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8환 3낭, 사기지옥 - 성직매매
세 번째 시기죄는 성직매매이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돈을 빼앗고 재산을 축적하며 하나님을 왜곡하는 행위이다. 머리가 거꾸로 구덩이에 박히는 형벌은 하나님을 완전히 왜곡했음을 암시한다.
두 시인은 사기지옥(제8환)에서 여자를 버린 자(이아손)나 뚜쟁이와 포주가 벌을 받고 있는 1낭(pouch)과 아첨군들이 있는 2낭을 지나서 3낭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곳의 죄인들은 생전에 성직을 매매한 이익을 챙긴 자들이 있는 곳이다. 성직매매를 영어로 '시모니(Simmony)라고 하는데, 이는 성경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시몬(Simon Magus)이 돈을 주고 성령의 권위를 사려고 했던 사마리아 마법사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오 마술사 시몬이여! 오 불쌍한 시몬의 추종자들이여! 마땅히 거룩한 신부(the brides)가 되어야 할 하나님의 성물(聖物)을 너희는 탐욕스러운 본성을 억누르지 못하고 금과 은으로 팔아먹고 말았다. 이제 이 세 번째 볼제(pouch)에 갇히고 너희에게 *나팔이 울려야 온당하리라."
이시연 옮김. *중세 법정에서는 재판관이 판결을 공포하기 전에 나팔을 불어 사람들을 모았다.
죄인들은 뜨거운 구덩이 속에 머리가 거꾸로 처박힌 채 발만 겨우 구덩이 밖으로 내놓고 있는데, 발에는 뜨거운 불이 타고 있어 고통을 당한다. 이 불꽃의 강도는 그가 생전에 지었던 죄에 비례하여 뜨거워진다. 나중에 그 죄인의 자리를 대신 채울 죄인이 도착하면, 원래 있던 죄인은 뜨거운 땅 속으로 파묻혀 발조차도 땅 위로 내놓지 못하고 고통을 받게 된다.
사기지옥의 4낭에 유독 다른 이들보다 더 심하게 형벌을 받는 죄인이 있었다. 단테는 그가 누구인지를 스승에게 묻는다. "선생님, 저자는 누구인데 다른 자들보다 더 발버둥을 치며 고통스러워하고 또 더 시뻘건 불꽃이 붙어 있는 겁니까?" 스승이 단테를 그 죄인의 이름과 죄목을 알게 하리고 어느 발버둥 치며 고통스러워하는 한 영혼이 거꾸로 처박힌 구덩이로 다가간다. 단테는 그에게 묻는다. "말뚝처럼 거꾸로 박혀 있는 사악한 영혼이여! 가능하다면 당신에 대해 말해 주시오!"
단테는 마치 신부가 죄인의 고해성사를 받는 듯이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죄인이 이렇게 외친다. "보니파스 8세, 당신이 벌써 지옥에 왔느냐? 너는 그렇게 빨리 탐욕을 다 채웠느냐? 너는 교회를 속이고 마침내 성직을 팔아넘기기까지 했느냐?"
"나는 암곰의 아들이었소." 그 죄인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단테가 유소년 시절에 교황직을 맡았던 교황 니콜라스 3세(1225-1280년)였다. 그는 이탈리아의 오르시니(Orsini) 가문에서 태어났고, 오르시니 가문은 암곰(she-bear)을 가문의 문장으로 사용했다.
보니파스 8세(Boniface VIII)와 클레멘스 5세(Clement V)가 이어서 올 것이라고 예언한다. 니콜라스 3세는 1280년에 죽었으므로 1300년인 현재 20년 동안 그곳에 있는 것이다. 반면, 1303년에 죽은 보니파스 8세는 1314년에 다음 죄인(클레멘스 5세)이 죽어서 올 때까지 11년을 있게 된다.
보니파스 8세는 1294년부터 1303년까지의 교황이었다. 그는 피렌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급진파 흑당을 지원했다. 그 결과 단테가 몸담고 있던 백당이 쫓겨나게 되었고, 단테는 자신이 망명의 길에 오르게 된 것이 모두 보니파스 8세 교황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클레멘스 5세는 이탈리아에서 보았을 때 서쪽인 프랑스 가스코뉴 출신의 교황이다. 그는 교황이 되는 대가로 프랑스 왕 필리프 4세와 수많은 협약을 비밀리에 맺었다. 그는 필리프 4세의 사주를 받아 교황청을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옮겨 ‘아비뇽 유수(幽囚)’라고 불리는 가톨릭 역사의 오점을 남겼다.
단테는 로마 황제 콘스탄틴(274-337년)이 가톨릭교도로 개종하여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기면서 서로마 제국의 통치권을 당대 교황인 실베스터 1세와 그의 후임자들에게 증여했던 것을 언급하며 개종 자체가 나쁘지는 않지만 성직자가 돈을 탐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교황이 이러한 통치권을 받지 말았어야 한다고 비난한다(연옥편 32, 33곡에도 등장. <신곡>에서 콘스탄틴 황제는 천국에 가 있음.).
"아, 콘스탄티누스여! 그대의 개종이 아니라 첫 부유한 아버지(33대 교황 실베스테르 1세를 가리킴) 에게 바친 돈이 얼마나 많은 악의 어머니가 되었더란 말이냐.”
로마의 황제 콘스탄틴은 312년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여 330년에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겼다. 그것은 당시의 교황 실베스테르 1세가 그의 나병(leprosy)을 고쳐 주자 그 대가로 로마 제국의 서부 지역에 대한 관할권을 넘겨준 것이었다. 소위 말하는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서’는 15세기에 로렌초 발라에 의해 위조된 것으로 밝혀졌으나 중세 사람들은 진실로 믿었다. 단테는 이 과정에서 교회의 부정부패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스승은 나의 진심 어린 말이 만족스러웠는지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두 팔로 나를 꼭 껴안고
가슴 위로 힘껏 들어 올리시더니
내려왔던 길을 되돌아가셨다.
나를 안고서도 지친 내색 없이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둔덕을 연결하는
아치형 다리 맨 위까지 올라가셨다.
그리고 산양들도 건너기 어려워할 듯한
거칠고 가파른 돌다리 위에
짐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그곳에서는 또 다른 볼제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단테가 교회 개혁에 지대한 관심이 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성직을 매매하여 사람들에게 돈을 받아서 재산을 축적한 당시 교회의 잘못에 대하여 단테가 강하게 질책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호의는 인간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직매매는 사기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심각한 사기행위이며 하나님을 잘못 표상하는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제자가 되는데 돈을 받으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단테는 교회의 탐욕에 대하여 분개하자, 스승은 죄와 죄인에 대하여 분노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 단테를 칭찬한다. 베르길리우스는 흥분한 단테를 말리는 듯 들고서 그를 데리고 사기지옥의 다음 구덩이인 5낭(예언자와 점쟁이)으로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