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의 본명은 박금이이다. 원주 박경리 문학공원은 25년간의 <토지>를 완결한 장소이다. <토지>가 드라마로 방영되는 계약금으로 원주에 있는 장교의 집을 구입해서 집터와 텃밭이 있었다. 박경리는 노동과 글쓰기를 병행했다. 자유, 즉 그가 말하는 절대고독을 노동과 글쓰기로 버텨냈다.
박경리는 고추농사를 손주 짓고 고추를 방에 말리는 농사를 했다. 매일 아침 노동은 집필의 연장이었다. 박경리는 토지를 통하여 생명경외 사상이 있었고 환경운동가 였다. 쓰레기를 집 밖으로 내지 않으려고 결심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쓰레기를 처리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인간이 있는 곳에 쓰레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데, 쓰레기를 집 밖으로 내지 않으려 하며 최대한 재활용을 하려고 애쓰던 토지를 사랑하고 생명을 사랑하던 박경리의 정신이 전달된다.
박경리 문학공원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소는 박경리 생가의 집필실이다. 거실의 소파에 앉아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고 지인들과 담소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거실, 부엌, 게스트룸 등이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본 곳이 집필실이다. 그곳은 거룩한 곳이다. 하나의 예배장소와 같다. 사랑하는 외손주 원보도 들여보내지 않고,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는 은밀한 장소였다. 작가의 거룩하고 존엄한 정신이 가득 차 있었다.
수 십 년 써온 방석의 비단덮개가 사방으로 헤어져 있었다. 앉은 곳에서 왼쪽과 정면으로 정원이 보였다. 책상 위에는 애용하던 커피(잔)과 담배, 그리고 몽블랑 만년필과 원고지가 놓여 있었다. 작가의 삶에서 가장 사치했던 것이 만년필이다. '어휴, 어떻게 앉아서 4만여 장의 <토지> 원고를 썼지? 허리 아프지 않나?'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극심한 고통을 견디고 인내하지 않았나 싶다.
두꺼운 국어대사전이 책상 왼쪽에 펼쳐져 있었다. 3권의 국어사전을 썼다고 하는데, 단어 하나하나를 확인하며 써 내려갔다. 한번 쓴 작품은 '다시는 읽어보지 않았다'라고 한다. 그만큼 최선을 다했고, 작품에 심혈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