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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숲 일기(4)

한숲 이야기 / 에세이

by 김창수

10. 책

오늘은 책을 보러 아침 일찍 도서관에 간다. 집 서재에 꽂혀 있는 책들은 구입 후 관심 있는 것들만 모아 놓았다. 신간 중에 읽고 싶은 책은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어, 요즈음 책을 사본지도 오래된 것 같다.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책을 보내주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다양한 종류의 책을 보려면 역시 도서관에 가야 한다. 그곳은 내 보물이 여기저기 숨어있어서 재수 좋은 날은 멋있는 보물을 찾아낸다.


도서관에는 고정석을 만들어 놨다. 2층에 있는 그 자리는 인기가 좋아서 늦게 가면 앉을 수 없다. 책을 보다 눈이 침침해지거나 머리가 아프면, 고개를 들어 옆을 본다. 그곳에는 대형 연못이 있고, 이 도서관이 생기면서 자리 잡은 터줏대감인 세 마리의 오리 가족이 있다. 잔디에 올라와서 앉아 있는 그들의 요염한 자태를 보면 부럽기만 하다. 조금 있으면 분수가 물을 뿜으며, 하늘로 올라갈 시간이다.


이곳은 이제 집보다 더 친숙하고, 아늑한 공간이다. 아침에는 여러 가지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 낮에는 주부들이 아이들 데리고 책을 고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늦은 오후에는 학생들이 학교를 마치고 이곳으로 몰려온다. 도서관이 마치는 시간이 되면 정신없이 공부하다 짐을 싸는 그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대견스럽다. 도서관의 불이 꺼지면서, 아파트 단지 창문의 불빛도 하나씩 꺼져간다.


11. 어린이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창문 너머로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간다. 화창한 날씨에 하늘은 푸르고, 푸른 벌판을 달리는 어린이들 세상, 5월이다. 학교 앞 건널목에는 학부모들이 노란 깃발을 들고 아이들을 안전하게 이동시킨다. 메인 스트리트가 1Km에 달하고, 신호등이 4개나 있지만, 차들이 출근 시간이라 밀리면서도 질서 정연하게 교통신호를 지킨다. 요즈음 부쩍 아이들이 많이 늘어난 것 같다.


이곳에 처음 이사를 왔을 때, 초등학교 개교가 늦어진다는 소식을 접했다. 학부모들이 대책위를 만들어 전단을 뿌리고,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저녁에는 학부모들이 학교에 모여 밤늦도록 토론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당시 대책위원장이던 여자 학부모의 논리적인 항의 및 대책이 인상 깊었다. 결국 버스로 세종시에 있는 교육부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면서 사태는 해결이 되었다. 아이들의 교육은 어떤 경우로도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


이곳은 어린이들이 많이 보여서 행복하다. 곳곳에 유모차들을 밀고 다니는 주부들이 자주 보이고, 단지별로 있는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시끄러운 소리는 아름답다. 학교 운동장에는 청소년들이 축구, 농구를 하면서 땀을 흘리고 있다. 정부에서 아이들을 낳지 않아서 인구 감소를 걱정할 때,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이곳의 유일한 걱정은 유아원, 학교 증설이다. 여기저기서 ‘5월은 푸르구나! 우리는 자란다.’라는 소리가 우렁차게 메아리친다.


12. 물

며칠 비가 오더니, 하늘이 파랗게 물들었다. 창가로 보이는 논에서는 농부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얼어있던 땅이 녹고, 그 자리에 거름을 주던 모습이 엊그제였는데, 어디선가 흘러들어 온 물이 논에 차기 시작했다. 처음 이사 와서 산책할 때 신기했던 것이 높이가 다른 논에 물이 차 있던 모습이었다. 논길을 따라 걸어가면 도랑이 있고, 그 옆에는 관개 수로가 깊이 만들어져 있다. 논 옆에 물길을 터주면 그 넓은 논에 물이 가득 찬다.


이곳 주변에는 크고 작은 저수지가 여러 개가 있다. 저수지는 논을 중심으로 보면 산 옆에 있다. 저수지에는 하늘이 파랗게 비추고, 구름이 흘러간다. 커다란 둑을 만들어 물이 채워진 저수지에는 물고기들이 살고, 사람들이 그 주변에 둘러앉아 낚시한다. 며칠 내렸던 비로 저수지의 수위가 조금 높아졌다. 저수지 옆에 나 있는 개울을 따라 평소보다 많은 물이 흐른다. 일부는 하천으로 흘러 들어가고, 일부는 양수기를 사용해서 논으로 퍼 올리고 있다.


곳곳에서 모심기가 시작되었다. 이앙기(移秧機)가 계속 돌아가고 있다. 이제는 논에서 소는 볼 수 없다, 농업의 기계화는 어린 추억을 사라지게 했다. 모가 자라서 벼 이삭이 되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 익어가는 가을이 곧 오겠지. 농부가 농사를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이 물길을 보는 거다. 주변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와도 그들은 물길이 막히지 않았는지, 논에 있는 물이 빠지는 구멍은 없는지 돌아본다. 물은 자연이 주는 위대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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