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과 통화하면서 치매 어머니 이야기를 했다. 전화기를 켜놓고 자연스레 이야기를 들으면서 글을 쓴 다음에 맞춤법 검사를 하고 글을 올렸다. 크게 신경 쓴 글은 아니었고, 치매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깨달은 바를 올렸다. 그런데 조회수 알람에 '1000명 돌파'라고 떴다. 숫자에 연연하지 않으려는 마음과는 달리, '이게 뭐지?' 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1시간마다 1000회씩 증가하더니 첫째 날 5000회, 둘째 날 6000회를 돌파해서 10000회가 돌파한 후에는 더 이상 알람이 오지 않았다. 치매 노인이 사회적인 이슈인 것이 틀림없다. 알고 보니 다음의 브런치 란에 소개되어서 조회수가 늘어났다.
작가에게 최고의 선물은 독자이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다니 글을 잘 쓰길 잘했다. 삶에 활력이 된다. 글을 잘 쓰려면 삶을 잘 살고, 깨어 있어야겠다. 치매 어머니를 모시는 일, 아니 아내가 말한 대로 '모시는 게 아니라 같이 사는 일'이니 여성 독자는 예민할 수 밖에 없다. '아들인 당신은 효자가 되겠지만, 며느리는 무슨 죄인이냐? 왜 여자의 희생을 강요하느냐?'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제야 알게 된 치매 어머니의 이상한 행동>을 쓴 이유는 10대 초반까지 밖에 함께 하지 못했던 어머니와 뜻밖에 함께 살게 되어 기쁘다든지, 내가 효자라든지, 치매에 걸린 가족과 함께 사는 비법이 있다는지 하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었다. 단지 치매 어머니의 이상한 행동을 그땐 너무 괴롭고 힘들었는데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신기하고 함께 나누고 싶었다.
글을 읽고서 아내를 걱정하는 댓글이 올라왔다. 아내에게도 그 상황을 이야기해주었다. 걱정하는 댓글의 내용은 치매에 걸린 분은 개인이 감당할 수 없으니 국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먼저는 치매 검사를 해서 요양등급을 받아야 한다. 그러면 집에 있을 때 도우미를 지원해주든지, 아니면 주간보호센터, 소위 말해서 '노치원'에 보내드릴 수가 있다. 핵심은 '치매에 걸린 분은 개인이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는다. 요양보호사는 치매 환자를 이해할 수 있는 훈련을 받지만, 가족은 치매인 줄 알면서도 약이 오르고, 열받고,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한계를 경험한다. 우리도 그런 한계를 몇 번 넘었다.
어머니는 지원이 제일 낮은 '인지 등급'을 받았었다. 3개월 정도 만에 재심사를 요청할 수 있어서 급히 재심사를 요청했다. 내가 직접 하면 복잡한데, 주간보호센터에서 신청해주었다. 주간보호센터는 친절하고 배려가 있으며, 치매 노인을 정성껏 대하는 것에 놀랐다. 차로 아침에 데려가고 점심과 저녁을 먹게 하고 저녁엔 차로 데려다준다. 우리로서는 숨통이 트인다. 아무리 돈을 낸다고 하지만, 주간보호센터와 직원을 잘 만났다. 거듭 감사하고, 든든한 지원군이라는 마음이 든다.
아는 형제가 아들만 4명이다. 아버지는 7년 전에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고향에서 잘 생활하셨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독재자 스타일이어서 어머니는 아버지가 남겨준 연금으로 돈도 사용하는 자유를 느끼고 잘 살고 계셨다. 치매가 시작되면서 요리도 점점 못하시고, 결혼 식장에 다녀온 당일의 일도 기억하지 못하시는가 하면, 무엇보다 전화를 자주 하신다. 어머니는 일부러 전화하는 일은 별로 없으셨었다. 전화를 하시는 빈도가 잦아진 것도 느꼈지만, 새벽 2~3시에 전화를 받기는 처음이었다.
어머니는 건강할 때 우리 집을 오시라고 해도 오시지 않았다. 집에 키우는 개가 있었기 때문에 그 핑계를 대셨다. 아내는 '어머니 저렇게 놔두면 우리가 죽이는 거야. 난 도무지 저렇게 놔둘 수 없어. 모셔와야 해.'라고 말해서 어머니를 모셔왔다. 신혼 때부터 아내는 부모가 힘이 없으면 모시자는 말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막상 치매 어머니와 함께 살아보니, 우리의 능력밖에 었다. 별 일은 아니지만, 생활 방식이 달랐다.
어머니를 모셔오는 대신에 그 대신 '우리 집에서는 아내의 생활 규칙을 따른다'는 원칙을 정했다. 그래야 함께 살 수 있다. 아내는 어머니에게 살림을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수건이나 옷가지도 아내가 배급을 주듯이 관리한다. 그렇지 않으면, 청결의 문제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만일 아내가 불편해지고, 감당할 수 없을 때는 더 이상 함께 살 수가 없다.
효를 행하는 사람이 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지금은 함께 공존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공존하는 지혜가 절박하다. 어느 누가 희생당해서는 안된다. 다 만족스러워야 하고, 각자가 희생을 분담해야 한다. 어머니와 함께 사는 데는 몇 가지 복이 있다. 그 점은 나의 주관적인 것이어서 비밀로 해두어야겠다. 이 글에서는 조회수 폭발 사건과 치매 어머니를 모시는 데 있어서 며느리가 희생되어서는 안 되는 의견과 치매는 검사를 받고 국가의 도움을 최대한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밝힌다.
어머니의 주소를 나에게로 옮기고 의료보험도 합치니까 어머니가 주간보호센터에 부담해야 할 비용이 거의 절반으로 경감되었다. 비용 절감을 위해서 첫째, 요양등급을 재신청해서 '4등급'으로 받았다. 이는 2단계나 더 높아진 수치이다. 둘째, 의료보험을 나에게로 옮겨왔고 의료보험비가 5인 이하일 경우 43,300원 이하로 나오면 치매 어머니가 받는 혜택이 높아진다. 그렇게 해서 비용을 경감하게 되었다. 모든 상황에서 길을 찾으면 더 좋은 길이 있고, 그 길이 막혔을 때는 또 다른 길을 모색하며 나가고 있다. 치매 노인과 함께 사는 모든 분에게 사랑이신 하나님의 사랑의 샘이 늘 솟아 나와 복되고 형통하시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