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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숲 일기(3)

한숲 이야기 / 에세이

by 김창수

7. 비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아파트 단지는 비에 젖어가고 있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바퀴에서 뿌려지는 빗물은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진다. 산은 물안개로 덮여있다. 멀리 보이는 연못에는 곳곳이 연주하듯 물방울이 튀어 잔물결을 만든다. 주방에서 내려다보이는 논에는 담아 놓은 물에 빗물이 섞여가고 있다. 아이들이 우산을 쓰고 버스를 기다린다. 이 비 그치면 밖으로 나가서 젖은 길을 걸어야겠다.


어릴 적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비가 왔다. 조금씩 내리던 비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붓기 시작했다. 이미 젖은 옷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비닐우산을 건넸지만, 괜찮다고 했다. 비가 흠뻑 젖어서 우산이 필요 없어서이기도 헸지만, 빗물이 몸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좋았다.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들이 비만 오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즐거워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수십 년 전의 그 강렬했던 기분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


비가 그치자 집을 나섰다. 창밖을 통해서 비 오던 광경이 사라지고, 어느새 말라가는 아스팔트, 흙길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풋풋했다.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이미 나와서 비 오는 동안 못했던 작업을 하고 있다. 오늘은 무거운 물을 가져가서 주지 않아도 되는 기분 좋은 날이다.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할 때 정성스럽게 물을 줘야 풍성하고, 맛있는 채소를 먹을 수가 있다. 내일은 또다시 기분 좋은 날을 기다리며 즐거운 텃밭 가꾸기를 하겠지.


8. 운동

아파트 단지 내에는 새로 신축한 규모가 큰 스포츠 센터가 있다. 이사 와서 이곳을 방문해 여러 가지 종목 중에 수영을 등록했다. 25M 레인이 5개가 있는 중형 수영장이다. 새벽 일찍 10번 정도 왕복하면 하루가 편하다. 새벽 시간에는 주로 젊은 층이 많이 온다. 운동을 마치고, 일터로 가기 위해 부지런히 샤워한다. 정돈된 몸과 마음으로 각자 일과를 시작하는 그들의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아파트 단지의 새벽을 여는 스포츠 센터에는 스쿼시, 댄스, 골프, 요가, 필라테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입구로 들어가면 넓은 공간에 대기표를 뽑고 등록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자주 보는 이웃은 순서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주부들은 이미 놀이터가 된 그들을 쫓아다니며 자리에 앉힌다. 어수선해 보이는 이곳은 아파트 단지의 놀이방이자 만남의 장소이다. 한숲 주민들의 건강한 일상을 본다.


이곳에 사는 많은 사람이 주변의 조용하고, 깨끗한 환경 때문인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양한 운동을 한다. 종일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스포츠 센터를 제외하더라도 아침부터 주변의 산으로 등산하러 다니고, 반려견을 기르는 사람들은 일정한 시간에 산책한다. 저녁이 되면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려는 사람들이 저마다 야간 산책을 한다. 조용한 이곳에 정중동(靜中動)을 느낄 수 있는 하루가 지나간다.


9. 신호등

아파트 단지 메인 스트리트는 약 1Km가 된다. 길 양옆으로 유아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있어 신호등 횡단보도가 5개가 있다. 아침 일찍 거리는 등교하는 학생들로 어수선하다. 유아원을 다니는 아이들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학교로 향한다. 횡단보도에는 어머니들이 노란 깃발을 들고 파랑 신호등이 켜지면, 어린이들의 등교를 도와준다. 어느 동네나 볼 수 있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복작거리던 거리는 다시 평온을 찾아간다. 한산해진 거리의 신호등은 일정한 시간을 두고 빨강, 초록, 노란색으로 바뀐다. 사람들은 인도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1Km의 메인 스트리트를 달리는 자동차들은 전 구간이 거의 30Km로 제한되어 있어, 5개의 신호등을 신경질적으로 째려보면서 가다 서기를 반복한다. 신호등에 걸린 자동차 안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다 뒤에서 ‘빵’ 소리에 깜짝 놀라 액셀 밟는 소리가 커진다.


처음 한숲으로 이사 왔을 때, 메인 스트리트에 신호등도 많지 않고, 속도 제한 표시도 50Km로 되어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들 등하교 시간을 가슴 졸이며 시청에 민원을 넣었다. 거리는 주변이 노란색으로 도배가 되기 시작했고, 하교 시간에도 깃발을 든 자원봉사자들이 ‘매의 눈’으로 자동차를 보며, 횡단보도를 지키고 있다. 아이들은 신호등에 맞춰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늦은 저녁이 되면, 멀리서 한산한 거리에서 아름다운 신호등 불빛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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