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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Dec 14. 2021

키에르케고어의 저술, '왼손과 오른손'

사랑과 영혼의 철학자 13

키에르케고어, 저술의 사명


키에르케고어는 만 42세의 짧은 생애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20권의 책과 25권의 저널을 포함하여 45권의 저서를 남겼다(표재명의 연구 참고). 작품을 쓰는 방법도 본인의 이름으로 출판하지 않고, 여러 명의 익명의 저자들을 사용하는 간접전달의 방법으로 문학적, 심층심리학적, 철학적, 그리고 말년에는 직접적인 신학적 진술 등을 다양하게 사용하였기 때문에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구나, 그는 어떠한 학파형성도 거부하였고, 자신의 글들이 사상체계로 개념화되고 체계화되는 것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더욱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키에르케고어를 해석하는데 어려운 점들은 작품의 다양성, 개인의 삶과 작품들 사이의 연관성, 가명의 작품기법의 사용, 그리고 키에르케고어의 역사적인 영향력 때문이라고 마크 테일러는 말한다.



키에르케고어 저술의 6가지 특징


고광필은 키에르케고어 해석의 난해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첫째, 키에르케고어가 엄청난 상상력과 변증적인 기법들을 사용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일관성있는 관점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가명의 저자들을 사용했으며, 그 어느 작품도 키에르케고어 자신의 말로 여기지 말고, 가명의 작품들을 자신과 연관시키지 말아달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그의 실존사상을 체계적으로 서술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헤겔식의 사변철학은 논리적 체계가 가능하지만, 실존의 체계는 불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넷째, 실존의 문제에 대하여 규범적인 주장이나 명백한 결정들을 제공하지 않는 간접전달의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다섯째로, 키에르케고어는 두 가지 전달법이 있다고 보았는데, 지식의 전달은 직접전달이 가능하지만, 가능성이나 잠재성의 전달은 간접전달의 영역에 해당한다면서 둘을 별개의 것으로 보았다.


여섯째로, 키에르케고어는 논리체계보다는 개인의 경험들과 파토스적인 존재의 특성들(불안, 절망, 죄책, 죄 등)을 강조하면서, 개인의 현재의 삶에 대하여 불만을 느끼고 질적으로 새롭게 되고자 하는 ‘실존 변증법’을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대표적 가명저자의 저술 9 작품


키에르케고어에 대한 연구는 그의 방대한 일기와 묵상집을 비롯하여, 9개의 가명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9개의 가명의 작품들은 『이것이냐 저것이냐』(1843),  『두려움과 떨림』(1843), 『반복』(1843),  『불안의 개념』(1844), 『철학의 부스러기』(1844), 『인생의 제 단계들』(1845),  『철학의 부스러기의 결론적 비학문적 후서』(1846), 그리고 좀 더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죽음에 이르는 병』(1849), 『기독교 훈련』(1850)이다. 키에르케고어의 모든 작품은 실존전달(existence-communication)의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참인간이 되는 길을 보여주고자 했던 종교적 의도가 있다고 키에르케고어는 밝히고 있다.

토어스텐 볼린(Torsten Bohlin)은 이상의 가명의 작품을 두 개로 구분하였는데, 첫째 흐름을 ‘역설’을 강조하는 흐름, 둘째는 ‘개인의 경험’을 강조하는 흐름이 존재한다고 하였다. 역설의 흐름을 강조하는 작품들은 헬라사상으로부터 개념과 언어들을 사용한 작품들로서, 대표적으로 『철학적 단편』, 『철학적 단편의 비학문적 후서』, 『기독교 훈련』이 있으며, 개인의 경험을 강조하여 개인의 죄와 은총과 같은 유대-기독교 전통의 입장에서 다룬 작품들로 『불안의 개념』, 『죽음에 이르는 병』이 있다고 보았다.



저술을 세 부류로 분류하기


키르케고르는 다양한 가명의 저자들을 통하여 참 자아에 이르는 과정을 변증법적으로 보여주고자 하였다. 여기서는 가명의 작품 9개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키르케고르는 실존 삼단계를 통하여 자아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각 작품들이 어떤 실존의 자아를 다루고 있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키르케고르의 작품을 가명의 작품들, 실명의 작품들, 그리고 일기와 묵상집 등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1843년에서 1845년에 가명 저자들을 통하여 발표한 작품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것이냐 저것이냐』(1843), 『두려움과 떨림』(1843), 『반복』(1843) 등의 작품은 그의 연인 레기나 올센을 배경으로 두 사람과의 관계가 반영되어 있어 키르케고르를 자서전적-심리적으로 접근하는 학자들에 의해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철학의 부스러기』(1844),『철학의 부스러기의 결론적 비학문적 후서』(1846) 같은 작품들은 철학적 성격이 강한 작품들로써, 소크라테스와 헤겔철학에 대한 주석들이 풍성하게 담겨 있다. 그리고 『불안의 개념』(1844),  『인생의 제단계』(1846) 등은 불안과 자유, 회개와 뉘우침 등에 대한 심리학적인 통찰을 나타내 보이는 가명의 저작들이다.

두 번째로는 1846년과 1850년 사이에  출판된 키르케고르 실명의 작품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두 시대』(1846), 『천재와 사도 사이의 차이에 대하여』(1847), 『마음의 순결함』(1847), 『사랑의 역사』(1847), 『죽음에 이르는 병』(1849), 『기독교 훈련』(1850), 『기독교 왕국에 대한 공격』(1855) 등과 같은 작품이 여기에 속한다. 이 책들의 성격은 제목에서 잘 나타나듯이 종교적이며, 일반화되지도 않았고, 잘 연구되지도 않았다.

세 번째 부류는 일기, 묵상집과 기도집들이다. 『저자로서의 내 작품에 관한 관점』(1848), 『작가로서의 활동』(1851), 그리고 기도집과 방대한 일기 등이 여기에 속한다. Robert Benedetto 선생님의 분류를 사용하였다.

키르케고르의 작품들은 신정통신학과 실존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신학에 미친 영향은 신을 절대타자로 인식하도록 한 것이며, 실존철학에서는 불안과 실존을 철학적 사유의 주제로 이끌어 낸 것이다. 이상에서 정리한 가명의 저자를 통한 간접전달의 방법은 자아의 여러 형태를 드러나게 해주는 중요한 방법론적 기법이다.



키에르케고어의 왼손과 오른손


키르케고르의 저술은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에 의해서 태어났다. 아버지, 연인 레기나 올센, 코르사르 사건(주간지와의 갈등), 뮌스터 주교(덴마크 국교회를 공격함). 이 네 가지 중요한 관계와의 위기를 겪으면서 그의 사상이 형성되고 저술 내용이 결정되었다. 이미 아버지 결별은 앞에서 다루었는데, 키르케고르 청년시절-파멸의 시기, 아버지와의 화해, 아버지의 죽음, 키르케고르의 회심 체험 등은 다음 기회에 다루고, 여기서는 그의 저술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세 가지 전환점을 다루고자 한다.ㅡ


'키르케고르의 왼손과 오른손'이라는 표현이 있다. 키르케고르의 가명의 저술들을 '왼손'이라고 하고, 본명으로 저술한 종교적 신앙적 저술을 '오른손'이라고 부른다.


1841년, 연인 레기나 올센과의 파혼


첫 번째 전환점은 연인 레기나 올센(Regine Olsen, 1822~1904)과 파혼한 1841년이다.  파혼 직전에 작가의 길을 가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파혼 직후 4년 동안 많은 익명으로 쓴 저술들을 쏟아 냈다.  '실존하는 개인'과 '단독적 개인'(단독자) 개념이 키르케고르가 철학에 공헌한 대표적 사상이다. 대표적 가명의 저술들은 이렇다.


1843년,《이것이냐 저것이냐》
1843년,《두려움과 떨림》
1843년, 《반복》
1844년, 《철학의 부스러기》,  《불안의 개념》
1845년, 《인생길의 여러 단계》
1846년, 《철학의 부스러기의 결론적 비학문적 후서》


1846년, 코르사르 사건


두 번 째 전환점은 1846년이다. 키르케고르 자신의 문학적 소명이 "종결되었다"고 선언하고 작은 시골마을에 들어가 목회하려고 결심했다. 그러나 덴마크의 풍자적 주관지 '코르사르(Korsar, '해적'이란 뜻)'와 싸움이 벌어져서 방향이 틀어지게 되었다. 누가 먼저 인신공격을 하였고 도발했는지는 좀 더 연구해보겠습니다. 키르케고르에게 인신공격을 했다고 하는 책도 있고, 키르케고르가 도발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이 잡지는 키르케고르를 무자비하게 풍자하였다. 키르케고르는 절름발이에 꼽추인 기묘한 사람으로 묘사하는 일련의 풍자화를 계제하였다. 1년 간 지속된 이 싸움을 통하여 키르케고르는 목사의 길을 가려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이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받아들이고 두 번째 시리즈를 이후 7년간 발표한다. 이 작품들은 거의 본명으로 저술하기 시작했으며, 종교적인 성격을 띤다. 종교적인 목표는  그리스도를 본받으며 따르는 제자가 되는 것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1380?~1471)의 저서 《그리스도를 본받아》가 클리마쿠스의 애장서였다고 한다.


◆ 코르사르 사건 이후 주요 저술 목록
1847년, 《마음의 정결함》,《고난의 복음》강화집
1847년, 《사랑의 역사(work,행위)》
1848년, 《이방인의 염려》,《고난의 기쁨》,《기독교의 공격》,《성찬의 위로》강화집
1949년, 《들의 백합화, 공중의 새》강화집
1849년, 《죽음에 이르는 병》
1850년, 《기독교 훈련》
1851년, 《작가로서의 나의 저술에 대하여》
1851년, 《자기 시험을 위하여》강화집
1851-52년, 《스스로 판단하라!》강화집


1854년, 뮌스터 주교의 죽음


세 번째 전환은 1854년이다. 주교이자 덴마크 국교회의 수장이고 키르케고르 가문의 오랜 친구인 뮌스터(Jacob Mynster, 1775~1854)가 죽을 때, 후계자 마르텐센 교수가 그를 '진리의 증인'이라고 칭찬하자, 키르케고르는 잡지 《순간(The Instant)》을 발행하여 이를 비난하였다. '뭔스터 감독은 진리의 증인이었는가?'를 시작으로 덴마크 국교회와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1854년, 《(덴마크) 기독교 공격》
1855년, 《이제 말해야겠다, 그 말을 해야겠다》
1855년, 《제도적 기독교에 대한 그리스도의 심판》
1855년, 《순간》10호(마지막 호)
유고작 1859년, 《저자로서의 내 저술에 대한 관점》


키르케고르가 남긴 저작들은 눈부신 유산이지만, 그것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매우 복잡하다. 그는 심오하지만 까다로운 종교 사상가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을 것을 권유하는 명백히 종교적인 연구서들('오른손')의 한결같은 흐름을 발견한다. 이러한 '교화를 위한' 명상록은 그가 왼손저작이라고 부른 작품들이 없었더라면 지역적이 종교 천재의 작품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 왼손 저작은 요하네스 클리마쿠스나 요하네스 데 실렌티오 등 여러 가지 익명으로 발표된 저작들로서, 그 중에서 키르케고르의 명성을 널리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된 유럽 철학의 명저들이다. ※ 출처: 존 D. 카푸토, 임규정 역 《HOW TO READ 키르케고르》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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