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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Nov 28. 2021

내 마음의 여왕님, 레기나

사랑과 영혼의 철학자 7

뢰르담 댁에서


페터 뢰르담(Peter Rørdam)은 쇠렌의 코펜하겐 대학교 동료 학생이자 교양을 가리키는 교수이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였으나 지금은 돌아가시고 미망인 캐서린 뢰르담과 페터 그리고 네 딸 - 볼레테, 엘리자베스, 엠마, 그리고 엔겔케 -이 프레드릭스베야(Frederiksberg)에 살고 있다. 젊은이들이 모이기에 적절한 곳이다. 키르케고르도 뢰르담 댁을 방문하여 친구를 만나고 볼레테(Bolette)와 대화하곤 했다. 볼레테는 쇠렌보다 3살 어리다. 볼레테에 대한 자신의 흥미는 다만 '정신적인' 것에 불과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레기나와의 첫 만남


1837년 5월 8일, 늦은 아침 쌀쌀한 날씨에, 친구 페터 뢰르담  댁을 방문했다. 쇠렌은 24세, 볼레테는 21세다. 그날도 볼레테와 산책을 하고 싶었지만 너무 쌀쌀해서 대신에 처녀들이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는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 레기나 올센(Regine Olsen)을 처음 보았다.


레기나는 지적이고, 차분하고, 눈에 확 틔게 예뻤다. 레기나와의 첫 만남에 쇠렌은 마법(a magic spell)에 걸린 기분이었다. 쇠렌은 소녀들의 대화모임에서 긴장했고, 깊은 인상을 남기려고 위트 있는 화술로 모임을 주도했다.  키르케고르가 죽은 지 오랜 후, 레기나가 그 당시의 키르케고르에 대한 인상을 이렇게 회상한다.


키르케고르가 뜻하지 않게 방문했어요. 그는 발랄했고 지성미를 풍겼어요. 강한 인상을 줬어요. 그의 샘솟듯 하는 언변에 매료되었습니다. 우리는 놀랐습니다.


쇠렌이 레기나에게 깊은 인상을 준 만큼, 레기나도 그에게서 인상을 받았다.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이것은 그의 첫사랑이자 최후의 사랑이었다. 그것은 그의 지상 생활에서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단 두 번 마주쳤을 뿐인데 평생 흠모했던 베아트리체를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고대했던 단테처럼 쇠렌도 레기나를 천국에서 만나기를 고대했다.


쇠렌은 그녀에게 다가가지는 않았다. 한 여인을 사랑하여 청혼을 한다고는 상상도 못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제 신학교를 졸업해야만 한다. 박사학위논문도 써야 한다. 게다가 자기 집안은 신의 저주를 받아 '33세'를 못 넘기고 죽을 운명이다. 어찌 결혼을 생각할 수 있는가. 그에게 결혼은 금지되었다.


그 소녀를 잊어버리려고 공부에 매진한다. 정열적으로 철학에 매진했다. 특히 헤겔 철학에 몰두했다. 헤겔철학은 덴마크에서 인기였다. 그런데 조금씩 헤겔주의에 불만을 느꼈다. 왜냐하면 현실에 공명을 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키르케고르는 하만의 영향을 받아 보다 신앙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사상가로서의 헤겔을 계속해서 존경했다. 《후서》에서 긴 감사와 함께 따끔하게 그를 비판했다.


만일 헤겔이 그의 논리학 전체를 쓰고 나서, 서문에다 그것이 다만 '사유 실험'에 불과하다고 썼더라면, 그는 일찍이 생존했던 사상가들 중에 가장 위대한 사상가였을 것이다. 이제 그는 우스꽝스럽다. 그것은 굶주린 사람에게 요리 교과서를 읽어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첫 만남 이후에, 1838년에 쇠렌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다.  


3월 13일, 스승 폴 묄러의 죽음.
5월 5일, 아버지의 '영웅적 고백'
          : 아버지와 화해했고, 아버지를 두 번째로 얻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5월 19일, 회심의 체험.
7월 9일,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새로운 확신을 체험하다.
8월 9일, 수요일 새벽 2시. 아버지의 '대속의 죽으심.'
          :  아버지에게 많은 사랑의 빚을 졌음을 시간이 갈수록 깨닫는다.  



내 마음의 여왕님, 레기나


당신의 아름다움은 이 세상 모든 소녀의 아름다움을 다 모은 것.


스승과 아버지가 죽은 후, 키르케고르는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한 국가고시를 준비하는데 매진했으나 매우 외로웠다. 한순간도 레기나를 잊지 못했다. 1839년 2월 2일 일기에 이렇게 썼다. 여러 언어로 번역된 유명한 시이다.


내 생의 충만한 곳, 내 가슴 깊이 비밀한 곳에 숨겨진 레기나,

그대는 내 마음을 주관하는 나의 여왕!

온 사방을 둘러봐도,

모든 소녀의 얼굴에서, 오직 그대의 아름다움만 보입니다.


세상의 모든 소녀의 아름다움을 다 뽑아내 모은 결과물이

바로 그대의 아름다움입니다.

나의 텅 빈 영혼을 채울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온 세계를 떠돌아다녔습니다.


내 존재 전체가 지니고 있는 깊은 신비가 가리키는,

그곳을 찾아다녔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대가 내 곁에 가까이 있어,

나에게 나타나 내 정신을 가득 채웠습니다.


당신의 임재가 너무도 강력해서 나는 나 자신으로 변모되었고,

변모하신 예수님을 뵈옵고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고백했던 베드로의 행복을 나도 체험했습니다.


레기나 올센(1822 - 1904)  이 그림은 18살 때 이웃집 화가가 그려 주었다. 일약 유명한 그림이 되었다. 약혼한 해 1840년에 그렸다. 레기나(Regina)란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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