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르 Ohr Dec 28. 2021

23권 파트로클로스 장례식과 추모경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읽기 23권


<일리아스> 23권은 2권과 짝을 이룬다. 2권은 오프닝크레딧(opening credit)이며 23권은 엔딩크레딧(ending credit)이다. 영화가 시작할 때 제작진과 배우를 소개하고, 영화가 끝날 때 등장인물과 관계자를 소개하는 구조와 같다. 2권에서는 배들의 함선 목록과 함께 장수들을 소개했고 23권에서는 참전해서 생존한 그리스 영웅들을 소개한다. 22권에서 헥토르의 죽고 24권에서 헥토르의 장례를 치르는 가운데 위치한 <일리아스> 23권은 두 클라이맥스 사이에서 '완충(a buffer)' 역할을 한다.



파트로클로스 장례 준비


분노와 잔인함에 가득차 있던 아킬레우스가 전차로 헥토르의 시체를 끌고 뮈르미돈 족이 그리스 진영으로 되돌아온 대목에서 주목할 것이 있다. 분노와 잔인함에 가득 차 있던 아킬레우스는 얼마든지 트로이 성을 더 공략할 수도 있었으나 되돌아왔다. 왜 그랬을까? 에제 헥토르를 죽였고 이제 파트로클로스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 돌아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직접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포세이돈 때문이다. 21권에서 아킬레우스가 강의 신 크산토스의 공격으로 죽을 지경에 이르자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그를 구출해주었는데, 그 때 포세이돈이 당부했다.


"지금 그대에게 꼭 충고할 게 있으니 귀를 기울이라. 용감히 싸워서 살아남은 트로이군을 모두 그들의 성으로 완전히 몰아넣되 헥토르와 싸워서 그를 죽이면, 즉시 함대로 돌아가라. 우리는 그대의 승리를 약속한다."


포세이돈이 아킬레우스에게 트로이 군을 성 안으로 몰아넣고 헥토르를 죽이는 일까지만 하고 더 이상 트로이를 공격하지 말고 돌아오라고 신신당부를 했기 때문에 네 번째 전투를 마치고 돌아온 것이다. 함선에 돌아온 아카이오 족은 모두 해산하지만, 아킬레우스와 뮈르미돈 족은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에게 가서 애도한다. 애도의 표시로 뮈르미돈 족은 전차와 말을 몰고 통곡하면서 파트로클로스의 시체 주위를 세 바퀴나 행진한다. 아킬레우스는 친구 시신의 가슴에 두 손을 얻고 울부짖으며 말한다.


"황천길로 잘 가게, 파트로클로스여! 내가 그대에게 언약한 바를 모두 끝마쳤네! 헥토르를 이 자리에 끌고 와 생으로 개들이 먹게 할 것이고, 트로이군 열두 귀족 아들의 목을 그대의 화장터 앞에서 자라서 자네의 복수를 하겠네."


그리고는 헥토르의 시체를 파트로클로스의 관 옆 흙바닥에 죽 펼쳐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성대한 장례음식을 준비하고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에게 초대되지만 파트로클로스를 장례치르기까지는 식사도 거부하고 따뜻한 물에 피를 씻어내는 목욕도 거부했다. 


파트로클로스의 시신 위에 애도하는 아킬레우스, 왼쪽바닥에 헥토의 시체를 두었다


아킬레우스는 다음날 파트로클로스의 장례식을 치르도록 요청했고, 다음날 새벽에 불로 화장할 수 있도록 나무를 준비하도록 요청한다. 성대한 식사를 하고 잠을 자는데,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해변가로 가져갔으며 파도 소리가 은은히 들리는 기슭  땅 위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파트로클로스의 혼령이 아킬레우스를 찾아오다


파트로클로스의 혼령이 꿈속에 아킬레우스에게 나타나 자기를 잊었다고 원망하며 빨리 장례식을 치러서 하데스의 문을 통과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아킬레우스도 트로이 성벽 아래에서 죽을 운명인데 자신의 뼈를 보관했다가 유골을 아킬레우스 어머니가 주었던 납골 항아리에 넣어서 함께 묻어달라고 요청한다. 이 대목에서 파트로클로스가 어떻게 아킬레우스의 집에와서 팔레우스의 참모로 자라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아주 어렸을 때 주사위놀이를 하다가 싸움이 일어나 한 사람을 죽여서 아버지가 아킬레우스의 집에 보낸 것이었다. 팔레우스는 그를 환대해주고 참모로 사용했다. 아킬레우스가 손을 뻗아 친구의 손을 잡으려고 하자 친구는 사라졌고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머리카락을 잘라 애도하는 의식


다음 날 새벽이다. 이도메네우스의 비서 메리오네스가 사람들을 인솔해서 화장 장례에 사용될 나무를 하려고 도끼와 새끼끈을 가지고 나간다.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와 함께 묻히기로 작정하고 한 자리에 큰 무덤을 만들어 놓고 그 자리에 나무를 쌓는다. 장례식이 진행된다. 전차 부태가 앞서고 수천의 보병이 구름같이 따르고 가운데 파트로클로스를 운반한다. 모두들 머리카락을 잘라서 그것을 수의 삼아 파트로클로스의 시체를 덮는다. 아킬레우스도 스펠케이오(Spercheius) 강에 바치고자 깍지 않았던 금발 머리타래를 잘라서 친구의 시신 위에 놓는다. 스펠케이오스 강에 머리를 잘라 바친다는 것은 승리하고 살아서 그리스에 돌아간다는 뜻인데, 지금 머리를 잘라서 친구 시신 위에 둔다는 것은 자기도 트로이에서 죽을 운명임을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엄청난 희생제물을 신들에게 바쳤고, 생포해온 12명의 트로이  사람의 목초 무자비하게 잘라서 희생제물로 바쳤다. 장작더미에 불을 붙여 시체를 태운다. 아킬레우스는 울부짖으며 친구의 이름을 부른다.



아프로디테와 아폴론이 헥토르의 시신을 보호하다


친구에 대한 복수로 헥토르의 시체를 개들과 독수리가 뜯어먹도록 밖에 두었지만, 아프로디테와 아폴론이 헥토르의 시신을 보호해서 개가 뜯어먹지 못하게 했다. 아프로디테 여신은 헥토르의 시신을 질질 끌려가도 몸이 상하지 않도록 장미기름을 몸에 발라주었고, 포이보스 아폴론은 시신이 햇빛에 마르지 않도록 검은 구름으로 덮어주었다.


화장을 하는데 불이 타오르지 않아서 아킬레우스가 난처했다. 서풍과 북풍에게 축원을 드릴 것을 약속하자, 무지개 여신 이리스가 이 축원을 바람 신들에게 전달하여 장례식의 장작더미가 잘 타도록 바람을 일으켜주었다. 이렇게 밤새도록 화장 장례에 준비한 나무들이 다 타서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렇다면 장례식으로 하루를 보냈다는 말이겠군. 추모 경기는 장례식 다음날이 되나보다. 다음 날 파트로클로스의 유골을 모아서 금단지 유골함(urn)에 넣었고, 그를 위해서 만든 볼록한 언덕(무덤)을 만들었다. 아키레우스는 자기도 그 무덤에 같이 묻어달라고 말한다. 아킬레우스는 장례 인사로 나누어 줄 상품을 준비했다. 가마솥, 세발 솥, 말과 노새, 좋은 소들, 아름다운 여인들, 그리고 잿빛 강철 등 이다.



장례 추모 경기(온종일)


추모 경기를 위해서 많은 상품을 내놓고 경기를 진행한다. 아가멤논왕보다 아킬레우스가 더 지도력을 발휘하며 모든 경기를 주관하고 있다. 전차 경주가 가장 주목할 만한 경기이고, 그 외도 권투, 레슬링, 달리기, 활쏘기, 원반 던지기, 창 던지기 등을 진행한다. 


1. 전차 경기

디오메데스 안틸로코스 메넬라오스 메리오네스 에우멜로스


아킬레우스의 아버지의 부하 포이닉스를 심판으로 세워서 달리는 것을 감시하고 경과를 보고하게 하였다.  2권에서 에우멜로스의 말이 가장 탁월하다고 소개한 우승 1순위이다. 그런데 왜 우승을 놓쳤을까? 사연이 있다. 5권에서 디오메데스가 아이네아스에게 빼앗은 명마를 가지고 나온 우승 후보이다. 메넬라오스는 형인 아가멤논 왕을 가지고 전차 경주에 참여한다. 지혜로운 노인 네스토르의 아들 안틸로코스도 참여했다. 크레타 섬의 왕 이도메네우스의 시종 메리오네스도 신청했다. 전차 경주에서 눈여겨볼 대목들이 있다. 


선두경쟁. 선두 그룹에 에우멜로스와 디오메데스, 중간 그룹에 메넬라오스와 안틸로코스, 후미에 메리오네스가 달리고 있다. 선두그룹에 신들이 개입을 했다. 트로이 편을 들고 있는 아폴론이 이번 전쟁에서 못마땅하게 여긴 디오메데스의 말채찍을 떨어뜨려서 뒤쳐지게 한다. 하지만 아테나 디오메데스에게 얼른 채찍을 가져다주었고, 선두를 달리는 에우멜로스의 말의 멍에를 부러뜨려서 선두자리를 디오메데스가 차지하게 만든다. 이 일로 에우멜로스는 꼴찌로 뒤처지게 된다. 경기에서 일어나는 변수들을 신들의 개입으로 이야기하는 인상이 든다. 우승 1순위가 꼴찌를 하는 경우가 실제로 있기 때문이다.


2등 경쟁. 중간 그룹에서 메넬라오스와 안틸로코스가 경쟁한다. 좁아지는 길목에서 안틸로코스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옆으로 접근해오자 위험을 느끼고 메넬라오스가 속도를 줄이고 이틈에 안틸로코스가 추월한다. 경기 후에 둘 사이에 '반칙 논란'이 벌어진다. 경기에서 실제로 이런 실갱이를 종종 볼 수 있다.


전차 경주 결과가 나왔다. 아킬레우스가 상을 주는데 우승 1순위인데 멍에가 부러지는 불운 때문에 5등을 한 에우멜로스를 측은하게 여기서 2등 안틸로코스에게 줄 상을 에우멜로스에게 주자고 한다. 당연히 2등인 안틸로코스가 반발하는데, 여기서 아킬레우스가 지도력을 발휘하여, 2등상 2등에게 주고, 에우멜로스에게는 아킬레우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물(가슴받이)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반칙 논쟁의 해소. 함께 경쟁했던 메넬라오스가 2등 안틸로코스가 '반칙'을 했다고 이의를 제기하며 해명하라고 요구한다. 메넬라오스의 전차의 진로를 방해했다는 주장이다. 지혜로운 네스토르의 아들 안틸리코스 답게 상대의 분노를 지혜로운 말로 잠재운다. 그는 반칙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젊은 사람이 마음이 급하고 생각이 얕아서 실수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자신이 받을 2등상을 상대인 메넬라오스에게 주겠다고 한다. 마음이 흐뭇해진 메넬라오스는 '괜찮다'며 2등 상을 안틸로코스에게 그대로 주어서 자신도 '속 좁은 사람'이 아님을 과시한다. 


2등 안틸로코스와 2인자 아킬레우스의 동일하게 한다. 이런 해석이 있다.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 왕에게 섭섭했는데, 이 경기에서는 2인자가 섭섭하지 않도록 잘 처리하고 있다.


원로 네스토르까지 상을 주는 지도자의 모습. "자 존경하는 장군이시여, 그대에게도 무엇을 하나 드려야지요. 이것을 파트로클로스 장례 기념품으로 드리겠습니다. 그대는 이승에서는 다시 그를 만날 길이 없을 것이오. 이것을 그냥 드리겠소. 그대는 이런 것 때문에 권투나, 레슬링이나 창던지기나 또 뜀뛰기를 안 하실 겁니다. 이미 춘추가 높으시니." 5등 상품이 남아서 원로 네스토르를 높이는 뜻으로 아킬레우스가 상을 준다. 이런 잔치에 어른을 위해 상품을 드리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이다.


원로 네스토르까지 상을 주는 아킬레우스. 원로ㅡ네스토르, 중앙에 서 있는 이ㅡ아킬레우스, 붉은 색 옷ㅡ아가멤논, 왼쪽ㅡ안틸로쿠스? 붉은 색옷 옆 ㅡ 메넬라오스?


2. 권투 경기: 에페이로스가 에우리알로스를 이기다



3. 레슬링 경기: 대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의 대결, 무승부

두 영웅의 대결이 볼만한데 무승부로 끝났다.

오디세우스는 상대방을 쓰러뜨리지 못하였고 아이아스 역시 그러했다. 오디세우스는 너무나 강했다. 상반신만 공격하는 그레코로만형 레슬링이었다. 이번에 아킬레우스는 무승부를 선언했다.



4. 달리기 경기: 소 아이아스 오디세우스 안틸로코스

한 마디 말의 효력. 여기서도 신들이 개입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디세우스가 작은 아이아스에게 뒤쳐지자 아테나 여신에게 기도를 올린다. 이에 아테나 여신이 기도한 오디세우스의 다리를 가볍게 해서 빨리 달리게 하고, 1등 아이아스는 황소들의 똥물 속에 처박히게 한다. 그 결과 1등 오디세우스, 2등 아이아스, 3등 안틸로코스가 차지한다. 이 때 지혜로운 네스토르의 아들 안틸로코스가 오디세우스를 칭찬하면서 동시에 아킬레우스를 높인다. "우리 중에 달리가로 오디세우스를 이기기는 어렵습니다. 아킬레우스 장군이라면 몰라도." 그랬더니 기분이 좋은 경기를 주관하는 아킬레우스가 그에게 상으로 '황금 반 덩어리'를 추가로 주었다. 경기 주관자가 참 재미있게 경기를 운영하는 것 같다.



5. 긴 창과 방패와 투구 결투: 대 아이아스와 디오메데스 결투

경기를 중단하고 무승부를 선언하는 심판관 아킬레우스. 대 아이아스와 디오메데스가 막상막하로 겨루게 되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가 부상을 우려해서 경기를 중단시키고 똑같이 상을 주도록 한다. 이 또한 경기 운영의 묘미를 잘 살린 것이다. 경기에서 누가 상처받으면 안 될 일인데 하물며 부상을 당하는 것도 안된다.



6. 무쇠원반 던지기: 폴뤼포이테스가 우승



7. 활쏘기 경기: 테우크로스와 메리오네스 대결

사소한 일에 있어서도 신은 중요하다. 테우크로스와 메리오네스가 <일리아스>에서 활 솜씨를 제대로 선보였음을 앞에서 보았다. 그들은 가장 뛰어난 궁사들이다. 두 사람의 활쏘기 대결이 흥미진진하다. 활을 쏴서 비둘기를 맞추는 경기였다. 메리오네스가 1등을 했고, 테우크로스는 1등을 놓쳤다. 그 이유는 궁술의 신 아폴론에게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폴론 신에게 적절한 제물을 바치기로 하겠다는 맹세의 기도를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에서까지 신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8. 투창던지기: 아가멤논과 메리오네스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보기 좋은 모습.


아가멤논 대왕과 이도메네우스의 참모 메리오네스가 투창 던지기에 참여했다. 이 부분에서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에게 의견을 제시한다.


"아가멤논 대왕이시여, 우리는 전하가 모든 면에서 뛰어나시고, 힘에 있어서도 투창에 있어서도 제일인자이심을 잘 압니다. 그러니 그대는 이 상품을 져가시기를 빕니다. 그러나 용서하신다면 창은 메리오네스에게 주고 싶습니다. 어쨌든 그리 되기를 원하는 바입니다."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 왕에게 말을 건넨다. 이것은 친밀함? 화해?의 표시이다. 경기를 하기 전에 아킬레우스가 1등 상을 어린 후배 메리오네스에게 주자고 한다. 여기에는 아가멤논 왕에 대한 아킬레우스의 배려도 담겨 있다. 그가 지게 되면 불명예가 되기 때문이다. 일대일 대결에서 왕이 지는 것은 좋은 모습이 아니고 수치이다. 차라리 지도자의 아량을 베풀어서 두 사람 다 윈-윈하자는 제안을 아가멤논이 받아들인다. 추모경기는 이처럼 축제로 마치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22권 최후 결전, 헥토르의 죽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