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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Jul 02. 2022

중세의 붕괴를 가져온 보편논쟁: 신앙과 이성의 분리

실재론과 유명론


보편논쟁: 실재론과 유명론


중세의 스콜라 철학의 핵심은 보편 논쟁이다. '개별자가 먼저냐, 보편자가 먼저냐?' 다시 말해서, '플라톤이 옳으냐, 아리스토텔레스가 옳으냐?' 하는 문제이다. 신앙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은 '초월이냐, 내재이냐?'하는 물음이다. 플라톤주의는 초월을 강조하고,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내재를 강조하기에, 플라톤에 기초한 기독교 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에 기초한 기독교 신학의 논쟁이 중세에 불가피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슬람권에 가서 꽃을 피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유럽에 다시 들와서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유명론이란, 모든 것이 이름뿐이라는 것이다. 나무, 교회, 절대자 이런 보편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사과나무, 삼성교회, 자연 속에 내재된 신의 개별적 형상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유명론은 실재론을 거부하고 보편은 이름뿐이며, 개체만 있다고 주장한다.


실재론이란? 보편이 실재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이 실재론이다. 유명론이란? 보편은 실재하지 않고 그저 이름일 뿐이라는 이론이다. 이 중간에 온건실재론이 있는데 이 사상은 보편이 개체 안에 내재해 있는 것으로 아리스토텔레스적 실재론이라고도 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각각 보편을 부정하지 않았다. 플라톤은 일자(신)가 세상에 '분유(分有)'하는 것으로 보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자(신)가 세상에 '내재'하는 것으로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일원론은 실재론과 유명론의 요소를 다 내포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적 실재론자이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실재론자이다.


그런데 실재론은 결정론으로 귀결되는 문제가 있었다. 신이 선을 선택하여 만물이 펼쳐지는데 거기에는 악이나 인간의 자유가 존재할 여지가 없는 결정론이라는 헛점이 드러난다. 그래서 둔스 스코투스는 신의 자유와 의지를 강조함으로써 실재론이 담고 있는 결정론을 반대했다. "신이 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선택한 것이 선이다" 라고 말한다. 여기에 유명론적인 요소가 담겨져 있다. 신의 자유와 의지를 강조하는 한편, 보편보다 개체가 더 중요하게 된다.



왜 유명론이 등장했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주의에 입각한 신학은 모든 것이 결정된 듯한 '결정론'으로 흘러서, 신의 은총이나 신의 자유가 설자리를 잃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이 문제에 반대하여, 신의 자유와 신의 의지를 강조하였고 인간도 자유의지를 가지고 타락하든지 신의 은총을 선택하든지를 선택할 수 있다고 둔스 스코투스가 주장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주지주의적 결정론'(이성의 강조)이라고 한다면, 이 결정론이 가지는 한계를 비판하고 등장한 것이 둔스 스코투스의 '주의주의적 비결정론'(의지의 강조)이다.


유명론을 본격적으로 주장한 윌리엄 오캄은 "신앙을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신앙과 이성의 결별을 암시했다. 신앙은 교회로, 이성은 학교로 가도록 함으로써 중세 스콜라 철학이 붕괴를 맞이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유명론이 중세 철학에 틈새가 되었다는 말은, 어떤 사람에게는 중세 철학이 사변적이고 머리만 아프게 하는 것일 뿐이지 마음에 와닿는 내용이 아닐 수 있다는 지적을 할만한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중세 스콜라 철학이 당시의 맥락에서 보자면 역동적이고 의미있는 신학이었지만, 그 철학적 배경을 모른다면 '머리만 아프게 하는' 무의미한 논쟁처럼 보일 수 있다.



유명론의 등장과 중세의 붕괴


보편을 주장하는 실재론(플라톤주의)은 삼위일체 신관, 원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설명하는 바탕이 된다. 그러나 실재론이 신의 자유나 신의 의지를 간과하고 결정론으로 흐르게 되었기 때문에, 둔스 스코투스는 신의 은총과 신의 의지를 강조하게 되는 유명론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유명론이 강조됨으로 말미암아 이성과 신앙의 조화는 깨어지게 되었고, 실재론을 바탕으로 하는 삼위일체, 원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등에 대한 해석에 문제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 이후 기독교 신학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두고 보도록 하자.



오캄의 이중진리설: 신앙과 이성의 문제


둔스 스코투스의 입장을 주의주의적 비결정론이라고 하는데, 오직 신의 의지와 자유를 강조했었는데 결과적으로 유명론을 주장하게 되었다. 윌리엄의 오캄이야말로 유명론자이다. 오캄은 이중진리설(Double-Truth Theory)을 주장했다. 철학과 신학을 분리하고, 신앙과 이성을 분리하고, 학교와 교회를 분리해서, 결국 중세 스콜라 철학의 붕괴를 가져왔다. 이것이 이중진리설이다. 신앙과 이성을 분리하고 초자연적 진리관을 주장한다. '알려고 하지 마! 그냥 믿으면 돼!'


중세에는 보편주의였으나 유명론 이후에 개체주의로 흐르게 되었고, 중세에는 신앙과 이성을 종합했는데 유명론 이후에 신앙과 이성을 분리하게 되었다. 중세가 객관주의와 주지주의(이성) 였다면, 유명론 이후는 주관주의와 주의주의(신앙)가 되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윌리엄 오캄의 제자였다. 보편 가톨릭교회보다 개별적인 교회를 강조하여 성경에 기반한 종교개혁을 주창한 것이다. 오캄의 면도날이란, '불필요한 (보편)실재를 덧붙이지 말라!"는 것이다.



보편논쟁: 삼위일체론 기독론 교회론


교황권의 문제

좌와 구원의 문제

삼위일체론에 대하여

예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하여


교리를 교육한다는 것은 실재론의 바탕에 있을 때 유효하다. 실재론은 기독론, 삼위일체론, 구원론, 원죄론, 교회론 등을 설명하는데 기반이 되었다. 아담의 죄가 인류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원죄론은 아담이라는 보편적 인물을 필요로 한다.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다는 구원의 사건도 예수님의 대속의 구원을 보편적인 것으로 규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날 교리교육이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이유는 이런 유명론적인 사상이 배경이 된다. 보편실재ㅡ절대적 진리ㅡ를 믿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로마교황청은 그 권력을 강조하기 위하여 보편교회로서의 교황청을 강조했지만, 보편은 이름뿐이며 개체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유명론에 따르면 개별교회(지역교회)의 독립성을 강조하게되고 이는 종교개혁으로 이어지게된다.

중세 시대 로마 교황청의 권력은 막강했습니다. 그러나 상업이 발달하면서 지방 소도시의 교회들이 점차 점차 성장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우리가 왜 교황청을 이렇게까지 떠받들어야 하나?' '하나님은 모든 교회에 계신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을 합니다. 교황청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죠. 그래서 이런 논리를 펼칩니다. '하나님은 모든 교회에 계시지만 그 본체는 오직 로마 교황청에만 존재하신다' '로마 교황청이야말로 보편 교회다' 이렇게 말해야 교황청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죠.


보편논쟁은 삼위일체론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삼위일체란? 그 핵심이 기독론인데, 예수가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 핵심이다. 성부, 성자, 성령이 각각 세 위격을 가진 한 분 하나님이라는 신앙고백이다. 이러한 삼위일체론은 오리겐을 비롯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입장이었고, 동방교회에서는 무리없이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안디옥 학파와 서구 전통에서는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였으며, 삼위일체론을 자칫 삼신론이라는 이단사상에 빠질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것은 유명론적인 사고 때문인데,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실재론적인 사고보다도 예수의 인성, 역사적 예수를 강조하는 유명론적인 입장이 강하기 때문이다.


천주교는 실재론적인 입장이어서인지 유명론의 영향을 받으며 탄생한 개신교보다는 덜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왜냐하면 예수를 강조하는 것 자체가 개체를 강조하는 유명론적인 사고이기 때문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가톨릭의 보편적 교회주의에 저항하여 유명론적인 사상의 도움을 받아서 일어난 운동이었다.



기독교 교리와 보편자의 중요성


1. 하나님의 존재: 신은 영원한 존재로서 변하지 않는 존재이며 완전자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신은 개별자보다는 보편자의 성질을 지닌다. 그렇다면 영원한 보편자의 실재성을 부인하고서는 영원한 신의 존재를 긍정할 수 없고, 보편자의 초월성을 부인하고서는 신의 초월성을 긍정할 수 없다. 더욱이 보편자를 인간 속의 주관적 관념으로 환원해서는 신의 객관적 실재성을 주장할 수 없게 된다.


2. 교회의 실재성: 현실적으로 교회는 하나님의 몸이요 순결의 원천이다. 교회는 변화하는 회중들을 넘어서는 절대적 실재성을 지닌 것이며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개별자의 성질을 지닌 것이 아니라 보편자의 성질을 지닌 것이다. 따라서 보편자의 실재성을 의심하는 일은 교회의 실재성을 부인하는 일이다.


3. 원죄 교리: 아담(인간)의 원죄로 모든 인간들(개별자)은 죄인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위하여 성육신(incarnation)하셨고 십자가에서 죄인을 위하여 대속(atonement)의 죽음을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ressurrection)하였다. 대표성의 원리에 따라서 아담을 통하여 죄가 들어오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인 새 생명이 들어왔다.

아담 안에서 모든 인간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인간이 삶을 얻으리라.

보편을 주장하는 실재론(플라톤주의)은 삼위일체 신관, 원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등에 대한 해석에 문제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 이후 기독교 신학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두고 보도록 하자.



보편논쟁의 과제


필요 없는 전제는 삭제해야 한다는 오캄의 면도날로 유명한 오캄(William of Ockham, 1285? ~ 1349)은 보편자는 없으며 개별 개체가 실재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초월적 신을 인정하지 않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중세의 신학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오캄은 이단(異端)으로 지목되었다. 하지만 오캄의 이론은 중세의 기독교신학을 붕괴시킨 이론인 한편 근대의 유물론과 경험론을 발전시키는 출발점이었다. 이처럼 개별 개체를 중시하는 사상은 데카르트와 칸트로 이어졌으며 주체의 문제로 확장되어 근대철학의 토대를 형성했다.


유명론이 종교개혁에 기여하고 개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신의 자유와 주권을 강조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신앙주의로 흘러 이성과 신앙이 분리되어 형이상학적 보편이 무너지고 실재론적 철학이 무너지게 된 것은 숙제로 남는다. 종교개혁자 루터가 '오직 믿음으로(솔라 피데, 이신칭의)'를 주창했는데 이성을 포기한 것인가? 이는 개신교가 풀어야할 숙제로 남는다.


유명론으로 중세 스콜라 철학이 붕괴되고 신앙과 이성이 분리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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