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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Nov 27. 2021

고요한 절망, 죽음의 행렬

사랑과 영혼의 철학자 3

'고요한 절망'이 키르케고르 집안을 휘감고 있었다. 아버지 미카엘은 유능하고 논리적이며 부유하고 성공하고 장수한 사람이다. 고요한 절망이란 집안 식구들이 계속 죽어가는 우울한 현실을 말한다. 지속적으로 가족이 죽어나간다.     



고요한 절망: 죽음의 행렬


1819년, 쇠렌 미카엘(일곱 중 넷째) 형이 12살 때 학교에서 친구와 머리가 충돌하여 사고로 죽는다. 1822년, 쇠렌 미카엘이 죽은 지 3년 후에 누이 마렌(Maren) 키야 스텐(첫째)이 경련 때문에 24살에 죽는다. 1832년, 니콜리네 크리스티네(둘째)가 죽은 아들을 낳은 지 1년 후 33세의 나이로 죽는다. 1년 후, 1833년 9월 21일, 나이로 보아 가장 가까운 형인 닐스 안드레아스(여섯 째)가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패터슨에서 죽는다. 1834년 7월 31일, 닐스가 죽은 다음 해 어머니 안네가 66세의 나이로 죽는다. 어머니가 죽은 후 5개월 후, 1834년 12월 29일, 딸 중에서 가장 영리한 페트레아 세베리네(7남매 중 셋째)가 아들을 낳다가 33세에 죽는다.      


33세! 누이 니콜리네가 죽는 나이이고, 예수님이 죽은 나이이다. 이 때문에 키르케고르는 자신도 33세를 넘길 수 없는 운명으로 알고 임박한 죽음을 대비하는 삶을 살았다. 그의 나이 33세이면 1846년이다. 1846년에 그의 사상을 완결하는 책, 《철학적 후서》(원제목: 철학의 부스러기의 결론적 비과학적 후서)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키르케고르의 철학적 작업의 중심이 되는 책이 《철학의 부스러기》와 《철학의 부스러기의 결론적 후서》라는 결론이 나온다. 제목에서도 '결론적'이라고 밝혔다. 형 페터는 마리에와 1836년 10월에 결혼해서 행복했으나 1년도 안되어서 1837년 7월에 형수 마리에가 인플루엔자-열병으로 죽는다. 남은 가족은 극도로 절망한다.     



아버지의 첫 번째 고백:  '내면적으로 산산히 찢겨졌다'     


잇따라 급속도로 일어난 이 허다한 죽음때문에 아버지와 두 아들은 엄청난 시름에 빠졌다. 1835년 5월 5일, 키르케고르가 22세의 생일을 맞이하는 날 아버지는 자신의 이삭이자(아브라함의 독자), 자신의 베냐민(요셉의 총애하는 아들)인 키르케고르에게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게 된다. 이때 막내 아들 쇠렌 키르케고르가 많은 충격을 '대지진 체험'이라고 한다. 그는 자기 자신이 '내면적으로 산산이 찢겼다'라고 기록하였다. 대지진의 영향은,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의 범죄사실을 발견하고 받았던 충격과 거의 동일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이러한 집안의 비극이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저주라고 생각하고 막내아들에게 자신의 죄를 털어놓게 다. 당시의 경건주의에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과 떨림의 의식이 강했던 시기였다.     

큰 지진이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그때 나는, 내 아버지의 나이가 많은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라는 사실을, 또 우리 가족들이 지니고 있는 뛰어난 재능은 다만 마찰을 야기시키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 키르케고르의 일기, 월터 라우리, 115쪽 -



축복이자 저주


아버지가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 아버지가 오래 살면서 아내와 자녀들이 죽어가는 것을 본다는 것은 형벌이다. 자녀들이 재능이 뛰어나고 천재성이 있었던 것도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 민감한 재능 때문에 엄청난 우울과 시름을 겪어야만 했다. 저는 '저주이자 축복(curse and blessing)'이란 말을 좋아합니다. 키르케고르에게 저주는 '우울함,' '죽음이라는 한계상황'을 의식하게 하였다.


아버지는 하나님께 형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해성사하는 마음으로 아들에게 자신의 범죄 사실을 털어놓는다. 1835년 5월 5일, 22살이 된 아들의 생일날로 추측한다. 그 내용은 무엇일까? 살인한 사람은 반드시 자기가 살인자임을 표현하는 법칙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키르케고르는 공개적으로 기록한 것은 없지만, 1846년 2월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어떤 사내의 무시무시한 사건, 그는 어린아이였을 때에 몹시 괴로움에 시달리고, 굶주리고, 추위에 몸이 마비되어 언덕에 서서 하나님을 저주했다. ···이 사내는 그가 여든두 살이 되었을 때까지도 이 사실을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월터 라우리, 122쪽.


바로 82살을 살았던 아버지를 가리킨다. 추위와 배고픔 때문에 하나님을 저주한 아버지의 범죄사실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아버지는 이 일화를 절대로 사하심을 받지 못하는 성령 훼방한 죄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는 경건주의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더욱 투철했음을 감안해야겠다.

아버지 미가엘 키르케고르(1756-1838)와 어머니 안나 쇠렌스타터 룬(1768-1834)


키르케고르의 출생 비밀


다윗이 밧세바와의 불륜으로 솔로몬을 낳았듯이, 키르케고르에게는 출생의 비밀이 있다. 아버지 미가엘 페터슨 키르케고르는 57세, 어머니 아나 쇠렌스타터 키르케고르는 45세인 1813년에 키르케고르가 태어났다. 외적으로는 그는 행복하고 차분했다. 도덕적 지성적으로 그는 아버지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그는 아버지의 막내아들이고 총애받는 아들이었기 때문에 부자간의 친밀감은 대단했다. 아버지는 경건하고 음울한 정신의 사람이었으며 아버지의 우울함이 그의 자녀들에게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는 부적절한 관계였다. 이 비밀을 22살에 그가 알게 되었던 듯하다.


부적절한 관계란, 키르케고르의 엄마는 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인데 그 집안의 하녀였다. 첫 번째 부인 키르스티네(Kirstine)가 결핵에 걸려 자녀가 없이 죽고, 그 집안의 하녀였던 어머니와 결혼했다. 첫 아이를 결혼 5개월 만에 출산했다. 첫 번째 부인이 병들어 있을 때 하녀를 유혹하여 임신을 하게 되어 결혼했던 것이다. 언제나 경건성과 엄격성으로 칭송해 온 아버지의 두 가지 과오로 말미암아 아들 쇠렌은 산산이 부서지게 된다. 그리고 1835년 아버지와 결별하고, 아버지의 종교인 기독교와도 결별을 암시한다. 달리 말하자면, 새롭게 진리를 추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의 인습적인 종교에서 주체적인 진리를 찾아나서는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는 깊이 시름에 빠진 아들을 위로하고자 덴마크 북쪽 세란의 길레라이어로 두 달간 여행을 가도록 경비를 대준다.


"나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


키르케고르는 1830년 17살의 나이로 코펜하겐 대학에 입학하여 십년간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신학보다는 철학과 문학, 오페라 음악과 뮤지컬 연극에 심취했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대학 3학년(1833년) 때부터 성실하게 일기를 썼다. 대학의 처음 4년간, 그는 아무런 시름없이 지냈다. 그러나 1835년 아버지의 고백으로 인하여 대지진을 경험하였다. 1838년 회심하기까지 그는 '파멸의 길(반항과 방종과 절망)'을 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아버지와의 결별은 아버지의 지배에서 해방되고 어린애가 어른이 되는 계기였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지성적으로 엄청나게 각성되었다. 휴가 중인 8월 1일에 길레라이어에서 쓴 일기에 "주사위는 던져졌다. 나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기록했다. 이 순간을 즐거운 독립의 시기라고 불렀다.


철학과 그리스도교는 결코 합치될 수 없다.


1835년 10월 17일 일기에 결론적으로 쓴 것은 그리스도교는 철학과 융화될 수 없기에 버려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성의 관점에서 기독교를 바라보았다. 회심 후에, 《결론적 후서》에서는 신앙의 관점에서 말한다.

"사변에서 물러나라! 그리스도교는 남는다. 그러나 철학은 실패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고뇌에 찬 회의도 결국 믿음의 역동 가운데 하나이다. 비록 대지진 체험 이후로 기독교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거만하게 비판했지만, 《관점》에서 키르케고르는 "결코 그리스도교를 저버려 본 일이 없다"라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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