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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Dec 13. 2021

에피쿠로스, 쾌락주의

20대에게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 : 고대 철학

밴스야, 군생활하느라고 수고했어. 너의 복학생활을 응원한다. 오늘은 에피쿠로스를 소개하려고 한다. 에피쿠로스 알지? 쾌락주의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지.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는 학파란다. 바울이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산 밑에 아레오바고라는 토론장이 있는데 거기서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을 만나 쟁론했다(행 17:18)는 기록이 나오지.


에피쿠로스를 소개하려고 공부해보니, 참 특이한 인물이더라. 어떤 면이 특이하냐면? 그는 단순히 식도락이나 방종한 파티를 벌이면서 무절제한 쾌락을 추구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단순한 삶'(Simple Life)을 가장 이상적인 삶으로 생각했다. 그는 개인주의의 선구자이며, 공동체-대안학교-의 선구자이다. 여기서 개인주의와 공동체는 서로 배치되는 게 아니더구나. 플라톤이 《국가》에서 말한 전체주의에 실망하고 시대가 혼란스러워서 이제는 개인의 안녕과 평안을 추구하게 된다. 에피쿠로스는 아테네에 정원을 구입하여 그곳에 공동체를 시작했다. 에피쿠로스 학파를 '정원 학파'(The Garden Path)라고 부른다.



에피쿠로스, 정원학파(The Garden)


에피쿠로스(Epicurus, 341-270 BC)는 단순히 쾌락주의자, 방종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무려 600여 년간 존경을 받았고 제자들이 그를 따랐다. 그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는 일종의 철학 상담자였다. 삶의 지혜를 알려주었다. 당시 그리스의 상황은 알렉산더 대왕 이후 정치적 사회적으로 혼란스럽게 되었다. 권력투쟁의 혼돈으로 빠졌고, 외세의 침입으로 그리스는 피폐해졌다. 세계질서가 급격히 변하고, 국가를 지탱하는 중산충이 무너졌다. 전쟁에서 죽는 사람들도 많아서 죽음의 두려움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에피쿠로스는 죽음의 두려움을 해결하는 법, 혼란한 삶 가운데 마음의 평온을 회복하는 법, 고통을 줄이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설파하며 공동체를 형성했다. 더 이상 세계를 통일하거나 거대한 전제국가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고, 물욕과 정치욕을 버리는 소박한 삶을 꿈꾸게 했다. 그래서 그를 개인주의의 선구자로 볼 수 있다.


에피쿠로스는 단순히 세상의 경박한 쾌락을 추구한 사상가가 아니다. 그를 경박한 쾌락주의자나 방종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은 후대에 그를 비하하는 무리들이 만든 이미지일 뿐이다. 그럼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행복은 무엇인가? 그가 말하는 행복은 마음의 평온함(아타락시아)이다. 고통을 줄이고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삶을 즐기기 위해서 죽음의 공포와 신에 대한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에피쿠로스의 사상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전적 그리스 철학자들은 영혼불멸을 믿었다. 죽은 후에 몸은 썩어서 버려지지만 영혼은 불멸하게 된다는 사상이다. 참고로 기독교는 영혼불멸 사상이 아니라 몸의 부활을 말한다. 그리스 철학이 몸을 부정하는 반면, 기독교는 몸과 물질을 긍정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가 아름답고 좋다고 믿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의 특이한 점은 영혼불멸을 믿지 않는다. 죽으면 그만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등이 초자연주의 철학자라면, 에피쿠로스는 내세를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연주의 철학자이다.



죽음,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두려움


에피쿠로스는 죽음의 공포를 해결하는  것이 인생을 즐기는데 중요한 과제라고 보았다. 에피쿠로스가 살았던 그리스는 전쟁의 위협으로 불안한 세상이었다. 로마가 그리스도를 정복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죽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사람들에게 해결하고 싶었다. 게다가 에피쿠로스 자신은 요로결석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죽음과 고통의 위협 가운데 마음의 평정심(Ataraxia)을 유지하는 것이 그의 행복론이었다.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그는 가르친다. 사람이 태어나기 전 엄청난 시간에 대하여 우리가 염려하거나 두려움을 갖지 않았듯이, 사람이 죽은 후의 시간에 대해서도 염려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는 죽음을 경험할 수 없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사람이 죽으면 죽음을 의식하거나 감지할 수 없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다만 죽는 과정은 고통이 있기에 두려울 수 있다.


우리가 존재할 때 죽음이 존재하지 않으며, 죽음이 존재할 때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When we exist, death is not; and when death exists, we are not.


에피쿠로스는 불멸을 원하는 욕망을 제거함으로써 죽음의 문제를 해결했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지 않은가? 인간은 유한하지만 무한을 꿈꾸는 존재가 아닌가. 불멸에 대한 욕망을 제거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고 한 에피쿠로스의 해결책은 참으로 간단하지만, 눈 가리고 아옹하는 격이 아닌가. 일단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해결하면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인생의 열쇠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가급적 고통을 피하는 게 중요하다. 인생에서 고난을 줄이고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 좋다. 최선의 삶은 단순한 생활 스타일로 사는 것이다.


Non fui, fui, non sum, non curo.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존재했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위에서 인용한 에피쿠로스의 명언은 출생 전에 존재하지 않을 때를 두려워하지 않듯이, 죽음 이후에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니, 죽음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신(神)을 두려워 말라


당시에 흔하던 신을 두려워하고 신을 숭배하는 전통을 깨뜨린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종교적 활동을 신을 생각하며 그들을 하나의 행복한 삶의 예시로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그리스 종교 활동에 참여했으나 신에 대해 거짓된 생각을 갖는 것은 잘못됐다고 가르쳤다. 신들을 불사의 존재이며 축복받은 존재이고, 그 이외에 그 어떤 부가적인 가치를 신에게 부과하는 것을 불경한 행위라고 보았다.


대중들은 신이 사악한 인간에게는 악을 주고, 신을 모델로 삼아 올바른 생활을 하는 인간들에게는 축복을 준다고 믿지만 에피쿠로스는 실제로 신들은 인간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가 진실로 원했던 것은 고통의 부재 - 죽음의 공포와 신의 응보로부터 자유로운 만족감과 고요함의 상태 - 였다.


여기서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신은 그리스의 다신들을 가리킨다는 것이지, 이것을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 보이지 않는 신-에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리스 신화의 세계에서 무신론을 주장한 에피쿠로스의 사상은 기독교 사상의 맥락에 바로 적용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에피쿠로스의 신관(신에 대한 사상)은 '우상타파적', '미신타파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질병의 고통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런 조언을 했다. 과거에 친구들과 즐거웠던 대화의 즐거움을 떠올리면서 질병의 고통을 분산시켜라. 그는 요로결석을 앓았는데 주전 270년에 사망하는 원인이 되었다. 요로결석으로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면서 그는 이도메네우스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나는 이 편지를 내 삶의 마지막이기도 하지만 기분 좋은 날에 쓰네. 소변을 볼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인데다가 세균성 이질까지 겹쳐 내 고통은 더 이상 심각해질 수 없을 정도네. 그렇지만 내 철학적 사색들로부터 오는 기쁨이 이 고통을 상쇄시켜준다네.


에피쿠로스의 철학상담: 단순한 삶


비밀스럽게 살라. 너 자신이 주목받게 하지 말고 삶을 살아라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행복은 방탕하고 무절제한 삶이 아니다. 오히려 절제되고 욕심을 버리는 삶이다. 부와 영광을 추구하지 말고 음식, 친구들 같은 소소한 것들을 즐기면서 이름 없이 살라고 한다. 주변 사람들과 친구들에게 친절하라. 그런 식으로 마음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가 있다. 얻을 수 없는 것을 욕심내지 마라. 저택을 살 돈이 없으면서 저택을 사려고 욕심내는 것은 좋지 않다. 도달할 수 없는 자리에 오르려고 평생을 고생하면서 허비하지 마라. 단순한 삶을 살아라. 만족하기 쉽도록 마음의 소원을 단순하게 만들라. 인생을 즐겨라. 그의 쾌락주의는 감각적인 쾌락을 물리치고 간소한 생활 속에서 영혼의 평화를 찾는 것이다.


그는 독신주의자였다. 육체적으로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기 위해 '결혼'이라는 올가미(?)에 걸려들지 않고 독신주의를 고수했다. 그는 정신적 쾌락이 육체적 쾌락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행복이란 '성취'를 높여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줄여가는 데서 생긴다고 주장했다. 출세욕과 물욕을 줄이라고 했다. 육체적 쾌락을 줄이면서 정치적 출세욕을 줄여가야만 참된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플라톤이 주장하는 정치참여와는 대조되는 행보이다. 정치참여야말로 불행의 원인으로 보았다. 당시의 혼란스러운 정세를 반영한 듯하다.


물욕을 버려라. 정치욕을 버려라. 불멸에 대한 갈망을 버림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를 떨쳐 버려라. 공적인 삶보다 작은 공동체에서 가까운 친구와 더불어 지적 교류를 하고 토론하는 삶을 즐겨라.



에피쿠로스가 미친 막대한 영향력: 토마스 제퍼슨, 칼 마르크스


에피쿠로스는 유물론과 무신론에 영향을 주었다. 그의 죽음관과 신관이 영향을 미쳤다. 쾌락주의 배경에는 확고한 유물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영혼이나 신의 존재를 확고하게 부정했다. 당시 그리스의 다신들은 인간이 현실 속에서 만들었다고 보았다. 따라서 종교행위는 인정하더라도 신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보았다. 인간이 죽으면 신도 죽는다고 보았다.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사상에도 영향을 주었다.  


에피쿠로스는 아테네에서 구입한 정원 공동체에 정기적으로 여성과 노예를 초대하여 그리스에 평등사상을 소개했다. 이러한 평등사상은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토마스 제퍼슨에게 영향을 주었다. 토마스 제퍼슨은 독립선언문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인간은 삶과 자유, 그리고 행복 추구권의 불가침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칼 마르크스도 그의 논문을 에피쿠로스로 썼다는 사실을 보면, 에피쿠로스는 간단한 인물이 아니다. 마르크스의 논문 제목은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자연철학의 차이점"이다. 이 외에도 존 로크의 경험론, 데이비드 흄의 회의주의, 뱀담의 공리주의,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실존주의 등에 영향을 주었다. 칼 마르크스의 논문 제목은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자연철학의 차이점"이다. 그는 독일 베를린의 훔볼트 대학 졸업생이다. 에피쿠로스는 원자론적 유물론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일원론자, 자연철학자, 쾌락주의자이다. 동양사상의 장자와 유사하다. 에피쿠로스는 성취지향적이기보다는 욕망을 제어하라고 했다.


쾌락주의가 추구하는 아타락시아(ataraxia)는 감정적 정신적 동요나 혼란이 없는 평정심의 상태를 말한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에 이어서 스토아학파의 금욕주의를 다루어보자. 다음 기회에 쾌락주의의 아타락시아(마음의 평정심)와 스토아학파의 아파테이아(Apatheia 부동심)의 차이를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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