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숲 이야기 / 에세이
TV에서는 연일 장마 특보 방송을 하고 있다. 비가 오락가락하면서 장마전선은 널뛰기를 하고 있다. 올해는 비의 양이 많을 거라는 소식에 많은 국민이 긴장하고 있다. 거리에는 오색 비옷과 장화를 신은 아이들이 비닐우산을 하나씩 들고 즐거운 표정으로 등교를 한다. 그들은 자주 입지 않는 비옷을 꺼내 들고 설렜을 것이다. 장마는 누군가에게는 힘든 상황을 만들지만, 아이들은 그저 즐겁기만 한 것 같다.
저수지의 물을 방류하기 시작한 것은 며칠 전부터였다. 보통 2/3 정도를 담고 있는 저수지의 바닥이 보일 정도로 내려가 있다. 농부들도 논에 물 빼기를 하기 시작했다. 비의 양에 따라 물 빼기 작업이 바빠질 수도 있겠지. 다행히 아파트 단지는 지대가 높은 곳이라 지난 몇 년간 경험으로 ‘침수’라는 단어는 잊고 있다. 주변에 축대가 없는 이곳은 장마로부터 안전한 입지임에 틀림이 없다. 만약을 대비하는 관리소 직원들이 바빠 보인다.
주춤했던 장마전선이 다시 북상하는지 아침부터 하늘이 시커멓다. 어제 제주도 및 남부지역은 장마로 많은 비가 쏟아졌다는 방송을 보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하늘이 열리면서 장대비가 쏟아질 것 같은 분위기다. 재난 알림 문자가 계속 오고 있는 아침은 긴장으로 가득 차 있다. 곧 장마가 지나면 뜨거운 여름이 오겠지. 장마로 피해를 입은 많은 분께 시름이 깊지 않기를 바란다.
가정에서 쓰고 버리는 쓰레기들이 이렇게 많고, 다양한 줄은 몰랐다. 특히, 음식 쓰레기는 처리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안 지 얼마 되지 않는다. 주부들이 그동안 정부의 시책에 따라 쓰레기 분리 작업을 하면서, 쓰레기 배출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폐품 이용을 장려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소비도 많이 하고, 버려지는 폐품의 재활용도 다양하게 늘어나고 있다.
집에는 4개의 분리수거함이 있다. 폐지박스, 비닐박스, 유리, 캔 플라스틱 등을 넣은 박스 그리고 음식쓰레기 통이 별도로 되어 있다. 일주일간 모아 놓은 분리수거된 쓰레기들을 들고 아파트 단지마다 만들어진 분리수거장으로 향한다. 그곳은 24시간 개방되어 있지만, 주로 주말에 많은 주민이 몰려든다. 다양한 쓰레기들이 같은 장소에 분리되어 같은 모습으로 분리수거 차량을 기다리고 있다. 그 쓰레기들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이곳은 단지별로 분리수거일이 정해져 있다. 주로 주말을 피해서 작업하는 분리수거는 새벽이나 가장 한적한 시간에 이뤄진다. 대형 트럭과 인부 1~2명 정도가 와서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서, 분리수거부터 소각처리까지 시스템화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뉴스에 한국의 음식쓰레기 수거 방식이 세계적으로 알려졌다는 기사를 봤다.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쓰레기도 이제는 recycle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올해는 이른 폭염에 밤에도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방송에서 기상이변이라는 말을 쓴 지도 오래된 것 같다. 사계절이 분명해서 겨울에는 혹한(酷寒)으로 온몸을 감싸고 다녔고, 여름에는 혹서(酷暑)로 얼음 장사가 잘되었고, 봄·가을에는 나들이하기에 좋았던 시절도 이제는 한여름 밤의 꿈이 되었다. 재난 문자에 ‘극한 호우’라는 처음 들어보는 폭우 상황을 접하면서, 다가오는 폭염은 ‘극한 혹서’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것 같다.
아파트 단지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산들로 밤에는 산꼭대기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으로 뜨거워진 건물을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열린 창문으로 밤의 냄새가 나는 바람의 향내를 맡으면서 잠이 들곤 한다. 가끔 아파트 단지 내에서 들려오는 반려견들이 짖는 소리가 폭염 때문인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다시 아침부터 쏟아지는 뜨거운 햇볕으로 집안은 열기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오른 전기 요금 때문에 에어컨은 점잖게 잠을 자고, 애꿎은 선풍기만 돌고 있다.
다른 곳에 살 때는 이런 폭염 속에서 버티지 못하고 산이나 강가로 또는 시원한 백화점으로 피서(避暑)했지만, 이곳으로 이사 온 이후로는 더위를 자연과 함께 보내고 있다. 에어컨의 시원함도, 선풍기의 바람도 점점 멀어져 간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고 했나. 열은 열로써 다스려야 한다는 이치를 깨닫기 시작했다. 운동으로 땀을 낸 후 시원한 물에 샤워하고, 뜨거운 차를 마시면서 땀을 식힌다. 극한 혹서도 이열치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