륙하던 비행기가 사고가 난기라”

“뭐라예?”

“지난주에 우리 동네에서 해외여행 간 사람들이 마이 죽었다칸다.”

“참말인교?”

“해외여행 간 사람의 가족들이 벌써 공항으로 갔데이”

나는 그들의 대화 속에서 몇 시간 전에 하늘에서 본 그 시커먼 물체가 할머니가 타고 있던 비행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동이 할머니와 연관이 있다는 불길한 느낌이 몰려왔다.

나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TV를 보는 마을 회관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TV를 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우짜면 좋노’를 합창하며, 심각한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신발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입구에 앉아서 TV 화면을 봤다. 어느새 그녀가 따라와 내 옆에 앉아있었다.


“집에 다와서 뭔 난리고.”

“이장 옆집은 가족이 다 갔는데, 우짜면 좋은교.”

“몇 년간 계 열심히 부어서 해외여행 간다고 좋아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고!”

동네 사람들은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장면이 바뀔 때마다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자막에서 사망자 명단이 나오자, 할머니들은 ‘우야꼬! 우야꼬!’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오랜 세월을 이곳에서 한평생 가족 같이 살아왔던 그들에게는 친구, 자식을 잃은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상황을 알 수 없었지만, TV의 장면을 보면서 할머니가 빨리 돌아와서 우리를 보며 밝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집에 가끔 들르던 동네 할머니가 우리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자들은 우짜면 좋으노. 친구 집에서 키우던 애들인데 누가 키우겠노.”

그 할머니가 우리에게 다가와하는 말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반가워서 꼬리를 흔들며 두 발로 안기려 하자, 안쓰러웠는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에게 할머니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곳을 나와서 할머니와 같이 산책하던 길을 걸었다. 그 길에서 할머니의 냄새를 맡았다. 그녀도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끙끙거리며 나를 쫓아왔다. 할머니가 일하던 밭에도 들렸다.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아 할머니 냄새는 어렴풋이 났다. 할아버지가 누워있는 눈 덮인 산으로 갔다. 눈이 많이 쌓여 다리가 푹푹 빠져서 올라가기 힘들었다. 그녀는 짧은 다리로 힘겨워했지만, 잘 따라와 주었다. 하늘은 맑았고, 추운 날씨였지만, 따사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어 추운 줄 몰랐다. 그곳에서 할머니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내는 이제 남편 옆으로 갈끼다. 오래 떨어져 있으니 그리워진다 아이가.’

나는 동네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산 너머로 노을이 오늘따라 더욱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keyword
이전 17화17화. 울음소리(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