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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Nov 27. 2021

22세, 대지진 체험 후 중대결단

사랑과 영혼의 철학자 2회

Søren Kierkegaard(1813~1855)의 이름 표기는, 외래어표기법으로는 키르케고르, 학회의 공식명칭은 키에르케고어이다. 그런데, 덴마크어로는 쇠얀 키에케거이다. 덴마크어는 r이나 d발음이 나지 않는다. 오늘은 실험적으로 쇠얀 키에케거라고 표기하고자 한다. 


1835년, 22세의 대지진 체험


키에케거는 1813년 5월 5일 덴마크 유틀란트(Jutland) 태생의 부모 밑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1835년, 키에르케고어의 나이는 22세, 아버지가 1756년생이시니까 이 때 아버지의 나이는 78세군요. 꽤 연세가 드셨네요. 7남매 중에 이제 페터 형(일곱중 여섯째)와 막내인 자기만 남고 나머지는 다 죽었다. 비극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당시 키에케거는 루터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당시 사회 분위기는 합리주의 전통에 대한 반작용으로 경건주의와 낭만주의의 분위기가 있었다. 경건주의란 신앙을 중시하며, 낭만주의는 형이상학보다는 자연과 삶을 노래하는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리라. 키에케거의 사상의 밑바닥에는 바로 경건주의와 낭만주의가 깔려 있다. 그런데 키에케거는 경건주의보다 더 이성적 사유를 중시하고, 자연을 예찬한 낭만주의보다는 더 초월 세계를 중시한다고 볼 수 있어요.     


1835년, 잇따라 급속도로 일어난 형제와 자매들의 이어지는 죽음때문에 아버지와 두 아들 페터 형과 쇠얀은 엄청난 시름에 빠졌다. 1835년 5월 5일, 키에케거가 22세의 생일을 맞이하는 날 아버지는 자신의 이삭이자(아브라함의 독자), 자신의 베냐민(요셉의 총애하는 아들)인 키에르케고어에게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게 된다. 이때 막내 아들 쇠얀 키에케거가 많은 충격을 '대지진 체험'이라고 한다. 그는 자기 자신이 '내면적으로 산산히 찢겨졌다'고 기록하였다. 대지진의 영향은,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의 범죄사실을 발견하고 받았던 충격과 거의 동일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이러한 집안의 비극이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저주라고 생각하고 막내아들에게 자신의 죄를 털어놓게 됩니다. 당시의 경건주의가 어떤 것인지 상상해보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과 떨림의 의식이 강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내가 목숨 걸 수 있는 주체적 진리 추구


1835년은 그가 '대지진 사건(The Great Earthquake)'을 체험을 하고 반항과 방종과 절망으로 빠져든 시기이다. 대지진의 체험이란 키에케거가 22세의 나이에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것과 아버지가 젊었을 때 지은 죄를 고백한 것으로 인하여 충격을 받았던 사건이었다. 급격하게 그의 삶이 내리막길로 가는 일이 이 때부터 일어난다. 이 해에 키에케거는 아버지와 결별하고, 덴마크의 북쪽 길레라이어(Gilleleje) 해변에서에서 그는 깊이 사색한다. 아버지의 인습적 종교를 그대로 물려받는 게 아니라, 이제는 나에게 진리가 되는 주체적 진리를 추구하기 시작한다. 내가 헌신하여 죽을 수 있는 진리, 나를 살리는 진리를 추구한다.     


"내가 어떤 사명을 걸머지고 있는가를 이해하고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는가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문제는 내게 진리가 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고, 내가 그것을 위하여 언제라도 죽고 살 수 있는 이념을 발견하는 것이다. 비록 내가 이른바 객관적인 진리를 발견하고, 철학적인 여러 체계를 다 연구하고, 그리고 만일 필요하다면 그것들을 비평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월터 라우리의 책, 140-142쪽)"    


그렇다. 답은 선택이며 결단이다. 여러 가지 관심사를 가지는 것보다 한 가지를 제대로 선택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렇다면 그가 그토록 추구했던 그 한 가지가 뭘까? 미리 말하면 성급한 면이 있겠지만, 이후에 그의 생애와 사상을 큰 그림에서 볼 때 '단독자(The Single Individual)'를 그 답으로 제시한다. 내가 연구해보니까, 단독자를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 앞에 홀로 하나님을 인식하는 사람이다. 하나님 앞에는 집단으로 설 수 없다. 각자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난다. 둘째, 책임 있는 자아이다. 단독자는 자신이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왕따', '외톨이,' 사회적 책무를 등한히 하는 사람을 단독자로 보는 것은 오해다. 셋째, 단독자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통합된 자아이다. 그 목적이 뭐냐? 마음의 정결함(Purity of Heart)이다. 오직 하나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넷째, 단독자는 군중이나 집단이나 나라보다도 개인의 자아와 인격에 더 큰 위엄과 권위를 부여하는 존재이다. 아마도 길레라이어에서 물음을 제기했다면, 그는 '단독자'로 답을 얻었던 것 같다.     



1835년 8월의 《길렐라이어 (Gilleleie)》 일기의 도입부


"마음 속에 진정으로 결핍되어 있는 것은 모든 행위에 전제되는 어떤 특정한 이해를 제외하고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지 '네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가 아님은 분명하다. 문제는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내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시는지 아는 것이다. 문제는 진정으로 나를 위한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며, 내가 그것을 위해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는 이상을 발견하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객관적인 진리'의 발견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그 모든 철학적 체계의 탐색 과정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래서 그 안에서 내가 살지 않고 다만 다른 이들의 관점을 떠받쳐 주는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만일 그것이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나의 삶을 위해서 깊은 의미를 가질 수 없다면, 기독교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무엇이 좋은가?


내가 이 진리를 알아차리든 아니든 배려하지 않고, 진리가 내 앞에서 냉담하고 헐벗은 채로 멈춰버린다면 그리고 진실한 헌신 대신 공포의 전율만을 유발한다면 나에게 무엇이 좋은가? 확실히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즉 인생에는 어떤 필수불가결한 앎이 있으며, 이 앎을 통해서 누군가 인간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이 앎은 나의 삶 안으로 들어와 지속되어야 하며, 이것이 내가 알게 된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덴마크 북쪽 길레라이어 항구의 모습, 키에케거가 이곳에서 깊은 사색을 하면서 '내가 목숨 걸 수 있는 진리'를 추구하기로 결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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