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숲 이야기 / 에세이
지하철에서 본 아파트 분양 광고가 생각이 났다. 멋있게 꾸며진 광고에는 시골에 위치한 대단위 아파트의 조감도와 메인 스트리트의 멋있는 드로잉이 눈길을 끌었다. 아파트의 유럽 풍경과 주변이 한국의 시골 정취가 물씬 풍기는 조용한 시골 아파트의 모습이었다. 그동안 살았던 도시의 아파트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에 매력을 느꼈다. 그곳의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공사 현장을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말 아침은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생각이 든다. 눈은 떠있으나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창 밖에서 들어오는 밝은 햇살을 이리저리 피해 보지만, 더 이상 침대에서 머무르지 못하게 한다. 갑자기 아파트 분양 광고가 떠오른다. 새로움은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집에서 멀지 않은 그곳을 빨리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몸을 일으킨다. 아침 먹자는 아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또 다른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을 그곳을 향해 달려간다.
국도를 벗어나 한적한 길로 들어선다. 잘 닦인 도로에는 차가 보이지 않는다. 따사한 햇살로 열어 놓은 차창으로 봄의 꽃향기가 밀려들어온다. 벚꽃이 개화를 시작하고, 개나리가 길가를 따라 노랗게 물들었다. 한적한 도로 주변으로 가끔 오래된 가옥들이 지나간다. 얼마 전 포장된듯한 도로는 적당한 경사와 완만한 곡선으로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져 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5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멀리 보이는 대규모의 아파트 공사장이 농촌에 둘러싸여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준공으로 근처의 농부들과 달리 인부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산은 이미 초록색으로 물들었지만, 아직 겉옷을 입지 않는 회색의 아파트와는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분양받은 집이 이제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나, 공사장 출입 제한으로 집안 내부를 볼 수 없어 애만 태운다.
차가 간신히 갈 수 있는 좁은 길로 산 쪽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공사장 가까이에 가면 혹시 공사 중인 아파트의 내부를 볼 수 있을까 요리조리 기웃거리다가, 공사장 아저씨에게 위험하니 가라는 소리만 들었다. 아내는 아저씨의 고함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져온 브로셔를 보면서 궁금증을 해소하고 있다. 애가 자라면서 방문 틀에 키재기 하듯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지만, 입주 전까지는 지그시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는 아직 내부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집안 인테리어에 대해서 쉬지 않고 이야기했다. 분양 광고를 보면서 시작한 설렘이 이제는 강박관념으로 변해갔다. 확실하지 않은 미래보다 눈에 보이는 설렘이 안절부절못하게 하는 걸까? 국내외로 새집 또는 헌 집으로 여러 번 옮겨 다녔지만, 이제 그 새집이 마지막 이사가 될 것 같다. 입주까지 설렘을 잘 견뎌내길 바랄 뿐이다.
이삿짐을 싸면서 어젯밤 꿈 생각이 났다. 석양이 내리는 저녁에 나무 끝에 앉아 있는 새가 누군가를 부르는지 한 곳을 향해서 울음소리를 내며 먼 산을 쳐다보았다. 손때가 탄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새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아내는 이사 가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별 탈 없이 마무리가 잘 될 것을 암시하는 꿈이라고 좋아했다.
평생 이사를 많이 다녔지만, 이번처럼 마음이 편한 적은 없었다. 도시 탈출은 교통, 학교 문제 등이 항상 발목을 잡았다. 한숲에서 이삿짐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도시 생활을 포근하게 느끼지 못했기 때문인지, 일상을 벗어나는 것 같아서 즐거웠다. 창문 밖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에서 자연의 향기를 맡으며, 새로운 둥지에서 새로운 희망을 가져 본다. 꿈속의 새가 새로운 세계로 안내해 주겠지.
주변이 농촌과 산으로 둘러싸인 자연의 품 같이 느껴지는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텃밭을 분양받아 씨를 부리고, 거름을 주고, 물도 부지런히 주면서 채소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성스럽게 키운 채소를 밥상에 올려서 자연의 선물처럼 맛있게 먹어야지. 꿈속에서 봤던 새가 가끔 날아와 지저귀는 그날이 곧 오겠지. 시간은 그렇게 물 흐르듯 흘러가겠지만, 꿈은 마음속에 남아서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