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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Dec 01. 2021

키에르케고어, 연애 이야기

사랑과 영혼의 철학자 8


첫 만남, 뢰르담(Rørdam) 부인의 집


1837년 5월 8일, 캐서린 뢰르담의 댁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그때 쇠렌은 24세, 레기나는 15세였다. 쇠렌은 첫눈에 반했다. 자기의 사람을 알아보는 데는 불과 5초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쇠렌은 3년까지는 자기 마음을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캐서린 뢰르담은 친구의 어머니이다. 남편 목사님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쇠렌의 친구 페터가 있고 4명의 딸이 있다. 첫째 딸이 볼레테이다. 쇠렌보다 3살 아래이고 쇠렌(24세)은 볼레테(21세)와 대화가 잘 통했다. 키에르케고어의 방대한 일기에 대한 전문가인 심영보 박사는 볼레테는 키에르케고어의 숨겨둔 애인으로 3년간 연애했으며, 볼레테와 레기나의 갈등이 레기나와의 파혼의 계기였다고 주장한다. (근거: 키에르케고어 <재판관의 책>(일기에 대한 이름) "독신으로 살 운명"이란 대목을 보라).  


코펜하겐 뢰르담 댁에서 차 마시면서 친교하는 모임이 자주 있었다. 뢰르담 댁에서 레기나 올센뿐만 아니라, 이후에 코르사르('해적선'이라는 주간지) 사건에 연루된 아론 골드슈미트를 만났다. 키르케고르 학자 스티븐 백하우스는 이때의 만남을 이렇게 기록한다. 


캐서린 뢰르담 댁의 친교모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아픔, 기쁨, 분노, 유머, 권태, 통찰, 좌절, 영적인 갱신과 실존의 혁명이 싹트게 되었는가? 캐서린 뢰르담 댁에서의 커피 친교의 결과,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sleepless nights)을 보내야 했으며, 얼마나 많은 잉크(spilled ink)가 사용되었으며, 얼마나 많은 나무가 책(trees)을 만드는 종이로 희생되어야만 했던가? - Stephen Backhouse, Kierkegaard -


키르케고르 저술의 핵심을 형성하는 네 사람은 아버지, 레기나, 코르사르 사람들, 교회 지도자 뮌스터이다. 이 가운데 두 사람 - 레기나와 골드슈미트-을 뢰르담 댁에서 만났으니, 캐서린 뢰르담 댁에서의 만남의 의미를 비중있게 다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키르케고르는 한 여인과의 만남으로 인해서 비로소 그의 사상이 탄생한 철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많은 철학자들이 여자 문제로 인하여 제 길을 벗어났는데, 키르케고르는 한 여인 때문에 그의 사명을 발견했고 그의 사상이 빚어지게 되었다. 이 만남을 주목하여 살피는 것은 키르케고르의 삶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의 저술들을 이해하는데 유익하다. 거꾸로 말해서, 그의 저술들을 이해하면 키르케고르와 레기나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키르케고르의 저술들이 실존적이라고 해서 단지 개인적인 기록에 머물지 않는다. 실존적이면서도 사상적인 면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기나가 없었더라면, 키르케고르와 그의 저술은 없었을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어떻게 레기나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레기나는 가정교사 슐레겔과 교제가 어느 정도 진행되지 않았던가? (파혼 이후에 레기나는 슐레겔과 결혼하였다.) 레기나는 어떻게 키르케고르의 갑작스럽고 특이한 청혼을 받아들일 수 있었나? 여기에는 친절한 안내와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쇠렌이 레기나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았는지를 알아보려면, 《이것이냐 저것이냐》책 안에 있는 <유혹자의 일기>를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레기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쉽게 된 일이 아니다. 레기나는 어떤 여인이었을까? 그녀의 친구가 이렇게 그를 묘사했다. "사랑스럽고 매력 있을 뿐 아니라 깊이 있고 힘 있는 영혼의 소유자"라고 했다. 말하기보다는 경청하는 편이었다. 재능 있고 지적인 숙녀였으며 기독교 신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숙녀였다. 


후대의 비평가나 독자는 이런 의문이 있을 것이다. 레기나는 쇠렌(키르케고르)과 나이도 맞지 않을뿐더러,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상대자가 못될 것이라는 의문이다. 이에 대하여 백하우스(Backhouse)는 <키르케고르 평전>에서 둘은 서로 공통점이 있고 서로 잘 맞았다고 했다. 서로 사랑에 빠진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레기나는 어렸을 때 쇠렌의 아버지(미카엘 페더슨)가 후원하는 모라비안 기도회에 참석했었다. 지금은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묵상하며 적용하는 생활을 한다. 프랑스의 잔 다르크가 그녀의 히로인이다. 자 다르크처럼 자신도 영적인 투사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다. -스티븐 백하우스, 《키르케고르》-



쇠렌과 레기나의 공통점


둘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7남매의 막내이다. 쇠렌처럼, 레기나의 아버지도 우울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우울한 기분을 이해 못 할 사람이 아니었다. 서로의 성격, 기질, 경험들이 잘 맞아 들어가는 사이였다.


쇠렌이 레기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버지가 생존해 계실 때였다. 유럽 역사로 보면, 나폴레옹인 죽은 지 10여 년이 지났을 때였다. 레기나의 아버지는 덴마크 왕국의 재무부 관리였고, 레기나는 7남매의 막내딸이었다. 


목사의 미망인 뢰르담 댁에서 사교모임이 있기 한 달 전, 1837년 4월 어느 날, 북해의 안개가 아직 가시기도 전, 어떤 처녀가 마차에서 내리려는 찰나, 쇠렌이 그 곁을 지나갔다. 그 순간 쇠렌은 그 처녀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런데 이름도 성도 모르는 처녀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한 달이 지난 5월, 북유럽은 남쪽의 봄보다 춥기는 했지만 훨씬 아름다웠다. 쇠렌이 뢰르담 댁에 들렸을 때 레기나를 처음으로 만났다. 레기나는 그 집의 딸들과 친구였던 것이다. 거기에서 레기나를 소개받고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짝을 알아보는데 5초도 안 걸린다


어느 독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키르케고르는 어떻게 레기나에게 반했나요?" 내가 대답했다. "특별한 기록은 없는데, 외모가 아니었을까요?" "한 이론에 따르면, 자기 사람을 알아보는데 불과 5초밖에 안 걸린다고 합니다."  그분의 말이 맞았음을 자료를 찾아서 확인할 수 있었다. 


"5초도 안 걸려서 내 사람임을 알아본다"는 말이 맞다. 쇠렌은 레기나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러나 몇 년간 키르케고르는 레기나를 만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녀를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838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쇠렌은 졸업 시험 준비에 몰두하고 있었다. 레기나를 만나지 않고 있는 동안에 그녀에게는 슐레겔이라는 남자친구가 생겼다. 슐레겔은 쇠렌의 친구이기도 했다. (나이가 동갑은 아니었어도 서로 지인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슐레겔은 레기나의 가정교사였다.)


쇠렌은 어떻게 레기나의 집을 방문하고 올센가(家) 가족들과 친분을 가지게 되었는지, 어떻게 이미 남자친구가 있는 레기나의 마음을 훔쳤는지 알아보자. 그것은 모름지기 유혹하는 기술이다. (《유혹자의 일기》를 읽어보라.)



유혹하는 글쓰기, 유혹하는 진리


쇠렌은 연인의 마음을 유혹하는 그 기술로, 비진리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진리로 유혹하려는 고도의 기술을 발휘했다. 진리는 모름지기 직접 전달이 아니라, 매력적이어야 한다. 진리에는 우리를 유혹하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유혹하는 능력은 어설퍼서는 안 된다. 뭔가 매력적이어야만 한다. 



1840년, 연애 이야기


1837년 5월 8일에서 12일 사이에 뢰르담 댁을 방문하여 레기나를 만난 이후로는 레기나를 만나지 않았다. 1838년 스승 폴 묄러(3월 13일)와 아버지(8월 9일)가 하늘나라로 떠나 가신 후, 신학교 졸업시험과 논문을 쓰는데 열중했다. 오로지 신학 공부에 매진하기로 했던 '커다란 삽입구' 기간에 주의를 돌린 딱 한 가지가 있다. 레기나 생각이었다. 그동안 레기나는 견신례를 받았다. 이제 그녀가 숙녀가 되었기에 거리낌 없이 청혼을 할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미 나는 그녀로 결정하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시험을 위하여 책을 읽었다. 그동안 나는 그녀의 존재를 내 존재에 칭칭 감아 놓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1838년 8월 이후, 레기나를 깊이 생각했다. 1839년 2월 2일 일기에 "그대는 내 마음을 주관하는 나의 여왕"이라는 유명한 일기를 기록했다. 1840년 여름, 정확하게는 7월 3일 최우등으로(summa cum laude) 신학교 국가고시를 통과했다. 시험을 일단락 맺고서 2주 이상의 여행(7월 19일부터 8월 6일)을 떠나려고 계획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다짜고짜 올센의 집을 방문한다. 그동안 레기나에게는 슐레겔이라는 남자친구가 생겼다. 그는 레기나의 가정교사이자 쇠렌(키르케고르)의 친구이기도 했다. 올센 집을 방문하게 된 것도 슐레겔의 소개로 가능했다. 레기나도 쇠렌과 같이 7남매가 있었고, 쇠렌과 똑같이 레기나도 7남매 중에 막내였다.


쇠렌은 철학이나 예술을 재미있고 재치 있게 말함으로써 레기나를 즐겁게 했다. 이 방문의 결과 여행을 떠나기 전에 책을 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이것이 마음을 통하게 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곧 키르케고르는 적극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올센가에 항시 출입하는 사람이 되었다.


시크한 키르케고르의 태도


그런데, 어떻게 레기나가 쇠렌의 '특이한 청혼'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더구나 가정교사를 했었던 쇠렌의 친구, 슐레겔과 더 가깝지 않았던가? 언제나 쇠렌만의 독특한 그 무엇이 있었다.

쇠렌은 시크했다. 말을 할 때에도 레기나를 상대로 말하지 않았다. 그녀의 존재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물론 마음으로는 그녀를 사랑해서 밤이 되면 레기나의 집 주변을 배회하곤 했다. 그러는 동안 레기나는 슐레겔에게서 멀어졌다. 자기의 존재를 무시하는 듯한 쇠렌에게 자기도 모르는 사리에 마음이 끌렸다. 쇠렌의 냉정한 태도에 오히려 마음이 사로잡혔다.

심지어 레기나가 자기와 슐레겔 사이를 고백했을 때에도, 조금도 태도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쇠렌은 자신이 레기나를 즐겁게 하는 것을 알게 되고 이제 자기도 결혼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20대의 우수가 그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었는데, 이제 레기나를 사랑하게 되자, 사랑의 정열이 잠시나마 우수憂愁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 연애기간에 쇠렌은 일기에 이렇게 표현했다.

우수의 안개도 이 찬란한 현실 앞에서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1840년 8월 6일, 여행에서 돌아온 쇠렌은 계속해서 레기나의 집을 방문했다. 빌려준 책에 대하여 이야기할 빌미를 마련해두었었다. 한 달간 그 집을 방문하다가 9월 8일, 마침내 레기나가 집에 홀로 있을 때, '이상한 청혼'(strange proposal)을 한다. 레기나는 돌같이 굳은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듣기만 하고 한 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문을 열고 쇠렌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쇠렌은 그녀의 아버지를 찾아간다. 1840년 9월 10일, 올센가를 방문하여 쇠렌의 청혼이 가족들이 있는 데에서 받아들여졌고, 정식으로 약혼을 했다.

키르케고르가 시크한 매력으로 레기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본인만 좋아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상대방이 마음을 열도록 하는 게 중요한 일이지 않겠는가? 키르케고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관심을 표현하는데 의도적으로 절제를 했었다. 상대방이 마음 문을 열기까지 기다렸다가 전격적으로 청혼하자, 레기나가 많이 놀라고 당황했다. 더구나, 레기나에게는 슐레겔이라는 구혼자가 있어서 청혼을 받아들이기가 망설여졌을 것이다. 프리츠 슐레겔은 기다릴 줄 알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구혼자였다.

언젠가 레기나가 쇠렌에게 이런 슐레겔과의 친분을 이야기했을 때도 쇠렌은 시크하게 말했다.


레기나, 죽을 때까지 프리츠 슐레겔에 대해서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 당신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내가 당신을 원하기 때문이오!


쇠렌은 전혀 질투하거나 시기하지 않았다. 쇠렌의 마음이 확정되었음을 표현했다. 그래서 레기나가 청혼을 받아들이고 약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연인에게 확신과 신뢰를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1840년 8월과 9월이 쇠렌(키르케고르)이 레기나에게 접근한 시기이다. 키르케고르가 청혼한 사연은 1849년 8월 24일, <그녀에 대한 내 관계>라는 표제로 기록한 대목을 그대로 소개한다.


나는 1840년 여름에 신학과 공개 시험에 통과되었다. 그리고는 그 길로 아버지의 출생지인 유틀란트를 방문하였다. 그녀를 유혹하려는 생각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책과 악보 몇 장을 빌려주면서 책의 특정 구절을 읽게 하려는 목적으로 밑줄을 쳐두었다. "그 부분을 어떻게 읽으셨어요?" 말을 걸 심산이었다. 나는 8월에 2주간의 여행에서 돌아왔다.


8월 9일에서 9월에 이르는 사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내가 그녀에게 접근한 시기이다. 9월 8일 나는 일 전체를 결정해 버릴 단단한 결심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우리는 그녀의 집 앞 길가에서 만났다. 그녀는 집에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나는 뻔뻔스럽게도 이것이야말로 바로 내가 원하고 있던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 우리는 단 둘이서 거실에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나를 위하여 피아노 소곡 한 곡을 쳐달라고 부탁했다. 여느 때에도 그녀는 피아노를 연주해주곤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악보를 들어서, 꽤 난폭하게 접고는, 그것을 피아노 위에 던지며 말했다. "아아, 음악 따위가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소. 내가 2년 동안이나 찾고 기다린 것은 바로 당신이란 말이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특이한 청혼


내가 원하는 것은 음악 연주가 아니라 바로 당신입니다!


이어지는 청혼의 방식은 매우 특이했다. 연인을 칭송하면서 사랑을 고백하는 게 아니었다. "당신을 사랑하오. 평생 당신의 손에 물을 묻히지 않을 자신이 있소." 이렇게 거창하고 자신감 있게 자신을 믿어달라고 웅변하는 게 아니었다. 쇠렌은 그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은 '마음의 여왕'인 그녀에게 자신의 우울한 사람임을 고백하고 자신을 멀리해 달라고 고백한다. 참으로 기이한 청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레기나가 반응할 차례이다. 이제 갓 숙녀가 된 그녀는 "할 말을 잃었다(struck completely speechless)."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가능한 한 빨리 그 남자 손님을 방에서 챙겨주어 내보내고 문을 꽝 닫아버렸다. 


쇠렌 자신은 지난 2년간 생각하고 기도하고 매일 일기를 써 왔으나, 18세 숙녀인 레기나 입장에서 생각하면 황당했으리라. 여자 혼자 있는 집에 남자를 들였다는 게 알려지면 레기나의 평판이 나빠질 수 있다. 레기나의 그런 반응은 당연하리라.


쇠렌은 곧바로 그녀의 아버지를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어난 모든 일을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레기나의 아버지는 쇠렌을 좋아했다. 그가 찾아오는 것도 좋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쇠렌을 사위로 맞을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타부타 말씀이 없으셨다. 청혼을 받아들이는 것은 딸 레기나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녀와 이야기할 기회를 허락해주었다. 9월 10일 오후에 오도록 허락을 받았다. 9월 10일 오후 쇠렌은 다시 그녀의 집을 찾았다.  


나는 그녀를 속이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예'라고 말했다. 나는 곧 관계를 가족 전체에까지 넓혔다. 특히 그녀의 아버지는 내 능숙한 교제술을 좋아했다.


레기나를 좋아하는 이전 가정교사 프리츠 슐레겔(Fritz Schlegel)을 가족들이 좋아했으나 쇠렌은 적극적으로 레기나에게 청혼을 했다. 어색하게도 슐레겔과의 친분관계를 레기나가 꺼냈으나 쇠렌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상관없어. 난 너를 원해!" 이렇게 그들은 가족들 앞에서 공식으로 약혼했다. 


아뿔싸! 청혼하는 순간 쇠렌은 내면적으로 본인이 과오를 저질렀음을 직감했다. 

"나는 이 무렵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고민하였다." 


1840년 9월 10일, 약혼하다

1840년, 약혼할 당시의 쇠렌은 28세(만 27세), 레기나는 19세(만 18세)였다. 9살 차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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