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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숲 일기(6)

한숲 이야기 / 에세이

by 김창수

16. 텃밭

이곳은 텃밭 세상이다. 아파트 단지 둘레에는 수많은 텃밭이 있다. 주말에는 온 가족이 출동해서 하루종일 그곳에서 땀을 흘린다. 텃밭마다 크기도 다르지만, 다양한 채소를 심은 곳은 농장 같은 모습으로 변신해 있다. 긴 겨울잠을 깨고, 봄이 지나면서 텃밭도 기지개를 편지 오래되었다. 아파트 단지 곳곳에서는 텃밭에서 재배한 상추로 고기를 구워 먹는지 그 냄새가 진동하여 들개와 길고양이들이 정신을 못 차린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면 농촌이다. 모내기가 끝나고 논에 물이 가득 차 있다. 벌써 모들이 물속에서 성큼 올라와 있는 모습이 올해도 대풍이 들 것 같다. 텃밭도 농촌과 공생한다. 논에 물대기할 때 사용하는 수로를 따라 텃밭이 있어서 큰 텃밭은 양수기를 동원하여 물을 사용하고 있다. 처음 입주 했을 때 농부들과 잦은 마찰이 있었지만, 이제는 이웃이 되어 가끔 그들에게 텃밭 가꾸기를 배우고 있다.


아내는 여기저기서 얻어 온 상추를 가져오면서, 금상추를 산지에서 따서 직접 먹을 수 있다고 입이 함지박만큼 커진다. 상추의 효능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는데, 상추 가지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주변에서 주는 채소로 반찬을 만들어 보답하면서 음식 솜씨도 늘었다. 처음 이곳에 이사 오면서, 고립무원(孤立無援)이라고 어떻게 사냐고 탈출을 꿈꾸던 아줌마가 텃밭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17. 불꽃놀이

이곳에서는 일 년에 한 번 축제가 열린다. 여느 시골의 축제와 다른 것이 있다면, 역사가 오래된 토성(土城)을 중심으로 열린다는 것이다.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인구가 늘어나, 축제의 규모가 커져 이틀간 진행한다. 프로그램도 다양해서 주변 동네에서 버스 대절해서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룬다. 축제 기간에 일부 도로를 막아도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주말에 열리기 때문에 가족 단위로 즐기는 축제다.


축제 시작 며칠 전부터 야외무대 설치 등 행사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수많은 인원이 동분서주한다. 그들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교통과 통행에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축제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도로를 막아 다양한 음식을 파는 거리의 조성이다. 지자체 직원들이 불량 음식 판매와 바가지요금을 근절하기 위해서 계도하는 모습이 당연하지만, 인상적이다. 오전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많은 지역주민이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이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불꽃놀이다. 밤하늘에 수놓는 무수한 불꽃들이 터질 때마다 들려오는 폭음소리와 화려한 광경에 여기저기서 지르는 함성이 온 동네로 퍼져나간다. 견주가 데려온 반려견들도 깜짝 놀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보면서 일심동체가 된다. 아파트 대단지에 입주한 지도 5년이 넘어간다. 원주민들과 보이지 않는 기싸움을 하던 아파트 주민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화합하면서, 불꽃처럼 건전하고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


18. 흙길

아파트 단지 주변이 농촌지역이라 흙길이 많다. 산책길 중 가장 좋아하는 길이 논을 따라 나 있는 논둑길이다. 논보다 높게 만들어 놓은 논둑길은 일반 흙길하고 다르게 포근함과 좁지만, 곡예를 하듯 걷는 느낌이 있어 재미있다. 논 주변에 흐르는 하천의 뚝방길(둑길)도 부분적으로 흙길이다. 물이 흐르고, 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광경을 보면서 걸으면 발걸음도 가볍다. 저수지로 올라가는 길과 등산로는 흙길에 미끄럼 방지용으로 야자 매트를 깔아 놓았다.


어릴 적 비가 오면 흙길이 빗물과 함께 뒤범범이 되면서 신발이 흙에 묻어 낭패를 본 적이 많다. 새 신발을 신고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신발에 흙을 묻히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피해 다니기도 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신발을 씻어 말리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라디에이터(히터)에 올려놓고, 신발을 뒤척이면서 말리기도 했다. 이래저래 흙길은 피해 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흙길을 걸으면 흙에서 나는 향긋한 냄새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흙냄새는 지오스민의 냄새인데, 숲 속에서 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처럼 심리적 안정을 준다. 흙길은 작은 자갈들이 많아서 발바닥의 신경을 자극한다. 산속을 걸으면 숲의 풍경을 보면서 흙의 냄새를 맡고, 다양한 감각기관이 자극받기 때문에 우울감도 없어지면서 편안한 느낌을 준다. 불편했던 흙길이 이제는 마음속의 길이 되어가고 있다. 흙으로 다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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