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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숲 일기(5)

한숲 이야기 / 에세이

by 김창수

13. 먹구름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던가. 수많은 꽃이 만발해서 어디를 가도 형형색색으로 덮여 있다. 오래전에 나들이 계획을 잡았으나, 차일피일 미루다 아침 일찍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물거품이 돼가는 중이다. 한국에서 가장 큰 화훼단지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서 화분을 몇 개 사고, 집에서 자라는 화초들이 힘이 없어 보여 식물 영양제도 사서 공급해주려고 했다. 혹시나 했는데,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하늘을 덮으며 어두운 아침이 되어 간다.


창가를 바라보니, 먹구름이 점점 커지면서 오늘 나들이를 포기했다. 준비해 놓은 옷을 주섬주섬 다시 옷장에 넣었다. 방이 어두워 불을 켜니, 얼마 전에 선물 받은 난 꽃봉오리가 터져있었다. 행복이 날아온다는 나비 모양인 보라색의 팔레놉시스가 창가에서 하늘을 보면서 방긋 웃고 있다. 화초 중에 난 꽃이 관리하기에 가장 어려운 식물인데, 예상치 않게 만개(滿開)해주니 집안이 환해지면서 집안에는 먹구름이 싹 사라졌다.


거리에는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몰라 우산을 들고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흰색 승용차가 빠른 속도로 어디론가 달려가다 시야에서 멀어진다. 바람이 불면서 먹구름이 빠르게 움직인다. 어두워진 하늘에 구름 사이로 가끔 햇빛이 보인다. 창가에 화초들이 그들만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오늘은 집에서 그동안 관리를 못 했던 화초들을 가꾸면서 나들이를 대신해도 괜찮을 것 같다. 먹구름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14. 단골 식당

이곳으로 이사 와서 음식점들이 많지 않아 마땅하게 갈 곳이 없었다. 주말에는 시 중심가로 가든가 아니면 다니던 조금 먼 단골 음식점으로 갔다. 대단위 아파트 단지에 음식점이 왜 없겠는가. 단골 음식점이라면 어느 정도 입에 맞아야 하고, 대중적으로 검증이 되어야 한다. 임대료가 너무 높아 음식 가격도 높을 수밖에 없다. 음식점들도 시장 조사를 하고 들어오겠지만, 업주와 손님 간의 간격이 있어 보였다.


어느 날, 아파트 근처 저수지로 산책을 하는데, 오래되어 보이는 음식점 입간판이 보였다. 가는 길 군데군데 낚시라는 오래된 간판이 희미하게 서 있었다. 저수지에 낚시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자연히 음식점도 하나쯤 있겠지 생각했다. 저수지에 가니 낚시 금지 간판이 여러 곳에 붙어 있었다. 저수지를 한 바퀴 돌고, 마을 쪽으로 돌아 내려가다 보니 입구에서 봤던 그 음식점이 있었다. 이런 곳에서 장사가 될까 하는 괜한 걱정을 하면서 들어갔다.


크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깨끗한 식당이었다. 메뉴판에는 시골스러운 음식들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저녁 시간이었지만, 사람이 많지 않았다. 시골 순두부를 시켰는데, 반찬들이 더 눈에 갔다. 순수하면서도 정겨운 어릴 적 음식이 생각났다. 지금은 얼마 전 TV 방송을 타서인지 가게를 확장해서 시골 냄새는 나지 않는다. 이제는 찾아오는 지인과 함께 오는 정다운 단골 음식점이 되었다. 직접 재배하고 만든 자연의 음식을 먹으러 온다.


15. 빨간 자동차

밖에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에 창문을 연다. 멀리 도로에서 빨간 자동차가 빠르게 어디론가 달려간다. 멀리 공장 단지에서 불이 났는지, 시커먼 연기가 올라오고 있다, 불이 나면 재산 피해는 당연히 생기겠지만, 인명피해가 없기를 바란다. 얼마 후, 진화가 되었는지 시커먼 연기가 사라지면서 하얀 연기가 보인다. 잊으려고 하면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가 아파트 단지에서도 간혹 들려온다. 소방대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아파트 단지에는 2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지만, 이곳의 행정단위는 읍이다. 조금 떨어진 읍 행정 지역에 가면 소방서가 그렇게 크지 않다. 대단지 아파트에 갑자기 늘어난 인구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다행히 부족한 인력은 지역에 있는 의용 소방대에서 도와주고 있다. 전국적으로 조직되어 있는 의용 소방대는 지역주민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조직이지만, 그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아내는 얼마 전 여성 의용 소방대에 가입해서 소방장비를 받고, 비상이 걸리면 자다가도 현장으로 뛰어간다. 직접 진화작업을 하지는 않지만,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을 지원해주고 있다. 아파트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산불도 가끔 발생한다. 의용 소방대는 평상시에도 산불방지 캠페인을 벌이고, 산에 올라가서 간단한 훈련도 받는다. 소방 복장을 갖추고 출동하는 아내를 보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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