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칼뱅(Jean Calvin)은 그의 대표작 *기독교 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의 첫 장에서 신학의 출발점을 선포하듯 선언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인간 자신에 대한 지식, 이 두 가지 지식의 불가분한 관계이다. 칼뱅에게 있어서 이중 지식은 단순한 교리적 구조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출발하여 구원의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영적 여정의 시작점이다.
칼뱅은 다음과 같은 말로 그의 논의를 시작한다.
“거의 모든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 이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기독교 강요 I.1.1)
이 말은 철학적 통찰이라기보다, 철저히 신학적이며 실존적인 통찰이다. 칼뱅에게 ‘자기 인식’은 심리학적 자아 분석이 아니라, 인간의 죄성과 무능함에 대한 처절한 각성이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며, 타락했으며, 참된 선을 이룰 수 없는 존재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자기 인식은 절망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참된 희망을 향한 전환점이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는 인간은 자신을 올바로 알 수 없으며, 자신을 바로 아는 순간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칼뱅은 말한다.
“사람이 먼저 하나님을 알지 않고는 자신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가질 수 없다.” (기독교 강요 I.1.2)
이 말은 인간 중심의 자기 이해가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인간은 스스로를 자주 과대평가하거나, 혹은 세상의 기준에 따라 자신을 판단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아는 순간, 인간은 자신의 죄악됨과 본질적 한계를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직면은 자기 혐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도록 이끈다. 죄와 무지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발견된다.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 또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전제한다. 칼뱅은 반복해서 강조한다.
“우리가 자신을 바라보면, 곧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면, 곧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기독교 강요 I.1.1 요지)
하나님에 대한 앎은 추상적 사변이 아니라 관계적 앎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함, 정의, 자비, 주권을 깨닫는 동시에, 그분의 심판과 은혜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경외와 복종을 낳으며, 그분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그분의 은혜 안에 안식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참된 하나님 인식은 언제나 인간의 겸손한 회개와 연결된다.
칼뱅의 이중 지식은 결국 구원의 길을 여는 문과 같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인간의 무지를 깨닫고, 자신의 죄악을 직면함으로써 우리는 은혜의 복음을 사모하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은 곧 복음이며, 인간 자신에 대한 참된 인식은 그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서 두 순례자(크리스천과 믿음)을 따라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천국문 앞에까지 갔지만, 신분증(certificate)를 소지하지 않아서 쫓겨났다. 두 순례자와 무지와의 대화는 '이중지식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크리스천이 이방인을 만나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라고 묻자, 무지(Ignorance)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하나님을 잘 대하고, 이웃을 잘 대하며, 기도도 하고 살았소.” 그는 자신의 선한 삶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믿는다.
크리스천이 반론한다. “자신의 선행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습니다.” 그는 이사야 64:6을 인용하며, 인간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고 말한다.
무지는 불쾌해하며, 이렇게 대답한다. “그건 너무 극단적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사람을 거절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는 자기 의를 붙들고, 겸손히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후에 소망(Hopeful) Hopeful은 동료 순례자인 크리스천에게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며,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만, 내 선행으로는 평안을 얻지 못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와 의로만 구원받았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는 회심의 과정을 나누며, 회개와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무지는 두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자기 길을 갑니다. 자기 의에 사로잡혀 참된 복음을 거절한 자의 모습을 상징한다.
<천로역정>의 무지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에 무지했음을 보여준다.