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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Nov 27. 2021

고전읽기가 시간절약이다.


학교에서 신화의 세계, 그리스 신화, 그리스 고전 등의 과목을 수강하지 않는다면 현실적으로 그리스 고전을 꾸준히 읽기가 힘들다. 왜 그리스 고전을 읽을까? 질문이 들 것이다. 이 글에서 두서 없이 '내가 왜 그리스 고전을 읽는가' 자문자답의 형식으로 써보려고 한다.


지난 2018년 4월에 나는 홍성사에서 키르케고르의 주저  《철학의 부스러기(Philosophical Fragments)》를 다룬 책 키 《키르케고르 : 신앙의 합리성(The Reasonableness of Faith)》 을 번역출판하였다. 이후로 홍성사에서 50번째 출판기념회로 나에게 시간을 마련해주어서 키르케고르의 사상을 나누었다.


사랑하면 알게 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느 블로그에서 '신화의 세계' 《학습일기》를 보게 되었다. 강대진의 《신화의 세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등을 소개하는 내용을 살펴보게 되었다. 이 때 나는 17세기 작가이자 사상가 존 밀턴의 실낙원》과 카뮈의 작품들을 읽고 있었다. 다음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읽을 계획이었다. 존 밀턴의 《실낙원》은 서사시이며 그리스 신화의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그리스 신화에 대한 언급들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레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기로 했다.


그리스 고전의 세계는 내게 수수께끼 같았고 난공불락같은 요새였었다. 수수께끼는 풀어야 하고, 난공불락의 요새는 쳐들어가야 했지만 내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정신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리스 고전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내게는 요원한 일이었다. 2014년 7월에 일주일 정도 그리스를 둘러본 적이 있었다. 이 때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이동하는 차 안에서 탐독하며 막연한 그리스 신화의 세계를 맛보기했다. 30년 경력의 그리스 남편과 결혼한 가이드가 《오디세이아》는 그리스의 정신이며, 그리스가 가장 사랑하는 책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그 복잡한 그리스의 역사, 신화, 문학, 철학, 신학 등에 통달했느냐?"라고 내가 가이드에게 질문하자, 그 가이드가 "사랑하면 알게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어렵고 복잡한 것을 먼저 생각하면 공부할 수 없지만, '사랑하면 알게 된다.'는 그 말을 내 마음에 깊이 새겼다. '그래도 난 그리스 고전은 못 읽겠더라. 아직도 잘 모르겠더라.' 이런 마음이었다. 신화의 족보도 모르겠고, 복잡한 이름들과 지명과 이야기도 모르겠다는 것이 내 솔직한 심경이었다.



우공이산의 정신으로


그리스 고전에 대한 글쓰기가 최고의 공부 방법이다. 새로 이사한 마을이나 직장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알아간다는 생각으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기 시작했다. 24권으로 되어 있는데, 1권을 읽고 글로 정리했다. 진도는 천천히 나갔지만, 글로 써야 내용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스 고전을 공부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게 아니라, 글쓰기를 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단계로 넘어갔다. 책을 완독하려는 목표를 내려놓고, 한 권을 읽으면 글로 정리하고 표현하는 그 자체가 하루의 목표였다. 필사를 하는 사람도 있고 내용 요약이나 메모를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내용을 소개하며 내 생각이나 통찰도 조금씩 보태서 글을 쓴다. 소제목을 정하고, 인용문을 만들고, 글을 쓰기 위해서 글의 내용을 보다 정확하고 꼼꼼하게 이해하게 된다. 글쓰기는 고전을 이해하는 방식이며, 고전을 잘 이해하려면 글쓰기가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스어, 로마식 표현, 영어 등이 혼재되어 있는데, 내가 직접 글로 쓰다 보니 정리가 되었다. 영어책으로 읽는데 내가 아는 <그리스 신화>가 아니었다. 제우스는 나오지 않고 Jove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제우스는 헬라어, 유피테르는 로마식 표기, 그런데 Jove는 누구? 바로 제우스였다. 아테나/미네르바, 아프로디테/비너스/퀴프로스, 포세이돈/넵툰, 헤르메스/머큐리 등을 정리해두니, 로마식 표현이든, 그리스 표현이든 '두려움'을 떨쳐버리게 되었다.


일부러 신들의 계보, 영웅들의 족보, 신들이나 영웅들의 이름을 몇 가지로 표기(오디세우스 Odysseus = 율리시스 Ulysses = 라에르테스의 아들)하는데 그때그때 차근차근 익히면 된다. 그냥 몇 가지 표기가 있다는 것을 미리 염두에 두면 당황하거나 짜증 나거나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고전읽기는 인문학의 기초다


키르케고르의 작품들과 존 밀턴의 실낙원을 읽으면서 그리스 고전을 몰라서 많이 답답했었다. 그리스 고전은 심리학의 원자료이고, 철학의 초기 모습이기도 하고, 문학의 출발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오디세이아》는 내러티브, 이야기 전개의 훌륭한 전범(典範, example)이다. 책을 읽다 보면 그 내러티브에 빠져들어간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문학의 원형과 같다'라고 하는데, 그리스 고전이야말로 '문학의 원형'이다. 호메로스의 책을 읽고서 그리스 3대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의 작품들을 접하기 시작했는데, 분량이 길지 않고 읽을 만하다. 그들의 삶의 애환과 고통과 슬픔의 경험을 간접 체험하면서 내가 겪은 고통과 고난이 더 이상 크지 않고 작게 여겨지고 위로받는 경험도 하게 된다.


유튜브 강좌나 블로그에서 그리스 고전을 많이 소개한다. 그러나 직접 읽는 것은 다르다. 문학을 읽는 것은 지식 습득이 목적이 아니라 '경험 전달', 즉 체험이 목적이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책을 읽는다는 뜻이 아니라, 시나 문학에 나의 무의식을 노출시켜서 함께 느끼고 공감하고 반감을 경험하고 울고 웃는 그 자체가 전부다.



왜 그리스 고전을 읽는가?


그냥 읽는다. 그리고 고전 가운데 고전이기 때문에 읽는다. 산이 있어서 산을 오르듯이, 하나의 예술작품이 있어서 그것을 감상하듯이, 그리스 고전에 대한 그 어떤 가치나 이유를 차지하고서라도 그냥 읽는다. 왜냐하면, 예술 작품 그 자체가 하나의 완성품이고 끝이고 그 자체가 목적(finis)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이유도 없다. 아무런 전제 없이, 이유 없이 그리스 고전을 만나는 것이다.


Fine Art(예술), 그 자체가 '목적이고 끝(fini)'이라는 말에 상당한 위로를 받았다. 문학을 하면 밥벌이를 못한다, 이과로 가야 한다, 취직을 해야 한다, 인문학을 배워야 한다는 등의 생각- 어떤 목적이나 의무(have to)-이 만연되어 있다. 고전을 감상하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충분한 목적이다. 그 이상의 이유나 용도가 필요치 않다.


이 말을 듣고 굉장히 위로가 되었다. 왜 문학을 읽는가? 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가? 왜 고전을 읽는가? 감상 그 자체가 끝(finis)이고 목적이다. 그 외에 어떤 실용적인 목적도 있지 않다. 책을 읽고 삶이 변화되고, 무슨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예술작품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의 개요를 알고 강의를 듣는 것과 직접 그 책을 읽은 것은 천지 차이가 있다. '원문을 그대로 읽는 것은 시간 낭비이고, 간단한 개요나 1시간 요약 강의만 보자'라고 했던 꾀에 내가 속아 넘어가고 만 것이다. 그런 식의 공부는 마치 육즙이 다 빠진 질긴 스테이크를 먹는 것과 같고, 원문을 읽는 것은 육즙이 풍부하고 맛있는 최고급 스테이크를 먹는 것과 같다. 그 차이가 엄청 크다는 사실을 고전을 직접 읽으면서 체험했다.



고전은 마르지 않는 샘이다


내가 고전을 읽고자 하는 것은 겉멋을 내려는 마음도 생기기도 하지만, 인간을 알고 나를 알고, 소통하고 싶기 때문이다. 고전은 깊은 샘이다. 고전의 샘은 마르지 않는다. 어떤 책은 콜라나 사이다 같기는 하지만 마르지 않는 샘물은 아니다. 그러나 고전은 '읽어야 하는데 아무도 안 읽는, 읽고 싶은데 함부로 읽을 수 없는 책이며, 목마름을 해갈하게 해주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일단 고전의 묘미를 알게 되면 마르지 않는 샘처럼, 계속해서 풍부하게 물이 솟아오르는 이 원천(源泉)을 찾게 된다.


집에 있는 정수기 물을 마셔도 되지만, 나는 자꾸 산골 깊은 옹달샘, 마르지 않고 흐르는 그 옹달샘을 찾아 오르는 수고를 하게 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에 올라 약수물 한 모금 마시고 오는 사람처럼, 나는 틈만 나면 고전의 샘을 찾아 물을 마신다. 자꾸 그 샘을 찾게 되는 걸 어떡하나. 독서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고 경험을 하게 되고 글도 쓰고 몰입도 경험하고 그렇다. 고전읽기는 의미가 있건 없건 간에, 아침 일찍 산에 올라 옹달샘의 물을 마시고 내려오는 그런 습관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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