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지삿개바위와 포말

나는 올레길을 걷고 있다 / 연작 에세이

by 김창수

나는 다시 한번 오고 싶은 약천사를 뒤로 하고, 다음 목적지인 대포포구로 향했다. 저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발걸음도 빨라졌다. 포구에는 어선들과 요트가 계류되어 있었고, 방파제 끝 쪽에는 빨간 등대가 누구에겐가 손짓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나오느라 마시지 못한 커피가 생각났다. 내부가 하얀색으로 인테리어 되어 있고, 창가로 포구가 보이는 카페로 들어가 커피 향을 깊숙이 들이마셨다.

해안을 따라 다시 걷다가 주상절리로 들어서면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저 멀리 바닷가에 낯익은 하얀 호텔을 발견했다. 오래전 처음 제주도를 방문했을 때 묵었던, 추억이 담긴 중문관광단지 최초의 관광호텔이다. 주상절리 매표소 앞에 있는 간세에서 중간 스탬프를 찍고, 옆에 있던 벤치에 앉았다.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젊은 시절의 가장 좋았던 그때를 반추(反芻)했다. 파도의 포말이 한 줄기 해안으로 치닫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 사는 분에게 지삿개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들은 오래전에 대포동과 중문 일대의 지명을 이렇게 불렀고, 주상절리를 지삿개 바위라고 했다. 주상절리의 ‘주상(柱狀)’은 기둥 모양을, ‘절리’(節理)는 갈라진 틈을 말한다. 바다 위에 신이 정교하게 다듬은 듯 절묘하게 서 있는 주상절리는 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천혜의 자연경관이다. 겹겹이 쌓아 논 검붉은 돌기둥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파도가 부딪칠 때마다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돌기둥들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모습은 볼수록 신비롭다. 파도가 심하게 칠 때는 용솟음치며 자연의 웅장함을 그대로 보여줬다. 주상절리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그 뒤로 끝없이 펼쳐진 제주의 바다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신들이 기둥을 일일이 깎아 퍼즐처럼 맞춰놓아 자연의 절묘함을 느끼게 한다. 나는 한동안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나는 세계적인 휴양지로 손색이 없어 보이는 중문단지를 돌아, 대왕수천예래생태공원에 도착했다.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천을 따라 천국을 걷는 듯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주변의 피어 있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눈을 맑게 해 줬다. 논짓물에서 발을 잠시 담그고, 바다 쪽으로 펼쳐진 넓은 들을 뜻한다는 난드르 마을로 들어갔다. 저 멀리 군산과 도착지인 대평포구에 있는 거대한 해안 절벽, 박수기정이 보였다.

대평포구는 거대한 절벽에 가려서인지 조용했다. 박수기정은 샘물을 뜻하는 ‘박수’와 절벽을 뜻하는 ‘기정’이 합쳐져 ‘바가지로 마실 수 있는 깨끗한 샘물이 솟아나는 절벽’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파란 간세에서 도착 스탬프를 찍고, 옆에 있는 정자에 누워 박수기정을 한참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깎아지른 듯한 절벽 너머 주홍빛으로 하늘을 물들이며 천천히 해가 넘어가는, 인생의 황혼(黃昏)을 느끼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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