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읽기 17권
<일리아스> 17권에서는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이 명예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에, 차지하는 자가 명예를 얻는 것이기에 그의 시신을 두고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진다. <일리아스> 17권에서 메넬라오스의 머리를 '금발' 또는 '노랑머리'로 표현했다. 금발은 호메로스가 미남을 상징할 때 쓰는 표현이다.
16권에서 메넬라오스는 파트로클로스 옆에서 싸우다가 그의 죽음을 목도했다. 파트로클로스를 찌른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인 에우포르보스(Euphobus)가 '이 시신은 자신의 트로피이기 때문에, ' 메넬라오스에게 물러가라고 하면서, 파트로클로스의 갑옷을 벗기려고 했다.
"아트레우스의 아들 메넬라오스, 그 시체를 놔두고 물러가라! 우리 트로이군과 동맹군 가운데 내가 제일 먼저 그 자를 찔렀소. 내가 완전한 영광을 차지할 테니 물러가지 않으면 당신을 죽이겠소!"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차지하려고 에우포르보스가 메넬라오스에게 말한다. 그렇다. 아킬레우스의 최측근 파트로클로스의 시신과 갑옷을 차지하는 것이 '영광과 명예'를 얻는 일이고, 그리스군에게는 치욕이 되는 일이다. 에우포르보스는 죽은 형 헤페레노르(Hyperenor) 14권 끝부분에서 메넬라오스에게 죽임을 당함 의 복수를 한다며 메넬라오스에게 창으로 상대의 방패를 쳤으나 창끝만 부러지고 방패를 뚫지는 못했다. 그러자 메넬라오스는 제우스에게 기원을 드리며 달려들어 창날로 에우포르보스의 목덜미 밑을 찔러 죽였다. 이제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메넬라오스가 차지하는 듯했으나, 아폴론이 인간 멘티스로 변신해서 헥토르에게 알린다.
"지금 메넬라오스 왕이 파트로클로스를 지키면서 당신의 으뜸 장수, 판토우스의 아들 에우포르보스를 죽였소."
아폴론이 멘티스로 변신하여 헥토르에게 알려준다. 헥토르가 파트로클로스의 시신과 갑옷을 취하여 트로이성으로 들어가려고 결심하고 그 현장에 달려가 보니, 메넬라오스가 에우포르보스의 시신에서 무구를 벗기고 있었다. 헥토르가 돌진해오자 그를 상대할 능력이 모자란 메넬라오스는 시신을 지켜할지 잠시 갈등하다가 퇴각하여 대 아이아스를 찾아 도움을 청한다.
"아이아스여! 이리 와보시오. 죽은 파트로클로스를 위하여 싸웁시다. 벌거벗은 시신이나마 아킬레우스에게 가져다주도록 합시다. 아킬레우스의 무구는 이미 헥토르가 가져갔소."
메넬라오스가 대 아이아스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말한다. 아이아스는 메넬라오스와 함께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갔다. 헥토르는 파트로클로스의 무구를 도성으로 보내고, 자신은 전차에 올라타서 자리를 피한다.
메넬라오스가 아이아스를 데려오자 자리를 뜨는 헥토르를 모습을 본 글라우코스(Glaucus)가 열 받았다. 글라우코스는 죽은 사르페돈과 함께 리키아 지도자인데 트로이 전쟁을 위해서 먼 길을 지원 나왔다. 그런데 헥토르와 트로이군이 열심히 싸우지 않는 것 같아서 늘 불만이었던 게 사실이다. 글라우코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확보해서 동족 지도자 사르페돈의 시신과 맞교환을 하는 게 목적이었는데,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의 갑옷만 벗겨두고 시신을 포기하고 가는 것은 동맹의 가치를 생각하지 않는 비겁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아스가 겁나서 도망가냐'고 글라우코스가 놀리자 헥토르는 화를 내며, 트로이 장수들은 비겁하지 않다며,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차지하고 아이아스를 물리치자고 트로이군을 독려한다.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가져오는 자는 전리품의 절반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먼저 헥토르는 파트로클로스에게서 벗긴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올 때까지 싸우고 있으라고 말한다. 헥토르는 후방으로 갑옷을 운반하기 위해 말 타고 가는 뒤쫓아가서 아킬레우스의 갑옷으로 갈아입었다. 굳이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의 갑옷으로 갈아있으려는 대목이 의아하다. 불멸의 갑옷이라고 탐이 났던 모양이다.
이 모습을 본 제우스가 헥토르를 불쌍하게 여긴다. 왜냐하면 아킬레우스가 친구의 죽음을 복수하려 헥토르를 죽일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겁내는 불멸의 갑옷을 헥토르는 스스로 입었다. 어차피 이 싸움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헥토르의 운명을 안 제우스가 헥토르에게 -비록 일시적이지만 - 큰 힘을 내려주고, 그 유명한 갑옷을 헥토르의 몸에 꼭 맞게 만들어주었다.
헥토르와 트로이군이 공격해오자 아이아스와 메넬라오스는 소 아이아스, 이도메네우스, 메리오네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그리스 군이 트로이 군을 성벽까지 몰아붙였다. 아폴론이 페리파스(Periphas)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안키세스의 아들 아이네아스를 격려한다. '지금 제우스는 그리스군보다 트로이인의 승리를 더 원하고 있다. 이렇게 두려워하기만 하고 공격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 말을 듣고 아이네아스는 그리스군을 밀어붙인다. 처음에는 파트로클로스의 시체를 두고 그리스군이 물러갔으나, 아이아스가 그 시신을 다시 확보한다. 아이아스는 헥토르의 공격을 막아내고 그 시신을 지켰다. 아이아스는 아킬레우스 다음으로 가장 뛰어나고, 가장 강한 장군이다! 아이아스와 아킬레우스는 제우스의 피가 흐르는 사촌지간이다.
"헥토르여! 제우스는 아직 우리 편입니다. 그러니 다시 적을 공격합시다. 이미 죽은 파트로 클로스이지만 그 시체일망정 적군이 손쉽게 가져가게 해서는 안됩니다." 아폴론에게 힘을 얻은 아이네아스가 헥토르에게 외친다. 양군은 치열한 격전을 벌인다. <제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주위에 그토록 치열한 인마의 격전을 일으켜 놓았던 것이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모르는 영웅들. 네스토르의 두 아들 안틸로코스(Antilochus)와 트라쉬메데스(Thrasymedes)와 아킬레우스이다.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에게 성벽까지 가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그 도시를 함락하러 공격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안틸리코스와 트라쉬메데스 형제는 파트로클로스가 여전히 싸우고 있는 줄로 알았다.
아킬레우스의 불멸의 말들이 싸움터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제우스가 신선한 힘을 불어넣어 주자 아킬레우스의 마부 아우토메돈(Automedon)가 전차를 몰고 활약하기 시작한다. 헥토르가 그를 죽이고 불멸의 말이 이끄는 아킬레우스의 전차를 빼앗으려 했으나, 그가 헥토르의 창을 피하고 오히려 트로이 사람을 죽였다. 아우토메돈은 알키메돈에게 전차를 몰게 하고 싸웠고 아레토스를 죽여서 그 갑옷을 벗기고 의기양양하며 파트로클로스에 대한 작은 복수를 했다며 위안을 삼는다.
아테나 여신과 메넬라오스
시신쟁탈전이 계속되자 아테나가 원로 포이닉스의 모습으로 나타나 메넬라오스를 격려한다. 시신을 빼앗기면 더 없는 치욕과 불명예를 겪게 될 것이라며 용감히 싸우라고 말한다. 메넬라오스는 포이닉스에게 "아테나 여신에게 힘을 주도록 기도해달라"고 부탁을 하자, 이를 들은 눈이 밝은 아테나가 기분이 좋아서 메넬라오스의 양 어깨에 힘을 넣어주고 가슴에 용기를 불어넣는다. 이에 메넬라오스는 헥토르의 가까운 친구를 죽인다. 아폴론은 헥토르가 좋아하는 파에놉스(Phaenops)로 변신하여 '친한 친구 포레스의 죽음을 복수하도록' 헥토르에게 힘을 내려준다. 아테나는 제우스의 허락을 받고 내려온 것이다.
변덕스러운(?) 제우스가 처음에는 그리스군에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트로이가 가져가 모욕하지 못하도록 그리스 군에게 힘을 실어주다가, 이번에는 아테나 여신의 도움으로 트로이인들이 밀리자 헥토르와 트로이군을 편들어준다. <크게 천둥과 번개를 내려치고, 찬란히 빛나는 술이 달린 방패(아이기스, Aegis)를 들어 그리스군 쪽으로 흔들었다. 갑자기 공포에 질린 그리스 군은 패주하고, 트로이군은 싸움을 석권하기 시작했다.
아이아스는 메넬라우스와 메리오네스에게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들고 퇴각하라고 말하고, 안틸리코스를 통해서 절친의 죽음을 아킬레우스에게 알리게 한다.
아폴론과 제우스의 지원을 받아 신들린 듯 활약하는 헥토르를 보고서, 아이아스는 먼저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아킬레우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시신을 지키고 있었던 메넬라오스에게 안틸로코스를 찾아서 죽음을 아킬레우스에게 알리라고 말한다. 메넬라오스는 시신을 지키지 못하고 떠나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며 안틸로코스를 찾아 나서는데, 그 모습은 최고의 시력으로 마치 먹잇감으로 토끼를 알아보고 잽싸게 덮치는 독수리 같았다고 호메로스는 묘사한다.
안틸로코스를 만났을 때 그는 파트로클로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처음 듣고 슬퍼한다. 메넬라오스의 지시대로 아킬레우스에게 전하러 떠난다. 아이아스는 그 시신을 데리고 철수하기로 결정하고, 메넬라오스와 메리오네스에게 시신을 들고 퇴각하라고 말한다. 아이아스가 방패로 이들을 호위한다. 그 시신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트로이군의 모습과 그 시신을 방어하는 아이아스 일행의 모습은 개떼가 멧돼지에게 달려들지만 공격할 수 없는 형국과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