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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Nov 27. 2021

키에르케고어의 자살시도

사랑과 영혼의 철학자 4


청년기의 방황


1835년 대지진 체험 이후 그의 삶은 파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철학과 그리스도교는 결코 합치될 수 없었다." 그는 철학을 선택했다. 그리고 방황했다. 계속되는 집안의 불행한 죽음으로 자신도 33세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강박관념이 있었고 결혼을 자신에게 금지되었다고 생각했다.


1836년, 전반기는 잘 보내다가 이후에 파멸의 길로 가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사탄에게 팔아버린다는 중세의 상상력에 빠져들었다. 키르케고르는 의심과 육욕과 절망을 주제로 한 야심만만 한 작품을 쓰려고 했다. 파우스트는 의심을, 모차르트의 돈 후안은 육욕을, 방랑하는 유대인 아스베루스는 절망을 상징한다.

그리스도교는 관능성을 배제한다. 그러나 그것이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관능성은 정립되고 있다. 
- 《이것이냐 저것이냐》1부 -


아버지가 정식 결혼 전에, 첫 부인이 자녀 없이 폐결핵으로 죽기 5개월 전에, 하인으로 있던 키르케고르의 엄마와 성관계를 한 것이 심한 충격이 되었다. '아버지처럼(엄마처럼), 안 살 거야.'라고 생각하면 꼭 그렇게 인생이 가게 되는 이치와 같다. 아버지가 성적인 타락을 했었던 것과 같이 자신도 성적으로 타락하는 경험을 한다.



타락 그리고 자살시도


1836년 4월 그는 매우 타락해가고 있었다. 일기 기록은 짧고 적었다. 가끔 술을 마셨고, 가끔 자살을 생각했다. 친구를 따라 5월에 매춘하는 곳도 갔다. 학자들마다 세세한 점에서는 의견을 달리하고 있으나 타락을 경험했다는 사실에는 의견을 같이 한다. (월터 라우리, 《키르케고르 평전》 168쪽)

죄란 하나님 앞에서 절망하여 자기 자신이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하나님 앞에서 절망하여 자기 자신이려고 하는 그것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


1836년 6월 4일 하이베르의 송별 파티에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바야흐로 총으로 자살하려고 하였다. 

나는 방금  파티에서 돌아왔다. 그 파티에서는 내가 중심인물이었다. 기지가 내 입에서 쏟아져 나왔고, 모두가 웃었고, 나를 칭찬하였다. 그러나 나는 자리를 떴다. 그리고 총으로 나 자신을 쏘려고 하였다.
- 월터 라우리, 《평전》180쪽 -



파멸의 길(1836년)


1835년 10월 13일, 그의 나이 22세 때 쓴 평론에서 그는 ‘대지진의 체험’ 이후 당시의 교회의 신앙을 떠났음을 암시한다. “철학과 기독교는 양립할 수 없다”라고 결론짓고, 기독교적인 삶의 모순에 회의를 느꼈다. 그가 교회의 신앙을 떠난 것을 문학적으로 “주사위는 던져졌다. 나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라고 표현하였다.


그의 방황의 극치는 그가 1836년 5월에 창기의 품에 안겨 순결을 던진 때였다. 그 해 두 어 달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도 아버지와 같은 죄에 동참했으나, 마음의 위안이 없었다. 그는 날카로운 언변과 유머로 청중들을 움직였다. 그러던 그에게 연회에서 묄러 교수(Paul Martin Møller)가 던진 한 마디 말이 키르케고르에게는 “각성을 위한 힘찬 트럼펫”이었다. 이 연회에서 몰러 교수가 한 말이 그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너는 아주 철두철미하게 논쟁적이다. 그야말로 무서울 정도다. You are so thorough and thorough polemicalized that it is perfectly fright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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