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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Dec 03. 2021

키에르케고어, 파혼 이야기

사랑과 영혼의 철학자 9

키르케고르는 도대체 왜 레기나와 헤어졌나? 


키르케고르가 레기나와 헤어진 것에 대하여, 부정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나쁜 사람' '그러면 안되지~~.' 그런데, 두 사람 사이를 우리가 판단한다는 게 적절하지 않다. 우선 무슨 일이 일어났나? 왜 헤어졌는가?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그 이야기를 차분히 살펴보자.  


연인을 사랑하지 않고 속이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키르케고르는 레기나와 얼마든지 살 수 있다. 결혼은 모든 비밀을 나누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키르케고르는 생각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서로 모든 것을 나누지 않고 침묵을 지킨다면 그런 결혼은 가능했을 것이지만, 키르케고르에게 사랑이란 모든 것을 나누는 관계여야만 한다. 


"사소한 이야기들을 숨기고 있는 결혼이 세상에는 허다하다.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랬더라면 그녀는 내 첩이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두 가지 과오와 자신의 방탕한 지난 과거를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면 독자는 곧바로 질문한다. "아버지의 두 가지 잘못이 그렇게도 문제가 되나요? 첫 부인이 죽기 전에 집안에서 일하는 가정부와 관계하여 첫째 아이를 낳은 일과 12살 때 너무나도 가난하고 힘들어서 양치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저주한 일이 그토록 큰 일인가요? 그럴 수도 있지 않나요? 키르케고르가 청년의 때에 방황한 것도 이해할 수 있지 않나요?" 나는 궁색하게 대답한다. "경건주의의 영향이 크지요. 하나님을 경외 사상이 오늘날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결벽하리만큼 죄에 대하여 민감했지요."


여기서 앤서니 스톰이 말하는 키르케고르가 파혼한 두 가지 이유를 들어보자. 첫째, 키르케고르의 우울증이 레기나에게 큰 부담이 되리라고 판단했다. 둘째,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하리라고 확신했다. 집안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 때문에 33세를 넘기지 못할 운명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군대에 입대하기에 '부적격자'로 판정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27세에 약혼했으니까 실제로 5년밖에 못 살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어머니, 형수, 위로 5명의 남매들이 이른 죽음을 경험하고 지금은 바로 위의 형과 자기밖에 남지 않았다. 이렇게 결혼해서는 레기나를 행복하게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편, 이 편지를 보고 쇠렌은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그러나 자신의 결정이 옳다고 여기고, "그녀를 돕기 위해서 난 더욱더 잔인해져야만 해" 이렇게 혼잣말로 말했다. "나는 이다지도 무뚝뚝한데, 레기나는 그럴수록 더욱 헌신적이다. 이 무슨 잘못된 관계란 말인가."



약혼반지를 돌려주다, 1841년 8월 11일


이렇게 탄식할수록, 처녀의 마음속에는 '여성성'이 더욱 살아났다. 레기나는 아주 행복하였다. 드디어 키르케고르는 결단하였다. 쇠렌은 모질게 마음을 품게 되었다. 레기나가 들었더라면 서운했을 것이다. 


나는 종교적인 것만 가지고 있으면, 레기나 없이도 살 수 있었고, 또 지금도 살 자신이 있다.


1841년 8월 11일에, 이런 짤막한 편지와 함께 약혼반지를 돌려보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을 잊어주십시오. 한 처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해주십시오.


이 편지와 약혼반지를 돌려받자 레기나는 저항했다. 그의 아파트를 찾아가서 문을 쾅쾅 두드렸다. 그가 외출했다는 한 사람의 말을 듣는다. 레기나는 종이와 펜을 빌려서 편지를 써놓고 돌아갔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당신의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억으로, 당신께 탄원합니다. 절 버리지 말아 주세요.


이 편지를 보고 쇠렌은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쇠렌은 너무나도 마음이 괴로워 곧 레기나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 결정을 철회했다. 본심은 아니었다. 레기나의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난 후 헤어지려고 했다. 그러나 레기나는 더욱 그를 사랑했다. 쇠렌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도 감내하려고 했다



두 달 후... 1941년 10월 11일.


8월에 이런 사건이 있은 후 두 달 동안 많은 시름을 하였다. 다시 한번 키르케고르는 헤어지기로 결심한 자신의 결정이 옳다고 여기며, "그녀를 돕기 위해서 난 더욱더 잔인해져야만 해" 이렇게 혼자서 말했다. 왜 이런 결정을 하는 것일까? 자신의 내면에 어떤 악령 같은 것이 있어서, 어느 누구도 그것을 견딜 수 없다고 보았다. 상대방이 소진되고 만다는 것이다.


내가 그녀와 결혼하였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 반년도 못 가서 그녀는 자신을 마모시켜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나에게는 어떤 악령적인 것이 있어서 - 이것은 축복이자 저주인데 -, 이것 때문에 일상적인 교제에서, 나를 보거나 나와 진정한 관계를 맺게 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차마 나를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물론 내가 보통 다닐 때에 입는 남자용 외투를 입고 있는 모습을 사람들이 볼 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러나 집에 있을 때는 내가 본질적으로 정신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월터 라우리, <키르케고르 평전> -


이 일기에 따르면, 자신의 내면에 축복이자 저주인 어떤 치열한 내면성이 있어서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다고 한다. 밖에서는 사교적이지만, 혼자 있을 때는 철저히 정신세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연인과 함께 있을 때면 상대방이 자신으로 인해서 철저히 분쇄당하게 되고, 자기도 또한 산산이 분쇄당한다고 했다. 서로의 정신세계가 다르다고 할까. 이제 막 숙녀가 된 레기나가 이런 괴팍한 사람과 사랑이 제대로 진행될 수 없었다. 



"나는 종교적 인간이다. 그런데 레기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 키르케고르 -


그녀도 모름지기 나를 산산이 분쇄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를 들어 올리느라고 항상 나 자신을 극도로 긴장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두 사람은 완전히 서로에게 긴장의 원인이었다.


레기나와 그녀의 아버지는 쇠렌의 파혼 결정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박사학위 논문을 출판하고 구술시험(1941년 9월 26일) 치를 때까지 최종 결정을 미룰 뿐이지 마음은 변함이 없다. 레기나가 자신의 아내로 행복할 수 없음을 확신하였다. 


쇠렌은 레기나가 자기를 잊게 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레기나가 마치 자기에게 속은 것처럼 만들려고 꾸며서 행동했다. 악당에게 희롱당한 것으로 만들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레기나는 여전히 그를 사랑했다. 논문 구술시험에 통과하고 2주 후인 1841년 10월 11일, 이제 막 박사가 된 키르케고르는 레기나의 집에 찾아가서 관계를 청산한다는 결정을 전달한다. "이제 양보하시오. 나를 놓아주시오. 나는 당신을 지탱할 수가 없소." 솔직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헤어지자는 소식을 전하고서 손목시계를 쳐다보면서, 절친인 에밀 뵈센(Emil Boesen)과 극장에서 약속이 있다면서 그 집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레기나의 아버지가 딸의 슬픔을 알고 쇠렌을 만나려고 극장으로 찾아갔다.


나는 그녀와 헤어져서 곧바로 극장으로 갔다. 에밀 뵈센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막이 내렸다. 내가 아래층 두 번째 파케트로 갔을 때 레기나의 아버지가 첫 번째 파케트에서 내려와서 "잠깐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를 따라서 그의 집으로 갔다. "이 일로 그 애는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 애는 완전히 절망 상태입니다." 아버지가 말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따님을 진정시키겠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이미 결정되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말했다. "나도 자존심이 센 사람입니다. 어렵게 부탁하건대 내 딸과 헤어지지 말아 주기를 부탁합니다"라고 말했다. 진실로 그는 위대했다. 그는 나를 깊이 감동시켰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의 결심을 꺾지 않았다. 이날 저녁 나는 그녀의 가족과 더불어 식사를 했다. 나는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나서 그 집을 나왔다. 


다음 날 또다시 레이나의 아버지가 쇠렌을 집까지 찾아왔다. 지난밤에 밤새도록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딸과 만나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전달했다. 쇠렌은 다시 레기나를 찾아갔다. 그때 레기나는 지난밤 잠을 못 잤다. 밤새껏 울고 있었고 슬픔에 잠겨 있었던 것이 역력하게 보였다. 그녀가 묻는다. "당신은 앞으로 결혼을 결코 안 하실 건가요?" 키르케고르는 힘들었지만 계속 연극을 하면서, 정 떨어지게 말했다. "10년 동안은 안 할 겁니다. 그동안 실컷 방탕하게 젊은 기분을 즐기다가, 10년 후에는, 회춘하기 위해서라도 예쁘고 젊은 처녀가 필요하겠죠."


레기나는 키르케고르가 보냈던, 사랑스럽게 겹겹이 접어둔 편지를 꺼내서 갈갈이 찢었다. 


레기나: (소리치듯 말했다) 더 이상 나하고 그런 못된 게임 하지 마세요. 당신은 정말 내가 싫은가요?

쇠렌 키르케고르: (정색을 하며) 당신이 계속 이렇게 행동하면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거요.

레기나: (울부짖으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것 용서해주세요.

쇠렌 키르케고르: (여기서 더 이상 연극을 할 수 없었다. 가면을 벗고서 솔직하게 말한다.) 용서를 구할 쪽은 납니다. 


둘은 헤어지게 되었다. 


레기나: (요청한다.) 내게 키스해주세요.

쇠렌이 그녀에게 키스한다. 연인의 키스는 아니었다.

레기나: 날 잊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쇠렌은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것은 진심이었다. 키르케고르의 생애와 저술이 이를 증명한다. 

(출처, Backhouse, Kierkegaard.) 


이렇게 약혼은 되돌이킬 수 없도록 깨어졌다. 코펜하겐에 소문이 가득하다. 쇠렌은 기진맥진 해졌다. 형 페터는 키르케고르 가문의 명성이 금이 가는 것을 걱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악당이 된다는 것, 되도록 최고의 악당이 된다는 것은 그녀를 자유롭게 놓아주고, 그녀가 결혼하게 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낮에는 참대에서 울면서 밤을 새웠다. 그러나 낮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행동했다.


1841년 10월 25일, 일 년정도 베를린에 체류하러 떠났다. 레기나와 헤어짐으로써 그녀와의 관계를 지속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키르케고르는 저술을 통하여 레기나와의 관계를 '반복'했다.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에 따르면, 레기나는 이후에 키르케고르로 인하여 자기가 역사적인 사람이 되었음을 알고 그 모든 고통을 보상받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키르케고르의 유언대로, 유산을 그녀에게 물려주었고, 키르케고르의 모든 저술을 --스승 폴 묄러에게 헌정한 《불안의 개념》만 빼고  모든 저술을 --아버지와 레기나에게 헌정하고 저작권을 물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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