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노모와 함께 있어서 행복하다. 중학교 1학년 때 밥솥 하나 받고 자취를 시작한 후 어머니와 생활한 것이 올해가 처음이다. 다시는 어머니와 생활하리라고 상상해 보지 못했다. 어머니가 옆에 있는 게 좋다.
치매 어머니는 변실금이 심해서 이른 아침에 난리를 치른다. 당황스럽고 충격적이다. 그래도 갓난 아기를 대하듯 의연하고 태연하게 대하려고 노력중이다. 지금까지는 아내가 어머니 뒤치다꺼리를 전담하기를 자처했다. 아들이 개입하면 일관성이 없기 때문에 관계에 혼란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나는 둘 사이에 어떤 실랑이가 오가도 간섭하지 않았다. 아내가 도움을 요청할 때만 돕는다. 어머니 편을 드는 법은 없다. '어머니, 며느리가 하자는 대로 잘 따라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아내의 제안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온 것은 올 초였다. 어머니가 고향에서 전화할 때 반복해서 "80이 넘으니까 입맛이 없다"고 하셨는데 지금 알고 보니 치매로 요리하는 법을 잊어버려서 제대로 밥을 못 먹는다는 뜻이다. 어머니를 모셔온 이후로 '입맛 없다'라는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돈을 주시면서 "간식 좀 사다 놔라."는 말씀으로 바뀌었다.
어머니로부터 고문당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어머니가 고향에 있을 때, 우리 부부가 방문하면 새벽마다 어머니가 우리를 못 자게 괴롭혔다. 이제야 그 모든 정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새벽 2~3시에 일어나시고, 4~5시쯤에 냉장고 문을 열었다닫았다를 반복했다. 집이 원룸 구조여서 방안에 부엌이 있었는데, 냉장고를 열었다닫았다 하면 반찬 냄새가 나서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었다. 난 후각에 매우 예민한 사람이다. 게다가 종이와 비닐봉지를 만지작만지작하면서 빠시락빠시락 소리를 내는데 귀를 막고 잠을 자려고 하는 아내와 나는 너무도 괴로웠다. 고문을 당하는 그런 느낌이다. 요리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냉장고 문을 열었다닫았다 하시고, 종이와 비닐류를 바스락바스락 만지작거리며 소리를 내서 미칠 지경이었다. 한 번은 아침 6시에 어머니가 홀로 계시는 고향집을 나와서 우리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지금 이해되는 어머니의 이상했던 행동
지금 생각해 보니 치매에 걸렸기 때문에 그랬는데, 어머니는 아들 내외가 왔으니 뭔가 음식을 해서 대접하려는 습관을 따라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하고, 비닐이나 그릇을 만지작 만지작 하면서 거슬리는 소리를 냈는데, 정작 무엇을 어떻게 요리할 줄을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고문 같았던 이상한 행동도 치매 어머니가 아들 내외를 대접하고 싶은 본심이었다고 생각하니 이해가 된다. 지금은 어머니가 아기가 되었다. 아내가 대변 실수를 하여 냄새나는 어머니 옷도 벗기고 씻기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는 일도 하는데, 도무지 감당할 수없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내가 어머니를 씻겨드린다. 그저 어린아이처럼 대한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여보, 내가 잘 할게."
치매 어머니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어머니 사랑합니다." "어머니 함께해서 감사합니다."이다. 실제로 열받을 때는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나는 어머니가 함께 하셔서 좋다. 아내와 내가 감당할 수 없기에 우리 부부는 기도하면서, 주님의 은혜와 자비를 간구하면서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종종 지옥까지 내려가지만, 잠시 참으면 이 또한 지나간다.
가장 황당한 것은 어머니가 변기 물에 씻고 빨래하는 모습이다.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면서 봐야 한다. 어머니가 오시니 하루를 부지런하게 산다. 수고한 아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여보, 고마워. 내가 잘 할게," 이것이다. 고향집에서 어머니가 우리를 고문하는 것 같았던 이른 아침에 벌어지는 일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글을 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