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르 Ohr Dec 18. 2021

키에르케고어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읽혀요

'영혼의 옆구리에 쾌락이란 박차를 아무리 가해도 보람이 없다' 키에르케고

내 영혼의 옆구리에 쾌락이란 박차를 아무리 가해도...


오늘 키에르케고어의 <이것이냐 저것이냐> 1부를 읽었다. 미학에 대하여 다루고 있었다. 어쩜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지? 예전에 시도했을 때 이해할 수 없었던 내용이 조금씩 다가와서 반가웠다. 호메로스와 모차르트에 대한 찬사가 구체적으로 이어지는 미학을 다루고 있었다. 25세의 젊은이가 쾌락과 인생의 허무를 말한다.


나의 영혼은 생기가 없고 무기력하다. 영혼의 옆구리에 쾌락이라는 박차를 아무리 가해도 보람이 없다. 나의 영혼은 이제 힘을 잃었고, 왕자처럼 도약을 하지도 못한다.


키에르케고어 <이것이냐 저것이냐> 1장 '디아프살마타' 중에서



아래는 그 대목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쾌락과 인생의 행복


술도 이제는 나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지 않는다. 적게 마시면 슬프고, 많이 마시면 우울해진다. 나의 영혼은 생기가 없고 무기력하다. 영혼의 옆구리에 쾌락이라는 박차를 아무리 가해도 보람이 없다. 나의 영혼은 이제 힘을 잃었고, 왕자처럼 도약을 하지도 못한다. 나는 모든 환상을 잃었다. 한없는 쾌락의 바다로 뛰어들려고 해도 소용이 없다. 쾌락도 나를 지탱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나 자신이 나를 지탱하지 못한다. 전에는 쾌락이 나에게 눈짓만 하여도, 나는 발걸음도 가볍고 힘차게 겁도 없이 그것에 올라탔다. 


쾌락 위에 올라타고 천천히 숲속을 지나가노라면 마치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지금은 말이 땀에 흠뻑 젖어 달리고 있지만, 나에게는 조금도 움직이는 것 같지가 않다. 나는 고독하다. 물론 옛날에도 그랬다. 나는 인간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니라(그렇다면 나는 괴롭지 않다), 헤아릴 수도 없이 떼를 지어 나를 에워싸고, 도처에서 지기들을 만나게 해주고, 도처에서 쾌락의 기회를 나에게 제공해 주었던 저 행복의 요정들로부터 버림받았다. 


난폭한 청년들이 주정뱅이 주위에 모이듯이, 행복의 요정들은 나의 주위에 모여들었고, 나는 그들에게 미소로 인사하였다. 나의 영혼은 가능성을 잃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재산이나 권력이 아니라 가능성의 정열,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젊고 불타는 눈이다. 쾌락은 실망을 안겨 주지만, 가능성은 절대 그렇지가 않다. 어떤 술이 가능성처럼 그렇게도 부글거리고 향기롭고 취기를 돋울 수 있을 것인가!






작가의 이전글 14권 헤라와 아프로디테의 '마법끈(케스토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