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냐 저것이냐> (1843) 키에르케고어의 최초의 저술 안내서
이 책은 최초의 저술로서, 이후의 저술들의 주제들을 담고 있다. 이후의 저술들은 여기서 제기된 물음들에 발전시키거나 답을 하는 형식이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는 심미적 인생관을 대표하는 A라는 젊은이가 7개의 논문을 쓴 것과 A가 우연히 입수했다고 하는 <유혹자의 일기>를 수록하고 있다. 2부는 법관의 직업을 가진 B라는 윤리적인 사람이 편지 형식으로 쓴 2개의 논문과 B의 친구인 어떤 목사의 설교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 쓰인 대부분은 1841년 10월 베를린에 가기 전에 쓰였고, 베를린에 도착해서 3~4개의 강의를 수강하면서, 매일 어학공부를 하면서도, 2부의 두 번째 논문인 <인격형성에 있어서의 심미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의 균형>을 그 해 12월에 탈고했다. 베를린에서 겨울을 보내면서 1842년 1월에 1부에 수록된 <현대의 비극적인 것에 반영된 고대의 비극적인 것>을 탈고했다. 그는 드라마, 연극, 음악, 그리스 고전 등에 관심이 지대했었고 이를 이야기로 풀어내는 방법으로 사상을 펼쳐나간다. 당초 계획보다 빨리 4개월 반 만인 3월에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돌아와서 4월에 1부의 마지막 부분인 <유혹자의 일기>를 탈고했고, 11월에 편저자인 빅토르 예레미타의 <서문>을 탈고했다.
이 책은 서문이 있고 제1부 1장 <디아프살마타>로 시작하여 2부 <울티마툼>으로 끝난다. 서문에는 가상의 편집자인 빅토르 에레미타('승리한 은둔자'란 뜻)가 어떻게 A와 B의 글을 운 좋게 입수하게 되었는지의 경위를 설명하고, 본론의 내용들을 개략적으로 설명한다.
1부 1장 <디아프살마타(DIAPSALMATA)>는 전체 글에 대한 문제제기의 형식으로 절망적인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기쁨에 넘치는 절망의 기분을 표현한다고 하는데 이게 뭘까? 궁금해진다. <디아프살마타>에서 인생을 풍자하며 인생에는 영원한 것이란 없다고 단언한다. 따라서 A는 현실 속에서 자신이 의지할 것을 찾지 못한다. 반면 마지막 글인 2부 11장 < 울티마툼>은 설교의 형식을 빌려 인간이 가진 최고의 지혜로 신앙에 대하여, 종교적 실존에 대하여 논한다.
심미적 단계인 1부 2장 <에로스적인 것의 직접적 단계, 혹은 음악적이며 에로스적인 것>이라는 논문을 다룬다. 모차르트의 '돈 후안'의 성격 묘사가 뛰어나다. 모차르트가 돈 후안을 음악적으로 취급한 것에 대한 특별한 해석을 하고 있다.
1부 3장 <현대의 비극적인 것에 반영된 고대의 비극적인 것>에서 비극적인 것이라는 개념을 파헤친다. 비극적인 것이 발전하여 개인은 자기의식이 더욱 뚜렷해진다. 비극적인 운명도 역시 개인의 죄로 간주될 수밖에 없음을 밝힌다. 이 장에서 소포클레스의 3대 비극을 다루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안티고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오이디푸스 왕>이다. 특히 비극적인 여성 안티고네의 내면을 집중 분석하는데 한 마디로 하면 안티고네는 '여자 키에르케고어'이다. 키에르케고어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체험하고 대변하는 여성이다. 왜 그런지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펼쳐보기를 바란다.
1부 4장 <그림자 그림 影畵(SHADOWGRAPHS)>에서는 근대의 비극적인 여성들을 다루고 있다. 여성들은 스스로 유혹에 빠진 여성들이다. 이들은 자기를 유혹한 유혹자가 여전히 자기들을 사랑하는지를 생각하며 지쳐가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다.
1부 5장은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의 무덤에 묘비명이 새겨져 있다. 생의 불행과 행복 사이를 오가고 있는 심미적 인간을 그리고 있다. 가장 불행한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는 역설을 말하고 있다.
1부 6장 <첫사랑>은 프랑스 작가 스크리브의 <첫사랑> 희곡을 통하여 연극에 대하여 비평하면서 '계기'와 '영감' 등의 개념을 통해 예술가의 특성을 그리고 등장인물들을 통하여 심미적 실존을 분석한다. 이 장은 '첫사랑'이 허구라고 밝히고 있다.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첫사랑을 말하지만, 그 말을 뒷받침해줄 근거가 없다.
1부 7장 <윤작 輪作(CROP ROTATION)>에서는 '권태'라는 주제를 다룬다. 쇼펜하우어도 가장 고통스러운 것 가운데 권태를 꼽고 있다. 인생 자체가 권태이다. 이 권태를 극복하기 위한 심미적인 기술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상의 작품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권태>였는데, <윤작>이라는 글에서도 소름 끼치는 대목들이 등장한다. <윤작>에서는 최고의 향락의 방법을 제시한다. 모든 인간은 권태 속에 살며, 이 권태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분별이 필요하다. 분별력을 적절히 활용하면 권태로운 인생을 능히 즐길 만한 인생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혼의 윤작이 필요하다. 윤작은 농경법인데, 저급한 윤작이 있고 고급스러운 윤작이 있다. 가장 저급한 윤작은 농부가 땅을 바꿔가며 농사를 짓는 것과 같이, 향락의 대상을 바꿔가며 외면적인 변화를 즐기는 것이다. 돈 후안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돈 후안은 1004명의 여성을 유혹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한성을 면할 길이 없고 완전한 자기 자신의 자유를 누릴 수가 없다. 최고급 윤작은 경작지를 바꾸지 않고 동일한 경작지에 번갈아 작물을 바꿔가며 자신의 의도한 바가 성공을 거두는 것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농사법이다. 외적인 대상을 바꾸어 외적인 변화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대상을 여러 모로 가꾸어 여러 각도로 바라보며 자신의 외적인 변화를 즐기는 것이다. 자신이 엮어 놓은 결과를 즐기고 자신의 가능성을 즐기는 일이다. 여기에는 고도의 공상력이 필요하다. 구상력을 통하여 딱딱한 현실을 가능성의 세계로 바꿔 놓아야만 한다.
1부 8장 <유혹자의 일기>는 '반성적인 유혹자'의 모습을 다룬다. 키에르케고어 자신과 레기나의 실제 연애의 감정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키에르케고어는 파혼한 연인 레기나에게 자신의 심정을 은근히 알아주었으면 하고 내비치는 듯하다. <유혹자의 일기> 첫머리에서 코데리아가 A에게 보낸 세 통의 편지에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유혹자의 일기>는 1부에서 가장 분량이 길다. 가장 심미주의적인 작품이다. 심미적 인생관의 종착역이라고 볼 수 있다. 임규정이 <유혹자의 일기>를 독립적인 책으로 출판했는데 그럴만한 책이다.
다음 편에서 2부를 다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