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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Nov 28. 2021

26세, 회심 체험

사랑과 영혼의 철학자 6

아버지와 화해한 기쁨을 1838년 7월 9일의 일기에서 육신의 아버지와 화해한 것을 하나님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두 번째로 가지게 된 기쁨을 묘사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아버지의 '대속의 죽으심'


키르케고르가 1차 회심을 경험한 후 몇 개월 후, 8월 9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키르케고르는 아버지의 죽음을 대속의 죽음이라고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을 온전한 사람 만들려고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도록 자신을 바친 삶을 사셨기 때문이다.      


1838년 한 해 동안 키르케고르는 여러 가지 특별한 사건을 경험하였다. 3월 13일은 정신적인 지주였던 스승 폴 뮐러가 죽었고, 5월 19일에 키르케고르는 회심의 체험을 하게 되었고, 그리고 8월 9일 새벽 2시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다.



절망자로 살다


1835년 10월 13일, 스물두 살 때 ‘대지진의 체험’ 이후 “철학과 기독교는 양립할 수 없다"라고 결론짓고, 삶의 모순 속에서 회의를 느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나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라고 표현하며 아버지와 아버지의 종교와 결별한다.


1835년부터 1836년 6월까지 키르케고르는 3D의 방황의 삶 - 욕망(desire), 의심(doubt), 그리고 절망(despair)의 삶 -을 살았다. 돈 후안과 같이 욕망의 노예로, 의심의 화신인 파우스트처럼 기존 진리를 의심하는 회의주의자로, 목숨을 걸 만한 진리를 찾지 못한 채 방랑하는 유대인처럼 절망자로 살았다.   


1836년 5월에 창기의 품에 안겨 순결을 던졌을 때가 방황의 극치였다. 그 해 두 어 달은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렸다. 아버지와 같은 죄에 동참했으나, 마음의 위안은 없었다. 이것은 월터 라우리의 견해이다. W. 바이셀델의 견해는 다르다. 창녀 집에 갔으나 성관계는 없었고, 오히려 여성의 조롱과 비웃음을 당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836년 6월 4일 어느 연회에서 뮐러 교수(Paul Martin Møller)가 던진 한 마디가 “각성을 위한 힘찬 트럼펫”이 되었다. 또 다른 나팔은 경건주의 루터파이자 낭만주의의 시초가 되는 요한 게오르그 하만의 “깨어라, 너 잠자는 자여!”라는 문구를 통해서 울려 퍼졌다.  1836년 9월 10일, 그의 일기에 처음으로 하만을 언급한다. 하만은 키르케고르에게 종교적으로 각성케 하는 씨앗을 주었다.



아버지의 '영웅적인 고백'


키르케고르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의 인용구를 기록하며, 1838년 4월경 아버지가 자기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던 일화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나는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할 것이다.


이 인용문은 둘째 딸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결말 부분에서 아버지가 둘째 딸 코델리아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대목이다. 키르케고르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엄청난 겸손과 자비의 모습을 보여주었음을 암시하며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의 대사를 인용한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무릎이라고 꿇고 용서를 빌겠다는 대사이다. 아들의 방황이 자신의 허물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82세의 늙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겸비하여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한다. 월터 라우리는 이를 아버지의 ‘영웅적인 고백’이라고 부른다. 아버지와의 화해 직후 회심을 체험한다. 1838년, 4월 22일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그리스도께서 닫힌 문을 통하여 (내 안으로) 들어왔다.



이어서 한 달 후인 5월 19일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5월 19일 아침 10시 30분.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있었다.



1838년 5월 19일, 키르케고르는 회심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부활의 주님이 제자들이 있던 다락방에 시공을 초월하여 들어왔듯이, 주님께서 얼어붙은 그의 마음에 들어오셨다. 아버지와의 화해(4월경)에 이어서 5월 19일 오전 10시 30분 주님과의 화해를 체험한다.


1838년 7월 7일 일기에 죄인을 변화시킨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다고 기록한다.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니 놀랍기만 하다. 더 놀라운 소식은 죄인(罪人)을 성인(聖人)으로 재창조하신다는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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